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당장 수술 날짜를 잡자고 하네. 친구들 보니까 수술 받고 좋다는 사람도 있고 더 못 걷는 이도 있던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가끔 허리랑 무릎 치료를 받으러 오던 분께서 난감하다는 듯 말씀하십니다. 그간 경과와 현재 무릎관절 상태, 그리고 일상의 불편한 정도가 수술을 서두를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피트니스 클럽 보다는 수영장에서 운동하면서 보존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평소 고혈압과 당뇨 때문에 계속 보시던 가정의학과 선생님과 다른 병원의 무릎관절 전문의의 의견을 들어보세요. 급한 상황은 아니니까 수술은 그 후에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해도 됩니다."
환자 중 병 진단을 받은 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분이 꽤 많습니다. 병이 중할수록 진단 자체가 갖는 충격이 커서 합리적 판단을 할 평정심을 잃게 됩니다. 한의학에서는 '담(膽)은 중정지관(中正之官)으로 결단(決斷)이 출언(出焉)한다'고 하는데, 이런 경우 이성과 감정의 천칭이 균형을 잃어 제대로 된 결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에 처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환자가 오면 먼저 기울어진 천칭의 추를 바로 잡아 상황을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병과 치료 자체에 매몰되는데, 그 결과가 좋으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기 때문이죠.
동시에 '세컨드 오피니언'을 들어볼 것을 권합니다. 같은 병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가능하면 이전의 의사와는 다른 성향의 의사를 만날 것을 권합니다. 같은 성향의 의사라면 그 상황을 놓고 같은 결론을 내릴 확률이 크기 때문이죠. 앞선 환자처럼 관절의 문제라도 의사에 따라 약물요법, 식이와 운동요법, 그리고 수술 중에 서로 다른 처방을 내릴 수 있습니다.
다른 의견을 들어보는 것은 합리적인 치료법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 외에도 장점이 있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참고하는 과정을 통해 내 병과 그에 관한 치료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고, 촌각을 다투는 경우가 아니라면 여러 의견을 들음으로써 흐른 시간만큼 심리적으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여러 의견을 들으려면 시간과 비용이 더 듭니다. 하지만 제대로 방향을 잡는 것이 치료는 물론이고 그 이후 삶의 질에도 많은 영향을 줌을 고려하면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전 의료기관에서 검사한 기록을 갖고 가는 것은 시간과 비용 모두를 절약할 수 있는 팁이 되겠지요.
병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구한 후 결정을 권하는 데는 또 다른 속내도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병과 치료에 관한 최종결정은 환자 본인이 충분히 질문하고 숙고한 후 스스로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름이 가진 권위를 너무 쉽게 인정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전의 가습기살균제 문제나 최근에 불거진 달걀파동에서도 알 수 있듯, 합리적인 의심을 거두고 질문을 멈추는 순간 우리가 쉽게 인정해버린 시스템의 피해자는 바로 우리 자신이 됩니다. 의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이 중할수록 충분히 알아보고 질문한 후, 스스로 충분히 납득했을 때 선택해야 합니다. 자신이 회의주의자처럼 여겨지고, 조금 피곤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깔라마 인들이여, 소문으로 들었다고 해서, 대대로 전승되어 온다고 해서, '그렇다 하더라'고 해서, 우리의 성전에 쓰여 있다고 해서, 논리적이라고 해서, 추론에 의한 것이라고 해서, 이유가 적절하다고 해서, 우리가 사색해 얻은 견해와 일치한다고 해서, 우력한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해서, 혹은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라는 생각 때문에 진실이라고 받아들이지 말라. 깔라마 인들이여, 그대들은 참으로 스스로가 '이러한 법들은 유익한 것이고, 이러한 법들은 비난받지 않을 것이며, 이런 법들은 지자들의 비난을 받지 않을 것이고, 이러한 법들을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이익과 행복이 있게 된다'라고 알게 되면, 그것들을 구족하여 머물러라." <가려뽑은 앙굿따라 니까야>(대림스님 옮김, 초기불전연구원 펴냄)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