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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혁명' 크리스퍼, 우린 얼마나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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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혁명' 크리스퍼, 우린 얼마나 알고 있나?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여전한 수수께끼

본 연재는 크리스퍼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로만 벌써 10꼭지 넘게 진행되었다. 그 대부분은 크리스퍼가 어떻게 작동하고 이 시스템을 다양한 생물체에서 어떻게 유전체 교정이나 편집에 이용하고 있는가를 주된 내용으로 하였다. 크리스퍼 시스템은 모기부터 사람까지 거의 모든 동물이나 식물의 유전체에 적용되어 유전체의 정보를 우리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고 그래서 DNA 혁명이라고 까지 칭한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읽은 대부분의 독자들은 우리가 크리스퍼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오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크리스퍼-유전자가위 시스템을 다양하게 유전자 편집의 도구로 응용하는 것과는 별개로 현재 이 시스템 자체에 대한 우리의 자연과학적 지식은 아주 적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우리가 단순한 생물체라고 여기는 자연계의 미생물인 일부 세균과 고세균에 있는 시스템을 우리가 가져다 쓰는 것인데, 미생물의 세계에서 크리스퍼의 기능이나 작동 방식, 그리고 이들이 미생물 전체의 생태계나 진화에 미치는 영향 등 자연 현상으로서의 크리스퍼에 대해서는 우리가 별로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CRISPR 유전자는 1987년 세균의 유전체를 연구하던 일본 과학자가 유전체 내에 DNA회문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염기서열이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반복되는 독특한 배열을 보고하면서 최초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7년 후인 1994년, DNA 염기 서열에 대한 정밀 분석과 다양한 DNA 염기서열 정보가 축적되기 시작하면서 이 반복되는 염기서열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세균에 대한 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이라는 것이 밝혀졌으나 그 기능은 전혀 알지 못했다. 크리스퍼의 기능은 2007년 덴마크의 요거트 회사 DANISCO의 연구원들이 특정 유산균들이 바이러스에 내성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는 현상을 발견하면서 처음 규명되었다. 바이러스에 내성을 갖는 것처럼 보이는 유산균에서 크리스퍼 유전자가 발현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으며, 크리스퍼 유전자 사이에 존재하는 특정 바이러스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인위로 더하거나 빼면 세균의 이들 바이러스에 대한 내성이 변하는 것을 관찰한 것이다. 이 발견의 과학적 의미는 마치 고등 생물체에 존재하는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되면 생체 내에 이들에 대한 항체를 만들어 두었다가 다음에 다시 이들이 침입했을 때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적응면역 현상처럼, 이와 유사하게 세균에도 침입한 바이러스 등의 정보를 크리스퍼 유전자의 반복 염기서열 사이에 저장했다가 다음 침입 때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적응면역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최초로 밝혀 낸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생존에 유리할 것으로 보이는 크리스퍼 적응면역 시스템을 모든 세균이 전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약 90% 이상의 고세균과 30% 정도의 세균만이 이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단세포 세균들이 속하는 원핵생물에서만 발견되고 마찬가지로 단세포이지만 유전정보를 핵 안에 저장하는 효모 같은 진핵세포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크리스퍼 같은 시스템은 도대체 어디서 유래해서 어떻게 생긴 것일까? 또, 왜 이런 유용한 시스템을 어떤 세균은 가지고 있고 다른 세균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일까? 또한 크리스퍼 시스템에 저장하고 있는 바이러스 염기서열 정보는 일반적으로는 수 십 개이지만 몇 개에서 수백 개까지 세균 종에 따라 다양하다. 언뜻 생각하면 크리스퍼 유전자 내에 저장하고 있는 바이러스의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세균이 살아남는 데 유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자연계에서 항상 공짜는 없는 법! 많은 바이러스의 유전정보를 계속 가지고 생존하는 것은 전체 유전정보의 양이 엄청나게 커지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런 상황은 세균이 살아남는데 불리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때문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으나 어떤 세균 종은 크리스퍼 시스템과 함께 자체 내에 이 유전자가위를 불활성화시키는 억제단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려졌다. 그렇다면 미생물의 세계에서 크리스퍼를 갖는 것이 생존에 유리할지 아니면 갖지 않는 것이 유리할지, 또 바이러스 정보를 몇 개 저장할지 등은 어떻게 결정될까, 이렇게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문다.


그럼 세균의 바이러스는 크리스퍼 시스템에 속수무책일까? 그렇지 않다. 세균의 바이러스인 많은 박테리오파아지들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시스템의 작동을 억제할 수 있는 단백질과 이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런 연구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생태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생물과 바이러스 사이에 서로의 생존을 놓고 끝없이 이어지는 공격과 방어의 정교한 시소게임을 보여준다. 이런 상호간의 시소게임을 통해 생태계가 균형적으로 유지되고, 서로간의 진화를 이끄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퍼는 지구의 생명 생태계가 어떻게 계속 변화하면서도 균형을 이루는 동적 평형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현재 크리스퍼에 대한 가장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는 크리스퍼 유전자의 반복 염기서열 사이에 저장된 염기서열들이 모두 바이러스의 유전정보와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 염기서열들은 이미 지구상에서 사라진 바이러스의 유전정보일 수도 있고 아직 우리가 모르고 있는 세균 바이러스의 유전정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크리스퍼가 현재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세균의 적응면역에 해당하는 기능 외에 다른 기능을 수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재로 몇몇 세균에서는 크리스퍼 시스템이 DNA 손상의 복구나 유전자의 발현 조절, 혹은 세균들이 서로 군집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바이오필름(biofilm) 생성에 필요하다고 알려지고 있다. 한 종의 세균이 다른 종의 세균에 침입할 때 크리스퍼가 필요한 경우도 보고되었다. 또 크리스퍼가 저장하고 있는 염기서열 중에는 세균 자신의 유전정보에 해당하는 정보가 들어있는 경우도 발견된다. 그래서 세균에서 크리스퍼의 기능을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는 크리스퍼가 진핵세포에서 발현된 유전자에 상보적인 RNA 조각을 발현하여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RNA interference처럼 세균의 유전자 조절 시스템으로 기능을 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이러한 보고들은 모두 세균의 세계에서 크리스퍼가 수행하는 다양한 기능에 대한 우리의 정보가 얼마나 적은가를 깨닫게 해 줄 뿐이다. 우리는 크리스퍼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 일천한 지식의 유용성에만 매달리고 있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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