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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진흥위원회, 이대로 좋은가?”

[ACT!] 문화권 중심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가 시작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한국영화 및 영화산업의 진흥을 목표로 운영되고 있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다수 독립영화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영화진흥정책을 내놓고 있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 8일 김세훈 전 영진위장이 사의를 표명한 이래 영진위 행정을 총체적으로 관리하고 책임을 져야하는 기관장은 3개월 째 공석이다.

다소 늦었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새로운 진용을 꾀하고자하는 영진위는 '한국영화진흥'이라는 본래 목표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어떤 변화와 역할을 보여주어야 할까. 지난 7월 19일 제21회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이하 BIFAN)에서 BIFAN과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 공동주최로 열린 한국영화정책포럼 "영화진흥위원회, 이대로 좋은가?"는 영화행정의 독립적, 민주적 거버넌스의 구축 및 실현 논의에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민간주도의 영화진흥위원회는 유효한가?"라는 제목으로 첫 발제를 맡은 고영재 한독협 이사장은 1999년 영진위가 설립된 이후의 역사를 돌아보고자 했다. 현행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제4조에 따르면 영화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한국영화 및 영화산업의 진흥을 위하여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산하에 영진위를 두도록 한다. 과거 영화진흥공사에서 위원회로 바뀐 부분 때문에 '민간자율기구의 출범'이라는 의미가 부여되기도 하지만, 고영재 이사장은 '영화인자율기구'로서의 영진위로 이를 정의하고자 했다.

▲ 영화진흥위원회 홈페이지


문체부로부터 영화에 관한 지원 역할을 위임받은 범국가 부문 전문기구 영진위는 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지만 정책적 전문성과 독립성을 보장받는 분권자율기관으로 스스로를 소개한다. 하지만 영진위가 출범하고 18년이 지나는 동안 문체부와 영진위의 예산을 관리·감독하는 기획재정부·국회 등의 영향력은 '독립성, 자율성'과 무관하게 강화되었다. 반면, 중장기적 계획안을 기반으로 한 영화진흥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를 겪으면서 영진위의 자율성, 독립성 또한 불신 받고 있는 실정이다.

ⓒACT!

고영재 이사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민간주도의 개혁 대신, 공공성에 기반한 영화인 자치행정기구로서의 접근을 통해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영진위의 현 사업구조를 점검하고, 영화인들이 실질적으로 요구하는 정책의 우선순위에 따라 중장기 계획안을 세울 것을 제안했다. 기재부 중심의 문화예술에 대한 평가시스템의 전면적 재검토를 통해 기존의 콘텐츠진흥법, 문화기본법을 활용한 중장기 계획안 수립과 그에 따른 안정적인 예산 운용 및 평가 지표를 마련할 필요성도 함께 제기했다.

고영재 이사장 다음으로 발제를 맡은 김지현 중앙대학교 전임연구원은 "무엇을 위한 진흥인가? 영화진흥사업의 목적과 비전 그리고 흐름"이라는 주제를 통해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문체부 및 영진위의 영화 정책 기조와 영화발전기금 사업들을 평가하면서 향후 중장기적 영화진흥의 방향 수립과 사업 배치에 대한 의견을 제안했다.

김지현 연구원이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2006년 3차 한국영화진흥종합계획이 발표된 이후 지금까지 문체부 장관이 발표한 중장기 기본계획은 없다. 특히 영진위 4기로 불리는 2008년부터 2010년 사이의 영진위는 독립·예술영화에 대한 제작지원, 개봉지원 등이 집중되었던 직접지원사업의 대부분을 폐지하고, 미디어센터·독립영화 전용관 공모 사업 전환에 따른 논란을 가중시키며 독립예술영화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영진위장이 연구용역 형식으로 공개하는 종합계획이 발표되고 있지만, 중장기적 진흥계획이 부족한 백화점식 나열 구조로는 거시적 수준의 성과를 내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영진위는 영화산업 및 문화관련 민간 주체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조력자이지 영화 활동 당사자가 아니다. 그 이전에 한국영화정책을 총괄하는 기구로서 영상산업 및 영상문화 분야 전반을 포괄하는 진흥 정책의 수립을 지향해야 한다. 따라서 영화진흥의 목표는 단순한 재정지원의 수준을 넘어 영상 주체들의 자발적, 주체적 역량을 키워내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산업과 문화 분야를 골고루 진흥시킬 수 있는 영진위의 주력사업과 정책적 우선순위를 마련해 나갈 필요성 또한 제기되었다. 공공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정책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 또한 필요하다는 것이 김지현 연구원의 설명이다.

끝으로, 김지현 연구원은 2016년 영진위가 발표한 '융성하는 영화산업, 세계로 향하는 한국영화'의 기반이 되기도 했던 문화기본법(2014년 제정)을 소개하며 영진위의 진흥 사업 전체가 국민의 문화권을 보장·확대하는 방향으로 설정될 필요성을 제기했다. 현재 영진위가 문화를 권리 개념에 기반 하여 진행하는 사업은 다양성영화 유통지원사업과 영화 향유권 강화사업인데, 이조차도 국민의 영화 향유권 확대에 머물러 있다. 문화기본법 제4조에 명시되어있는 '문화권'은 문화 향유권 뿐만 아니라 성별, 종교, 인종, 세대, 지역, 사회적 신분 등에 관계없이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문화를 창조하고 문화 활동에 참여할 권리까지 포괄한다. 이런 점에 있어서 영진위는 '다양성 영화'에만 적용하고 있는 다양성 개념을 콘텐츠의 다양성 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구성원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수렴해 문화진흥에 초점을 맞춘 영상정책의 체계를 수립, 평가해 나가야 함을 요구했다. 이를 위해선 영진위 외부와의 협업 관계 및 거버넌스 구축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겠다.

