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대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는 심리학자 스티븐 핑거는 그의 저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에서 우리 인류 사회의 곳곳이 폭력과 야만으로 채워져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선한 본성에 따른 진화를 거듭하여 역사 이래 가장 풍요롭고 도덕적인 세기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확실히 통계로 기술되는 인류 생활의 질은 이전 시대에 비해서 훨씬 나아졌다. 산업혁명 시대의 영국 노동자보다 현 시대의 아프리카 중위 국가 국민들의 삶이 경제적으로 윤택하다. 세계적 차원의 전쟁, 기아, 질병 등으로 인한 사망률은 낮아졌으며, 개인의 일상 또한 편리한 문명의 이기들로 여유로운 삶을 만끽하고 있다.
영국의 인클로저 운동, 산업혁명은 우리의 삶을 풍요로 이끈 인류사의 중요한 이정표였다. 과거 비효율적이던 봉건제 공유 생산 시스템을 개인 소유로 바꿈으로써, 사람들의 이기심을 동력 삼아 눈부신 기술 발전을 이루어 냈다. 산업혁명은 인력, 축력, 수력, 풍력 등 제한된 자연의 동력을 벗어나 24시간 가동되는 기계 동력을 사용하여 폭발적인 생산력의 향상을 이룩했다. 지금은 역사책 속의 간단한 한 구절로 요약되지만, 서구 유럽 열강은 새로운 경제 시스템에 적합한 사회 체제를 구축하는 데 300여 년이 넘는 시간을 들였다. 수많은 저항과 살육, 기아와 전쟁이 벌어졌고, 상당수의 사회적 약자는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생의 낙오자로 전락하였다.
사회는 분명히 진보한다. 지금보다 훨씬 나은 경제적 풍요 아래, 향상된 인권 의식을 바탕으로 사람다운 삶을 사는 세상이 올 것이다. 다만 그 과정이 문제다. 과거 생계 터전에서 쫓겨난 인클로저 시대의 영국 농민처럼 도시의 부랑자가 되어 근근이 생계를 연명할지라도, 행여 국가 간 참혹한 전쟁의 틈바구니에 끼여 기본 인권과 자유가 제약되는 전체주의 사회의 소모품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다가온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무엇에 기대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인간의 정신문화를 훌쩍 뛰어넘은 기술 중심 사회에서 균형을 이룰 인간의 가치를 되찾아야 한다. 자본주의 이기심에 찌든 각자의 습성을 직시하고, 이타적 본성을 따르는 새로운 자본주의 혁신으로 지속 성장을 일구어내어, 사람을 향하는 상호 호혜의 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다수의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는 시대의 큰 도약을 가능케 할 것이며, 훗날 역사가들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시대를 칭송하며 인류의 찬란한 유산으로 기록할 것이다.
이 시대 인간의 역할은 무엇일까? 저자는 '가장 어리석은 짓은 가만히 자리에 앉아 누군가가 바꾸어 주길 기다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영웅이 나타나 사람다운 세상을 만들어 어느 한 자리를 아무런 대가 없이 내어 주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권력이 대중에게 있는 시대다. 우리가 뽑는 지도자와 그들이 추진하는 정책에 얼마나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된다. 나날이 가중되어 가는 소득과 빈부 격차, 자기 것 지키기로 일관하여 벌어지는 폐쇄적 기업 환경과 국가 경쟁력의 저하, 모두에게 공정한 규칙보다는 자신에게 유리한 수를 갈망하는 이기적인 태도, 남들보다 위에 올라서서 다른 이들을 지배하고자 하는 수직적 습성들이 헬조선을 만들어 낸 것이다.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으며, 이 상황을 타개하는 의무 또한 우리 모두에게 있다. 그것만이 비로소 우리를 시대의 도약 사이에 낙오되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며, 이는 어느 한 사람의 각성에서 시작하여 모두가 함께 손을 잡아야 가능한 어려운 과제이다. 내려놓기, 관심·인정·배려의 미덕, 물질적 가치를 넘어 보다 영속적인 가치를 향한 마음은, 상호 호혜의 질서를 지닌 새로운 공동체를 가져다줄 것이다. 인류사 300년 동안 지난하게 싸워 온 성장과 분배 사이의 논쟁은 진일보한 사상의 전환으로 과거의 유물이 될 것이며, 이를 이루어 낸 대한민국은 영국, 프랑스, 미국을 이어 세계 헤게모니를 주도하는 문화 선진국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너무 낙관적이라고? 믿음이 세상을 바꾼다.
<이기심의 종말>을 읽다 보면, 인류는 과연 얼마나 이기적이며 이기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공생과 공유의 새로운 문명을 건설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렇다. 우리에겐 확신만큼 더 새로운 질문이 필요하다. 답은 없다. 다만, 저자의 말대로 어리석게 앉아서 기다리지 않는다면, 그날은 생각보다 일찍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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