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서 16년 동안 버티며 직장 생활을 했다. 밖에서 보면 월급 많이 주는 좋은 직장이었지만, 정작 안에서 일하는 사람은 버는 것 이상으로 착취를 당하는 곳이었다. 상사의 지시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했고, 쉴 새 없는 업무 요청에 화장실 갈 시간도 없었다. 수시로 울려대는 수화기를 들면 고객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창구에서 근무를 할 때는 한 고객에게 "너, 거기 딱 기다려, 멱따러 갈 테니!"라는 말까지 들었다. 진짜로 찾아올까 봐 전전긍긍했다. 덩치 좋은 고객이 들어서기만 해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업무량 많고 퇴근 시간은 늦고, 게다가 매달 업적으로 줄을 세우는 문화도 직원들의 숨통을 죄기에 충분했다.
괴로움의 탈출구를 찾아야 했다. 고민하다 선택한 건 유럽여행이었다. 1년에 한 번 낯선 나라에 가서 돈을 펑펑 쓰는 것으로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었다. 그런데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스트레스와 아픔을 위로하려고 옷과 가방을 사들여 방을 가득 채워보기도 했지만, 어떤 방법도 약효가 그리 길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니 몸에 이상이 감지되었다. 음식물을 넘기지 못하는 삼킴 장애가 생겼고, 손목이 저려 왔다. 나중엔 목과 자궁에 혹도 생겼다. 그런데도 손목에 파스를 붙이고 물리치료를 받아가며 일했다. 자궁에 혹을 떼어 낸 것 외에는 별다른 처방이 없었다. 그저 스트레스 많이 받지 말라는 말뿐이었다. 나는 아파 죽을 지경인데 이상이 없다고만 하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힘든 가정 형편을 경험해봤기에, 퇴사는 꿈도 꾸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그만둔다'고 하면 엄마에게 '미친년' 소리를 들을 것 같았다. "사표는 가슴에 품고 다니는 거지, 던지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새기며 아무리 힘들어도 참아야 한다고 되뇌었지만, 이상 증세가 점점 심해지자 덜컥 겁이 났다. 그러던 중 상사의 불공정한 고과평가를 목격하게 되면서 더 이상 몸을 망쳐가며 이렇게 불공정한 조직에 몸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단을 내렸다. 가슴에 품고만 다니던 사직서를 던진 게 2009년 가을이었다. 남들은 그 좋은 회사를 왜 그만두느냐고 말렸지만, 이미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나는 그 말을 들을 상황이 아니었다. 무조건 그만두는 것이 나를 살리는 길이라는 생각에 계획도 없이 퇴사를 결정했다. 그저 저축해 놓은 돈으로 몇 년은 버틸 수 있겠거니 하는 짐작과 내 젊음 하나만을 믿고 결정한 일이었다.
새로운 세상, 책을 만나다
회사를 그만두고 한참 동안은 참 행복했다. 멀리 있는 친구를 찾아가서 하루 종일 수다를 떨고, 며칠씩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강의도 들으러 다니고,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영화도 봤다. 남들 일하는 평일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눈치 안 보고 다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업무 지시를 하는 상사도 소리를 질러대는 고객도 없었고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백수가 딱 내 체질이었다. 3년 넘게 신나게 놀았다.
그런데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시간이 갈수록 계획 없는 일상이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할 일이 없으니 생각도 없어지고 바보가 되어가는 느낌에 슬슬 걱정도 되었다. 뭔가 뇌에 자극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책이라도 읽자!' 싶어서 굳게 마음먹고 도서관에 갔지만, 책을 읽기는커녕 처음엔 앉아 있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다. 회사 다닐 때 한 달에 두 권 정도 자기계발서나 에세이를 읽었지만, 그건 '나, 한 달에 책 두 권 정도는 읽는 여자야'라는 걸 티 내기 위한 지적 허영이었지 정말 나 자신을 성장시키려는 독서는 아니었다.
