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입장은 어느 정도 살필 수 있다. 개각으로 계파화합을 이루기는커녕 오히려 '친박 죽이기'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사고 있었으니까 박근혜 전 대표를 만날 이유는 충분했다. 만나서 손잡고 웃는 장면을 연출하면 청문회 정국에 임하는 여당의 단합을 유도할 수 있으니까 더더욱 공을 들였을 법하다.
이해가 안 되는 건 박근혜 전 대표의 행보다. 개각에 '친박 죽이기' 암수가 숨어있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던 차에, 수많은 비위 의혹이 제기되는 총리·장관 후보자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면 여권 내 세력다툼에서 고삐를 쥘 수 있던 차에 굳이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화합 모드를 연출할 필요가 뭐가 있었는지 쉬 이해할 수 없다.
약속 때문이었을까? 이명박 대통령이 약속했다는 '대선후보 경선 공정관리'를 끌어내기 위해 만남에 응한 걸까? 그렇게 단기 호재를 버리는 대신 장기 안전판을 확보하고자 한 것일까?
하지만 이런 분석은 너무 순진하다. 당위에 해당하는 사안을, 그것도 2년 후에나 적용되는 약속을 정치적 소득으로 간주한다는 게 정치의 일반적 생리와 맞지 않는다. 산전수전 겪을 만큼 겪은 박근혜 전 대표가 '공허한 약속'에 의미를 부여했다는 설명 역시 정치인의 통상적 계산법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본다. 시점이다.
▲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
당초에는 7.28재보선 전후로 얘기됐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만남이 7.28재보선을 전후해 이뤄지리라는 전언이 무성했었다. 하지만 실제 만남은 8월 21일에 있었다. 7.28재보선을 거쳐 개각과 광복절 특사까지 끝낸 다음에 만남이 성사됐다. 양자 합의 하에 만남 시점이 이렇게 조율됐다.
덕분에 두 사람의 만남 의제는 좁혀졌다. 굵직한 정치 사안을 회동 테이블에 올릴 여지가 사라져버렸다. 합의를 볼 여지도, 결렬을 선언할 여지도 애당초 별로 없던 만남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추출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처음부터 대통령과의 만남을 '담판'으로 여기지 않았다. 무엇을 얻고자 하지도 않았고, 무엇을 지키고자 하지도 않았다.
박근혜 전 대표의 스타일로 봐선 그럴 만하다. 만남 시점을 앞당겨 개각과 특사에 간여할 의사도 없었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원칙'을 강조하는 그에게 개각과 특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침범 불가' 사안이니까. '계파'를 중시하는 그에게 서청원 전 친박연대 대표의 사면은 이미 이뤄진 일이니까.
스타일만이 아니다. 박근혜 전 대표를 둘러싼 정치환경을 봐서도 그럴 만하다. 계파 응집력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었으니까. 자신에 대한 국민 지지율 또한 갈수록 떨어진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었으니까. 강경 보수세력이 꼬나보는 시선이 갈수록 험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었으니까.
박근혜 전 대표에게 대통령과의 만남은 통과의례였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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