마지막 발제자인 장은경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사무국장은 "독립적, 민주적 거버넌스는 가능한가?"라는 물음 아래 영진위 정책결정의 거버넌스 부재를 지적했다.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 사태 이전을 거슬러 올라가 지난 10년 동안 독립영화를 중심으로 민간 영역에 대한 권력의 부당한 개입과 정책 왜곡은 거버넌스 생태계의 파괴를 가져오고, 이에 따라 영화산업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공공적 정책의 부재로 이어졌음을 제기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비추어 봤을 때, 정권의 억압 속에서도 치열하게 생존하여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민간 영역의 역량과 전문성에 대한 존중과 권한 이양은 필연적으로 바라보았다.

장은경 국장은 민간 중심의 거버넌스를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영진위를 실질적인 최상위 영화정책의사결정기구로 정립시킬 수 있는 정책 내용의 전문성을 고려한 위원회의 전략적 구성과 의사 결정구조의 독립성 확보를 제안했다. 위원장 1인의 전횡을 막기 위해 분야별 의사 결정과정의 분권화와 내부 정책 결정 및 사업 수행의 프로세스에 대한 위원의 권한 및 책임 강화가 뒤따라야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 결정의 투명성 제고 및 참여적 시스템 구축이 뒷받침 되어야한다. 민간 전문 인력이 정책 구상 및 의사 결정 구조에 실질적 권한을 지닐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역 미디어 생태계 구축을 위한 지역 주체들에 대한 직접 지원 확대와 지역 거버넌스 및 의제를 발굴하고자하는 지역 분권화가 이뤄져야함을 제시하기도 했다.

아울러 영화, 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하면서 정책결정 과정에서 거버넌스의 실질적 구현 여부를 지표로 포함할 수 있는 평가 지표가 재구성되어야 하겠다. 끝으로 거버넌스 구축, 실현을 위해 영진위가 무엇을 목표로 하는 조직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향후 영화진흥정책의 추진, 실행에 있어 강조 되어야하는 부분으로 산업과 문화 중 문화에 방점을 두면서 생태계의 구축, 독립 예술영화의 진흥, 문화 향유권의 확장 등을 들 수 있다. 미디어 매체의 변화 속에 산업의 확장 융합적 상황을 고려하여 민간의 창조적 전문성, 자율성을 존중하고 최대한 확장할 수 있는 영화진흥기관으로 전략적 재검토가 수반되어야 하겠다.

'영화진흥위원회, 이대로 좋은가' 포럼에서 제기된 발제와 토론을 종합, 요약하자면 앞으로 영진위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중장기적 영화진흥계획에 기반한 민간 영역 중심 거버넌스 구축과 국민의 문화권을 보장하는 다양성 확대다. 이날 토론자로 참여한 박홍준 인디포럼 의장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산업과 문화를 분류하여 문화 진흥 위주의 정책을 펼치는 독립기구로서의 영진위의 변화를 희망하며, 독립예술영화를 포함한 기초문화예술 현황에 대한 실태조사 및 진단을 바탕으로 어떤 정부가 들어오더라도 안정적으로 독립예술영화 육성·진흥정책을 펼칠 수 있는 구조적인 시스템 개선을 제안했다. 영진위 설립 이후의 역사적인 과정의 성찰의 중요성을 거론하며 말문을 열었던 변재란 순천향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내건 자율·분권·협치 문화 행정을 거론하며, 중장기 계획안 수립을 통해 영화인들의 기대와 역량을 존중하고 협치 토론의 가능성으로 나아갈 수 있는 영진위의 변화를 강조했다.

결국 영진위 변화와 개혁의 핵심은 영화진흥정책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협치와 거버넌스 구현에 있다. 토론자 중 한명으로 참여한 이원재 문화연대 활동가의 의견에 따르면 과거처럼 국가 주도하의 일방적인 정책 공급 시스템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기존에 행해왔던 문화 예술 지원 사업의 통제, 규제 마인드에서 벗어나 민간의 영역을 존중하고 영화 현장에서 벌어지는 본질적인 고민들을 함께 고민하며 발맞추어 나갈 수 있는 영화 생태계 조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영화인들이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정책이 제기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영화계 내부에서도 치열한 토론과 협치가 뒤따라야할 것이다. 이는 영진위의 행정혁신을 요구하는 몇 차례의 포럼, 토론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영진위 뿐만 아니라 영비법, 문화기본법 등 현행 법률을 둘러싼 현재 상황에 대한 점검이 있어야하겠다. 영화가 가진 사회적 가치와 문화권 확대를 위해 함께 논의하고, 대응하고자 하는 독립영화 정책 연대가 시작된 만큼,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독립영화 각계에서 요구되는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영화진흥정책의 전면적인 혁신과 함께 건강한 독립영화생태계 조성을 위한 활발한 논의와 관심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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