하루종일 도서관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건 정말 고역이었다. 돌아다니는 게 취미였던 내가 엉덩짝 한 번 떼지 않고 앉아 있으려니, 이건 뭐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변비가 생겼고 내 평생 없을 것만 같았던 치질이란 놈이 찾아와 죽을 고생을 했다.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고통을 겪으며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몇 주 더 지나니 증상이 덜해졌다. 내공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오래 앉아 있는 몸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다음 난관, 재미없는 책을 읽는 일이 쉽지 않았다. 오후만 되면 눈꺼풀이 내려와 죽을 지경이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려고 이 고생을 하나 싶기도 했지만 내가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밑천이 들지 않는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취미가 아니라 살기 위해 시작한 독서였으니 힘들어도 꾸역꾸역 앞으로 걸어가야 했다.
독서 습관이 아직 들지 않았을 때라 처음 6개월은 읽기 쉽고 비교적 얇은 자기계발서를 골라 읽었다. 자기계발서 저자들은 자신들이 대단한 일을 했으니, 그냥 따라만 하면 다 성공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었다. "우와,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며 어떤 질문도 품지 않고 그냥 읽어내기에 급급했다. '아침형 인간이 성공한다' '시간 관리를 잘하면 무조건 성공한다'처럼 정답을 내놓는 책들이었다. 학교 선생처럼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느낌이었다. 인생살이에 언제 정답이 있었던가? 어느 순간 한 가지 정답만을 내리는 자기계발서에 신물이 났다.
하지만 인문학 책은 달랐다. 정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가르치지 않았다.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도록 했다. 책을 읽고 나면 '이게 뭐야,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 궁금하고, 답답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책들이었다. 무슨 내용인지 이해를 못 하니 더더욱 생각하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다 보니 철학자들의 사색하는 삶이 궁금해졌고, 나도 걷고 싶어졌다. 책을 읽고 나면 사색을 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산책을 습관화하며 깊은 충만감을 느꼈다. 회사 생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었다.
어느 날 정약용 선생을 좋아하는 작가가 쓴 소설 <목민심서>를 읽다가 이상한 경험을 했다. 뇌가 공중으로 붕 뜨는 느낌이 들면서 정약용 선생과 내가 한 몸이 된 느낌, 내가 정약용 선생처럼 얘기하고 행동하는 느낌이었다. 책 세 권을 읽다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도서관에 앉아서 눈물 콧물 쏙 뺐다. 이런 느낌이 바로 카타르시스인가 싶었다. 책을 읽고 치유되는 느낌, 정화되는 느낌. 울고 나니 평온하게 모든 게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의 삶은 내 인생 전부를 뒤흔들었다. 18년간의 유배 생활 동안 500권의 책을 쓴 사람, 치욕스러운 인생이었음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 사람. 그의 생각과 행동을 감히 똑같이 따라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읽고 느끼고 생각하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고 나니 자꾸만 내 몸으로 그의 사상이 스며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너무 나 자신만 생각하고 살았구나.' '내가 정말 물욕에 사로잡히고 감정을 제어할 줄 모르는 인간이었구나.' 인생을 살아가는 기준을 어디에다 두고 살아야 할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책이 이렇게 내 인생을 바꿔놓는구나 싶었다. 이제껏 이토록 강렬하게 내 인생을 흔드는 매개체는 없었다. 물건 사재기에 바쁘던 시절, 오히려 마음속으론 궁핍함을 느끼며 살았는데 책을 읽으면서 마음속의 풍요를 경험했다. 인생엔 그리 많은 물건이 필요치 않다는 걸 깨달으며 좀 더 단순한 삶을 추구하게 되었다.
철학책이 남에게로 향하던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놓았다면, 소설책은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었다. 재미로 읽던 소설책은 다른 인생을 들여다볼 좋은 기회였다.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펴냄)에서 사랑하는 여자가 생겨도 이것저것 재고 따지며 걱정만 해대는 소설 속 화자에게 "잘난 머리로 이해하지만 정작 가슴과 팔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아느냐?"고 소리 질러대는 조르바는 내게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으며 순간을 즐기는 인생이 행복하다는 걸 알려주었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해냄 펴냄)을 읽으면서는 대한민국의 역사가 궁금해졌다. 학창 시절에 무조건 외워서 정답을 찍어야 하는 과목이 역사였다. 그런데 소설을 읽으며 소설의 배경이 궁금해져서 역사책을 손에 쥐고 한국의 근현대사를 공부하게 되다니, 스스로도 놀라운 변화였다. 카프카는 "책은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했다. 맞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을 깨는 일이다. 책을 읽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건 그저 사물로서의 책일 뿐이다. 삶 속에서 직접 경험한 일과 책을 통해 간접 경험한 일 모두가 온전한 나를 만드는 것이다.
