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1심 판결을 받고, 2심에서 변론을 하는 수밖에 없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변호인은 변론 재개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합니다. 변호인 없이 재판을 받다 보니, 제대로 변론 한 번 못했고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정상 참작 사유를 제출할 기회를 얻기 위해 재판을 다시 열어 달라는 요청을 한 것입니다. 재판은 다시 열렸고 '개성공단 폐쇄'라는 희대의 사건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가건물을 짓게 된 것이니 그러한 정상을 참작해 달라, 정권이 바뀌어서 개성공단이 다시 열리는 것은 시간문제이고, 그러면 불법 건축물은 바로 철거할 수 있으며 그 이전이라도 다른 부지를 열심히 찾고 있다는 정상 변론을 했습니다. 예상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는 것으로 재판은 끝났습니다. 수사 초기부터 형사 소송 절차를 잘 이해하고 대응했다면 다급하게 변호사를 찾거나 혹시 실형을 받는 것은 아닐지 노심초사할 필요는 없었을 사건입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형사 소송 절차의 뼈대를 살펴보고, 단계마다 기본적인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형사 사건은 크게 '수사 단계'와 '재판 단계'로 나뉩니다. 수사는 신고, 고소, 고발 또는 인지에 의해 시작됩니다. 고소는 피해자가, 고발은 피해자는 아니지만 사건 관계자가 특정 범죄자를 처벌해 달라고 경찰이나 검찰에 요청하는 것입니다. 고소나 고발을 했을 때는 그 결과를 고소한 사람이나 고발한 사람에게 알려 주게 되어 있으니, 꼭 확인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한편, '인지 수사'는 경찰이나 검찰이 스스로 사건을 포착하여 수사하는 것입니다. 수사 기관의 수사 의지가 중요한 수사 착수 방식입니다. 경찰서나 검찰청에서 조사를 받으러 와 달라는 전화나 통지서를 받았을 때는 당황하지 말고 내가 어떤 신분으로, 어떤 혐의로, 무엇이 계기가 되어 수사를 받게 되는지를 꼭 확인해야 합니다. 즉, 내가 참고인인지, 아니면 범죄를 저지른 사람으로 의심을 받는 사람(피의자)인지를 확인해야 하고, 어떤 범죄와 관련되어 조사를 받는 것인지, 고소 또는 고발한 사람이 있다면 누구이고 나의 어떤 행위에 대하여 고소, 고발을 한 것인지를 미리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참고인이라면 다른 사람의 범죄 행위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진술하기만 하면 되지만, 피의자라면 나의 행위 중 범죄로 의심받고 있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변호인의 조력이 필요한지 여부를 판단해야 합니다. 이전에는 고소·고발장을 보는 것이 무척 어려웠는데, 최근 경찰은 피의자들에게 고소장이나 고발장을 열람하고 복사할 수 있게 해 주기로 했습니다. 조사받으러 가기 전에 꼭 복사해서 읽어 본 후 내용이 심각하면 바로 변호사를 만나서 상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경찰이나 검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는 변호인과 함께 조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는 국선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으니, 사선 변호사를 선임해야 합니다. 혐의 사실이 중할 경우 수사 단계에서 적극적으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는 것이 재판 단계에서 수습하느라 애쓰는 것보다 더 낫습니다. 혼자 조사를 받으러 가서야 혐의 사실이 무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변호인을 선임한 후에 조사를 다시 받겠다고 하고, 일단 당일 조사는 받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경찰이나 검찰은 보통 증거를 가지고 수사를 합니다. 딱 잡아떼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잘 기억나지 않는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고, 오히려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증거가 있으면 보여 달라고 하십시오. 또는 돌아가서 기억을 정리하고 다음에 조사받으러 와서 이야기하겠다고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딱 잡아떼었다가 반대의 증거가 제시되고 거짓말이라는 것이 드러나면, 내가 하는 모든 진술이 거짓말처럼 보이게 됩니다.
경찰이나 검찰 조사를 받을 때는 구속 수사를 받느냐, 불구속 수사를 받느냐에 따라 대응 방법이 크게 달라집니다. 형사 소송법은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만에 하나 구속 영장이 청구되어 소위 영장 실질 심사(구속 전 피의자 신문)를 받게 되는 경우, 국선이든 사선이든 무조건 변호사를 선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때 피의자는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당사자가 사건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가장 절실하기 때문에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할 사람은 당사자 자신입니다. 변호사가 귀찮다고 느낄 만큼 세세하게 사건 관련 사실관계를 이야기하고 유리한 증거를 모아야 합니다. 보통은 변호사와 이때 처음 만나게 되는데요, 이 단계에서 당사자가 무언가를 숨기게 되면 변호사의 조력을 제대로 받을 수 없습니다. 적어도 변호사에게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모두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대책을 세울 수 있습니다.
수사를 마치게 되면 검사는 사건을 재판에 넘기게 되는데, 이를 '공소 제기'라고 합니다. 공소 제기 전은 '수사 단계', 공소 제기 후는 '재판 단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피의자는 피고인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형사 재판의 첫 단계는 검사가 죄라고 적시한 사실, 즉 공소 사실을 인정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피의자와 변호인은 공소 사실을 인정하고, 즉 유죄를 인정하고 정상 참작을 해 달라고 할 것인지, 공소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무죄를 주장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공소 사실 인정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변호사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깊이 상의해야 합니다.
그다음은 '증거 인부 단계'입니다. 판사는 피고인에게 검사가 범죄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제출한 증거에 대해서 동의할 것이냐, 동의하지 않을 것이냐를 묻습니다. 동의하면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지만, 부(不) 동의할 경우 증인 신문 등의 증거 조사가 진행됩니다. 증거 조사가 끝나면 피고인 신문, 검사의 구형, 변호인의 최후 변론, 피고인의 최후 진술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판결이 선고됩니다.
민사 재판은 변호사 등 대리인만 출석해도 되지만, 형사 재판은 당사자가 출석하지 않을 경우 진행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반드시 재판에 출석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재판 단계는 하루 만에 끝나기도 하고 몇 달이 걸리기도 합니다. 아주 간단한 형사 사건이 아니라면 위와 같은 재판 단계에서 변호인의 조력은 필수적입니다.
결국 형사 재판에서는 변호인의 조력을 잘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변호인의 조력을 잘 받기 위해서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사건에 대한 집중력을 발휘하여 유리한 증거를 모으고, 변호인과 신뢰 관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돈이 문제라고요? 네, 돈도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변호사들도 적은 수임료를 받고도 내 가족의 일처럼 혼신의 노력을 다하게 되는 사건이 있고, 딱 할 만큼만 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변호인의 조력을 잘 받는 방법을 염두에 두신다면, 적어도 수임료가 아깝지 않을 만큼의 조력은 받을 수 있습니다. 같은 값이라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분명합니다. 제 말, 믿으셔도 좋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