8년 만의 인터뷰였다. 명진 스님을 처음 만난 것은 2010년 서울 강남 봉은사 주지로 있을 때였다. 조계종의 일방적인 봉은사 직영 사찰 전환 결정으로 한창 시끄러울 때였다. 여기에 직영화가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의 외압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 퍼지는 형국이었다.
주지 자리에서 내려온 이후에는 길거리, 산속 등을 마다하지 않고 법회를 열고 시국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동안 풍찬노숙을 해온 그다. 시종 정부에 대한 날 선 비판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었다. 여전히 입담은 센 반면, 표정은 온화했다.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의 신분뿐. 봉은사 주지에서 내려온 그는 승적까지 박탈된 범인(凡人)이 됐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승복을 입고 불경을 외우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설파하고 있다.
그런 그가 지난 18일부터 조계종 총무원과 종회사무처가 있는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단식을 진행하고 있다. 기자가 만날 때는 단식 12일차 였다. 승적까지 박탈된 그가 왜 단식을 하고 있는 것일까. 8년 만에 명진 스님과 인터뷰를 한 이유다. 아래 그와의 인터뷰.
"주지 선거에 승려 한 명당 500만 원 씩 준다"
프레시안 : 단식을 한 지 12일 차라고 들었다. 몸은 괜찮은지 궁금하다.
명진 : 단식이 2주를 넘어가려 하는데도 전혀 힘든 게 없다. 배도 안 고프다. 체온, 혈압도 다 정상이다. 단식 초기에 내 몸무게가 67kg에서 7kg이 빠졌지만 그리 힘들지 않다. 아무래도 나는 이런 게 천성인 듯싶다.(웃음) 처음에는 도로에서 차 지나가는 소리에 잠을 못 자서 며칠 고생했는데, 지금은 그것도 적응해서 잘 잔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도인인 듯싶다. (웃음).
프레시안 : 갑자기 단식을 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굳이 단식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명진 :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적광 스님 폭행 사건의 진상규명이다. 적광 스님은 자승 총무원장의 수하인 호법부 승려가 집단으로 끌고 가서 폭력을 행사했다. 미리 계획된 폭력이었다. 이와 관련해 당시 문제제기를 하려 했지만 적광 스님이 고통이 심했다. 공식적으로 대응하는 것에 설왕설래했다. 그러다 지방으로 내려갔는데, 결국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병원에 다니고 있다. 더는 참아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나선 것이다.
(적광 스님은 지난 2013년 8월 21일 오후 2시, 조계종 총무원 청사 옆 우정공원에서 자승 총무원장의 비리 의혹을 공개하는 기자회견을 하려다 이를 제지하는 호법부 스님들에게 강제로 끌려갔다. 이후 납치돼 감금 폭행 후 승적을 빼앗겼다고 적광 스님은 주장한다. 편집자)
프레시안 : 이 사건과 관련해 자승 총무원장이 연관돼 있다고 생각하나.
명진 : 왜 아닌가. 자승 총무원 소속인 호법부 승려들이 나서서 적광 스님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이후 진상규명을 요구했으나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 조사나 징계는커녕 오히려 이들은 승승장구했고 일부는 세속의 국회의원 격인 종회의원이 되고 본사주지가 되기도 했다. 이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자신의 비리 의혹을 밝히려는 적광 스님을 호법부 직원들을 동원해 폭력을 행사한 뒤, 입막음을 한 것이다.
프레시안 : 이전에도 자승 총무원장이 취임한 이후 불교가 타락했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명진 : 맞다. 내가 단식을 하는 두 번째 이유기도 하다. 매우 타락했다. 거의 웬만한 주지 자리에는 금전 거래가 되는 식으로 됐다. 돈이 많이 들어오는 절 주지는 더 심하다. 주지 선거를 할 때 승려 한 사람 당 500만 원 씩 주는 식이다. 표 한 장에 500만 원인 셈이다.
프레시안 : 그런 이야기는 예전에도 있었다. 주지 선거에 돈이 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명진 : 그것이 이제는 더욱 노골화됐다. 총무원장 선거에는 표 한 장 당 1000만 원이 들어가는 식이다. 이런 문제를 알리고 공론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봉은사 주지 시절, 이명박 비판하자 국정원이 나를 사찰했다"
명진 : 오죽하면 이렇게 하겠나. 집안 내부에서는 자체 정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비문중이라고 스스로 말하고 생명평화를 제1의 가치로 여기면서 작은 미물에게도 함부로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이 부처님의 법인데 적광 스님 문제도 봐라. 여러 차례 문제 해결을 촉구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다. 우리 사회의 양심가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얘기하는 것도 불교가 타락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단순히 불교 내부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깊은 병폐라고 생각한다.
과거나 현재에나 불교의 많은 것들이 세상으로부터 왔고 지금도 국민의 세금이 절집에 많이 투여된다. 당연히 국민이라면 누구나 자기 세금이 쓰이고 있는 불교문제에 관심을 가져야하고, 1700년 민족과 함께해온 불교가 자기 비판 앞에 외부세력이라고 얘기한다는 건 자기 존재 자체의 부정이며 부처님 법에도 반하는 것이다. 부처님 법에는 승속, 안팎의 차별이 없다.
프레시안 : 세 번째 이유는 무엇인가.
