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1년 3월 26일 화요일, 파리 민중들은 투표를 통하여 코뮌을 성립시켰다. 사회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 그리고 노동자들은, 부르주아 지배 체제의 노예의 자리에서 "심판자이면서 저항자, 파트너이면서 자신의 힘의 주체적 행위자"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코뮌 성립의 의식은 엄숙한 의전이나 새로운 체제의 허례로 가득 찬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소박했고 담대했으며 즉흥적이었다. 행복한 웃음처럼 짜릿했으며 정돈된 게 아니었고, 붉은 마음들로 들끓었다."
그렇게 "코뮌은 불행한 사람들, 투기에서 배제된 사람들, 공장에서 착취당하는 사람들, 빈민가 사람들과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결집시켰다".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코뮌 만세! 사회 공화국 만세!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불온한 비정규군들'이었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말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이었지만, 패배는 이미 예정돼 있었다. 9주 동안 이어진 해방의 순간들이, 그 찬란한 광휘가 그들에게서 패배의 숙명과 그 이후의 시간들에 대한 상념을 삼켜버렸던 게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5월 21일 '피의 일주일'이 시작될 즈음 코뮌 위원회의 포고문은 1980년 5월 어느 날 광주의 밤거리에서 울려 퍼졌던 절절한 목소리를 돌이키게 한다.
"무기를 들어요! 시민 여러분, 무기를 들어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가 승리하느냐, 아니면 프랑스를 프러시아에 팔아넘기면서 저지른 반역 행위의 대가를 우리에게 지불하라고 요구하는 파렴치한 베르사유 반동분자들과 성직자들의 수중에 떨어지느냐의 갈림길에 있습니다!"
그렇게 파리 코뮌은 두 달 남짓 존속한 뒤 5월 28일 일요일 아침 몰리에르, 라퐁텐 등 수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파리 최대의 공동묘지 페르 라쉐즈의 동북쪽 벽에서 마지막 코뮌 전사들이 총살당하면서 막을 내렸다. 티에르 정부는 코뮌 전사들에게 총살당한 인질 100여 명과 전투에서 죽은 베르사유군 877명의 "원수를 갚으려고" 파리 시민과 코뮌 전사들 2만 명을 학살했다. 바로 '피의 일주일'이다. 아직 기관총이 없던 시절이었다. 전투에서 죽은 사람보다 총살형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어깨에 탄약 자국이 있으면 가차 없이 즉결 처분되었다. 센 강은 강물보다 시체 더미로 채워졌고 붉은 피로 물들었다. 그렇게 파리는 "평화를 회복하였"지만, 4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군법 회의에 회부되었고 수천 명이 국외로 추방되었다. 지금도 애창되는 <체리의 계절(Le temps des cerises)>의 작가 장 바티스트 클레망은 '피의 일주일'에 이렇게 썼다.
거리에서 활개를 칠 것이다.
자기들의 복무를 뽐내듯
목줄에 권총을 차고서.
빵도 일자리도 무기도 없이
우리는 지배당할 것이다.
밀정과 경찰과
폭력적인 권력과 성직자들에 의해.
하지만…
그것은 흔들리고
최악의 날들은 끝날 것이다.
그리하여, 설욕전을 조심하라.
가난한 자들이 모두 함께할 때.
공포 정치기가 포함된 프랑스 대혁명기 1793~1794년의 2년 동안보다 '피의 일주일' 동안 더 많이 희생된 코뮌 전사들은 지금 무엇으로 남아 있을까? 페르 라쉐즈 벽에 걸린 표지판은 38년 전 처음 보았을 때 그대로 '코뮌의 죽은 이들에게(1871.5.21~28)'라고 간단히 적혀 있었다. 이젠 교과서에서조차 잊혀가는 변화상을 반영한 것일까? 아니면 5월이 아니기 때문일까? 순례자들이 남겨놓곤 했던 장미꽃이 이번에는 보이지 않았다. <민중의 함성> 원작자인 장 보트랭이 말하듯, 그들은 "프롤레타리아와 함께 하는 역사의 약속 시간에 너무 일찍 찾아온" 잘못을 저질렀던 것일까. 아니면 그들은 다만 이름 없는 민중들이었기 때문일까?
독자들은 이번 '책이 이끄는 여행'지로 페르 라쉐즈의 '코뮌 전사의 벽'을 택한 것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장 보트랭이 원작 소설을 쓰고 자크 타르디가 그린 그래픽노블 <민중의 함성>을 한국어로 번역한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옮긴 이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는데, 다소 길게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마감하는 것 또한 독자들은 이해해 주기 바란다.
"사람에 따라 그 속에 살고 싶은 역사적 사건이 각자 있을 수 있는데, 나에겐 그런 사건들 중 광주항쟁과 함께 파리 코뮌을 빼놓을 수 없다. 1871년 봄, 자유의 가치를 절대화하여 그 무엇에도 양도할 수 없는 '해방 사회'를 꿈꾸었던 파리의 민중들과 함께 숨 쉬고 분노하고 싸우고 좌절하면서 가녀린 희망이나마 다시 품어 보는 경험을 어찌 마다하겠는가.
스산한 거리와 음침한 골목을 무대로 넝마주이, 혁명가, 공증인, 밀정, 불량배, 탈영병, 창녀들이 뒤엉켜 서사를 펼치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만나야 했던 비속어들을 우리말로 옮기기에 무척이나 어려웠는데 그럼에도 무엇인가에 취한 사람처럼 매달렸다. 그 날것의 생생함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면 그것은 순전히 내 능력의 부족 탓일 터인데,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파리 거리의 윤곽을 옮기지 못하는 진한 아쉬움까지 독자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대신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
3월 17일 파리의 알마 다리에서 의문의 여인 변사체가 발견되는 사건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젊은 전사 지케와 릴리가 페르 라쉐즈 담을 넘어 사라지는 5월 28일까지 파리 코뮌의 성립에서부터 무너질 때까지 하루하루를 숨차게 그리고 있다. 정규 부대에 의해 궤멸될 숙명이 예정된, 민중 전사들로 이뤄진 비정규 부대. 이것이 광주 항쟁과 파리 코뮌을 연결하는 열쇳말의 하나일 것이다. 벼랑 끝 전망 속에서도 낮에는 토론하고 밤에는 춤을 추었던, 두 달 남짓 동안 대동 세상, 하지만 그것은 '피의 일주일'로 치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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