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11시 37분께 경남 창원 STX조선해양에서 건조 중인 운반선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주변에 있던 노동자의 증언에 따르면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치솟았다. 조선소 내에서도 폭발사고는 대형사고에 속한다. 한 번 발생하면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사고가 발생한 곳은 선박에서도 기름을 저장하는 탱크. 이번 폭발사고로 탱크 안에서 도장(페인트칠) 작업하던 노동자 4명이 모두 사망했다. 30대~50대 남성들로 모두 하청 업체 노동자였다. 지난 5월 삼성중공업에서 발생한 크레인 사고에서 사망한 6명의 노동자도 모두 하청 노동자였다.
비정규직에게 몰리는 사망사고
조선업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대부분 하청 노동자들이 사망한다. 2016년 9월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 9월 초까지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대형 3사에서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는 총 37명으로 이중 하청 노동자는 78%(29명)를 차지했다.
이렇게 산재사망 비율이 하청 노동자에게 몰리는 이유는 '위험의 외주화', 즉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 하청 노동자에게 몰리기 때문이다.
박종식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위원이 2014년 발표한 '조선 산업 사내 하청의 확산과 공정별 현황'에서 공정별 하청사업체 및 노동자 분포 현황을 보면 하청 노동자들은 도장 업무에 1만9079명(16.7%), 배관 1만4089명(12.4%), 전기전자 1만2573명(11%), 조립 9304명(8.2%) 등 핵심 분야에서 48%를 차지하고 있다.
가장 비율이 높은 도장 일은 직영 노동자들이 가장 꺼리는 업무다. 유해 물질을 취급하는 업무로 인식돼 있을 뿐만 아니라 밀폐된 공간에서 작업할 경우 폭발 및 질식 위험이 있어 조선소에서 가장 위험한 작업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번 STX조선해양 폭발 사고도 도장 작업을 하다 발생했다.
고용이 보장된, 그리고 노조가 있는 정규직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작업 환경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하청 노동자, 즉 언제 잘릴지 모르는, 노조조차도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먼 이야기다.
비일비재한 폭발 사고, 왜?
STX조선해양 폭발사고 관련,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노동부와 해경은 합동으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STX조선해양 측은 페인트에서 나오는 시너 성분의 유증기가 스파크 등의 발화점을 만나 폭발한 것으로 추정한다.
도장 작업은 보통 붓으로 하는 게 아니라 대형 분무기로 분사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 작업은 외부에서 할 경우, 시너 성분의 유증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지만 이번 사건처럼 밀폐된 탱크 내에서 작업할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이에 작업 탱크 아래에는 용접, 그라인더 작업(철 깎는 작업) 등으로 생긴 유독 연기, 유증기 등을 밖으로 빼내기 위해 환풍기를 설치해야 한다. 해경 등은 이 환풍기가 제대로 작동됐는지를 수사 중이다.
지금까지 나온 내용을 종합해보면 탱크 내부에서 혼재작업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대체로 밀폐 공간에서 작업하다 발생하는 폭발 사고는 혼재작업으로 일어난다. 2011년 12월 울산 세진중공업에서 발생한 폭발사고가 대표적이다. 당시에도 밀폐된 블록 안에서 작업하던 노동자 4명이 숨졌다. 이들도 모두 하청 노동자였다.
환기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던 밀폐 공간 + 전날 제대로 잠그지 않은 산소 밸브 + 이를 알지 못했던 그라인더 작업과 용접 작업 노동자들 + 그라인더 작업에서 튄 불똥이 산소와 만나서 발생한 대형폭발.
눈에 보이는 원인은 그라인더 작업 중 튄 불똥일지 모르나, 진짜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원청에서 지시한 작업공정을 어떻게든 단축하려 무리한 게 대형참사를 만들어냈던 셈이다. 공기를 맞추려다 보니 혼재 작업을 하게 됐고, 빠른 공정을 위해 환기 시설조차도 제대로 달지 않고 작업을 한 것이 화를 불러왔다.
사람 4명의 목숨값이 2000만 원
현실적으로 수 십 개 하청 업체가 공정별로 혼재된 상태에서 작업할 때, 기본적인 안전조치와 업무 지시는 원청 사업주가 해야 한다. 하청에서 이를 할 수는 없다.
선실 내 배기 시설 설치나 통풍 환기 조치 등도 마찬가지다. 원청에서 관리할 수밖에 없다. 하청 업체가 할 수 있는 건 잔류 가스 점검, 산소 측정, 작업 후 뒷정리 같은 것들뿐이다. 그나마도 작업 공정 기일이 급하면 하지 못한다.
하지만 정작 그런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아 발생하는 산재 사고에서 원청이 처벌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산업안전보건법(제29조)에는 원청 사용자에게 하청 노동의 안전・보건 조치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이는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하청 노동자가 사고를 당했다고 해서 원청 사용자가 실형을 선고받은 예는 거의 없다. 고작해야 벌금형이 대부분이다.
2011년 발생한 세진중공업 폭발 사고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시 사고로 세진중공업 대표이사는 물론 사고발생 하청업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은 모두 기각했다. 더 나아가 2012년 7월 울산지법은 구속/불구속 기소된 6명 모두에게 집행유예, 각 하청업체 현장소장 2명에게 벌금 500만 원, 업체 법인에 대해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사람 4명의 목숨 값이 2000만 원에 불과했던 셈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다를까
이번 STX조선해양 폭발 사고 관련, 해경 등의 수사와는 별도로 부산고용노동청은 2주간 STX조선해양을 대상으로 특별감독을 진행한다. 정부는 STX조선해양의 사고 원인과 책임 소재를 파악해 관련자들을 엄중하게 조치한다는 방침이다.
김영주 고용부 장관은 사고 당일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안전 점검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도색과 용접작업이 동시에 진행됐는지 등에 대해 조사해 법과 원칙에 따라 책임자를 처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7일 문재인 정부는 유해성이나 위험성이 높은 사업장에서 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안전관리조치 미이행 사실이 드러나면 원청업체도 하청업체와 똑같이 처벌 받는 내용을 골자로 한 '중대 산업재해 예방대책'을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의결했다.
한마디로 산업재해에서 원청의 책임을 더욱 강화한다는 이야기다. STX조선해양 관계자들이 이번 사고에서 어떤 처벌을 받을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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