명진 : 과거 내가 봉은사 주지였을 때, 매주 법회를 열고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비판하지 않았나. 그때 국정원이 나를 사찰했다는 기록이 나왔다. 내가 사실 이명박 정부 내내 봉은사에서 일주일마다 비판을 하지 않았나. 당시 나를 사찰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국정원이 직무유기를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웃음)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는 지난 29일 '원세훈 녹취록'을 공개하며 원 전 원장은 2010년 3월 "일부 종교단체가 종교 본연의 모습에서 벗어나 정치활동 치중하는 것에 대해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시했다며 "명진 스님이 봉은사 주지에서 쫓겨나는 과정에 국정원 개입 실체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후 30일 국정원 개혁위원회는 30일 봉은사 전 주지인 명진스님 불법사찰 의혹 건을 포함한 '사회 주요인사 불법 사찰 의혹사건'을 적폐청산TF가 추가 조사하도록 권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편집자)
프레시안 : 국정원이 명진 스님을 퇴출하는데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나.
명진 : 그런 사찰을 통해 모은 정보가 나를 (봉은사에서) 퇴출하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가 제대로 조사되는 게 필요하다. 이를 통해 국정원의 사찰이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고 그 피해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밝혀내야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승 총무원장 재임 8년, 적폐가 쌓였다"
프레시안 : 지난 4월 5일 조계종은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명진 스님 승적을 박탈했다. 조계종 종정과 종단 집행부의 명예를 손상시켰고, 옛 봉은사 땅인 한전부지 관련, 종단과 논의 없이 제3자의 사업가에게 500억의 전매차익을 보장하는 계약을 맺은 게 이유라고 들었다.
명진 : 건강한 조직은, 외부로부터 비판이나 내부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본인 비판을 수용해서, 고쳐나가면 좋은 조직이 된다. 비판과 견제가 없는 조직은 부패한다. 내가 조계종과 집행부를 비판한 것은 하루 이틀 된 것도 아니다.
프레시안 : 도가 지나쳤다는 지적도 있다.
명진 : 수위가 올라간 것은 그렇게 내가 이야기를 해도 받아들이지 않아서다. 내 비판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으면 그냥 무시해도 된다. 하지만 비판이 뼈가 아프니 징계를 한 셈이다.
프레시안 : 옛 봉은사 땅인 한전부지를 되찾아주겠다는 사업가와 계약을 맺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명진 : 내가 종단을 비판한 것만으로 승적을 박탈하는 게 부담스러우니 덮어씌운 것이다. 그러니 봉은사가 40년 전에 팔은 땅(한전부지)을 들먹이는 것 아닌가. 그 땅은 이미 한전 소유다. 조계종 소유도 아니다. 만약 그 땅 관련해서 내가 500억 원을 받았다면 나는 봉이 김선달이다. 우리 땅도 아닌데, 무슨 수로 그 돈을 받는가. 되면 좋고 말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그 사업가와 소위 말하는 MOU를 맺었다. 그런데 그것을 두고 내가 금전적 이익을 취하기 위한 파렴치한으로 몰고 있다.
게다가 조계종 호법부 판결문에는 500억 원을 내가 사업가에게 주려 했다고 되어 있다. 받는 것도 아닌 주는 것을 통해 뭔가 커넥션이 있다고 보이게끔 만든 것이다. 그런데 그때 MOU에 500억을 봉은사가 받는다고 해두었다. 사실 관계조차도 파악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급하게 징계를 하려다 보니 앞뒤가 안 맞게 그냥 갖다 붙이는 식으로 판결한 셈이다.
프레시안 : 단식을 진행하면서 기자회견, 인터뷰 등에서 조계종의 모든 적폐는 자승 총무원장으로부터 기인한다고 말했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명진 : 자승 총무원장 재임 8년 동안 종단에서 수많은 사건에 터졌다.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도 종도들이 수긍할 수 있는 조치가 없었다. 자기편의 치부가 드러나면 솜방망이 처벌로 무마시키고, 자신과 반대편에서 문제가 생기면 가차 없이 권력의 칼을 휘둘렀다. 대표적인 게 적광 스님 사태 아닌가.
프레시안 : 조계종이 어느 순간부터 대중을 상대로 포교를 하는 등 외연 확장보다는 내부 정치, 그리고 정권과 결탁하는 식으로 변질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명진 : 불교는 부처님 가르침을 알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문을 읽고 시주를 하든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정부 예산을 받고 산다. 문화재 관리 비용이 대표적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원주문(인디언)들이 국가 지원을 받다보니 알코올이나 마약에 중독되는 경우가 있지 않나. 우리도 그런 식으로 살고 있는 식이다. 문화재 보호 구역 안에서 문화재 관리인으로 전락하고 있다.
물론, 일선 포교 현장에서는 열심히 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중앙에서는 그런 의식이 없다. 낮밤에 따라 자기 행동이 달라지는 박쥐승. 머리 깎은 거사. 가사입은 도둑놈 등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프레시안 : 지금의 불교계가 바뀌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명진 : 모든 악행은 탐욕에서 비롯된다. 돈은 일체 재가신도에게 맡기고 스님은 수행과 포교만 하면 된다. 사찰운영은 재가신도들이 하고 스님들은 관리감독만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돈에 매달려 승가는 물론 불교 전체가 이렇게 타락하고 사회에 걱정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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