같이 읽는 독서로
어느 정도 어려운 책도 읽게 되면서 독서의 매력에 푹 빠진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책을 읽다 보니 나 자신의 생각에 매몰되는 경우도 있고, 이 부분에서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졌다. 내용에서 궁금한 점도 많았다. 작가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은 부분이 많았는데, 메일이나 블로그를 공개하지 않는 작가가 대부분이라 나 혼자 묻고 답하기 바빴다. 내가 제대로 책을 읽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틀 속에만 갇힌 독서가 되는 것 같았고, 내가 읽은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낸 몇 군데 독서모임 중에 한 군데를 골라 함께하기로 했다. 내가 읽은 지식을 시험해 봐야겠다는 교만한 생각을 가지고 참석한 첫 모임이었다.
첫 독서 토론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도스트 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민음사 펴냄)이었다. 세 권으로 나뉘어 있는 책을 한 권 반 정도 읽고 참석한 모임에서 난 좌절했다. 내용도 다 이해하지 못한 나는 다른 사람의 거침없는 의견을 들으며 '내가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는구나!' 하는 걸 느꼈다. 참가자들 대부분은 책의 내용도 이해했고, 작가와 시대적 배경까지 꿰뚫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 나간 것이 후회되었다. 혼자가 아닌 함께 읽기를 오래 한 사람들만의 내공이 느껴졌다. 함께 읽기의 진가를 알게 된 첫 모임이었다. 다음 모임부터는 책을 제대로 읽고 나가자고 마음먹었다. 내가 바로 서야 타인과의 소통도 가능한 것이리라.
그다음 모임에서는 김승옥의 <무진기행>(문학동네 펴냄)을 읽고 토론했다. 문학작품을 좋아하는지라 문장 하나하나에 감탄하며 읽었다. 주인공이 자신의 힘든 상황을 이기기 위해 나만의 여행을 떠난 것에 별점을 높게 주었는데, 다른 토론자들은 "문장이 식상하다" "너무 몽환적이다" "남자 주인공의 행동이 너무 무책임하다" "저급한 불륜소설이다" 하는 다양한 의견을 냈다. 감상적으로만 소설을 읽었던 나로서는 처음에 당혹스러웠지만,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소설의 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 무진을 덮고 있는 안개는 그저 아름다운 풍광이라 여겼는데, "뭔가를 감추기 위한 소재다" "나를 위장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묘한 분위기를 이끌어내어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시킨다"는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의견들에 깜짝 놀랐다. 회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생각이 자라는 걸 경험하게 되었다. 서로 의견을 나누고 소통하는 모임에 참석하며 진정한 민주주의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함께하는 것을 강조하는 우치다 타츠루의 <하류지향>(민들레 펴냄)을 읽을 때는 저자의 의견이 불편했다. 공동체라니, 옛날로 회귀하라는 말인가 싶어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토론하며 공동체의 역할과 함께 사는 삶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하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방향을 전환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그걸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나 사회는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토론 모임은 남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생각을 갖게 만들어주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일깨워주는 자리였다. 나 자신을 자각하게 해준 것이 독서였다면, 남의 의견에 귀 기울이게 한 것이 독서토론이었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읽는 힘은 무섭다.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를 배우게 하기 때문이다. 긴 시간 동안 홀로, 그리고 이제는 함께 책을 읽으며 배우면서 살아가고 있다.
내 인생이 이렇게 흘러갈지는 나도 몰랐다. 책은 이제껏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행복감'을 아주 깊숙하게 느끼게 해주었고, 마흔 중반에 제2의 인생을 살도록 해주었다. 터널 속 같은 힘든 인생을 경험했지만, 책이라는 좋은 친구를 통해 터널을 빠져나오는 방법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기에 내 소중한 경험을 알리고 싶다. 앞으로도 책과 함께 흘러갈 내 삶이 설레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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