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가 광역시 승격운동을 시작한 데는 지난 2010년 이뤄진 마산·창원·진해 통합으로 인해 ‘규모의 경제’는 이뤘지만, 자치분권이나 자치재정 측면에서 비효율성이 노정되고, 이것이 시정 추진에 큰 장애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진단에서 비롯된 것 같다.
창원시의 이런 열정(?)과 홍보에 힘입어서인지 택시운전을 하면서 시민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크게 반대하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다만, 그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모르고, 막연히 광역시가 되면 정부의 혜택을 많이 받을 거라는 기대심리와 함께 개인의 재산가치도 오르겠지 하는 거품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
언젠가 창원시의회에서 시의원과 창원시장 간에 설전이 있었다는 언론 보도를 봤다. 시의원은 가능성 제로에 가까운 시장의 정치적 슬로건과 독무을 멈춰야 한다고 하면서 ‘승격불가론’을 조목조목 짚었다. 이에 대해 시장은 ‘꿈을 꾸지 않고 도전도 하지 않으면 아무런 역사도 창조하지 못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창원시가 승격을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현재의 기초자치단체 위상으로는 안고 있는 숱한 난제를 해결하기 어렵고, 시민의 찬성률도 70%에 이른다는 주장을 한다. 또한 과거 대전은 광역시 승격에 10년이 넘게 걸렸고, 울산은 7~8년에 걸친 수많은 반대와 난관을 딛고 이루어냈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광역시 승격을 추진하기 전에 먼저 지난 2010년에 이뤄진 마창진 통합에 대한 사과부터 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현 시장이 주도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 창원시장과 마산시장을 비롯한 지역 정치인들은 통합만이 살길이라는 식의 거짓과 허황된 논리로 사람들을 부추겼고, 그렇게 만든 작품이 바로 통합창원시이다.
7년이 지난 현재, 과연 통합창원시는 어떻게 변화와 발전을 해왔는지 책임 있는 정치인들이 설명해야 한다. 그렇지만 단언컨대 누구도, 어떤 점에서도 잘한 결정이었다는 얘기를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통합으로 인한 갈등과 폐해 때문에 역설적으로 광역시를 추진하는 것이라면 진정성 있게 사과부터 해야 옳다. 무책임한 정치꾼들의 선동과 개인의 이해관계에 시민들이 들러리를 서고 불편을 떠안은 격이다.
창원시의 광역시 승격운동도 마찬가지이다. 이제라도 멈춰야 하는 이유는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광역시 승격의 꿈을 갖고 도전해야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는 시장의 주장은 허구에 가깝고, 예산낭비이며, 정치적 제스처로 오해받을 구실을 제공한다.
우선, 현행법상 기초자치단체가 광역시로 승격하려면 인구 100만 명을 초과해야 한다. 또 도지사와 도의회의 찬성 의견을 거쳐 행정안전부장관의 동의, 국무회의 의결, 대통령 재가를 거치면 가능해진다.
창원시가 요건을 갖춘 것은 인구수뿐이다. 그 외에는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다. 도지사와 도의회도 찬성하지 않을 뿐더러 찬성할 수도 없는 구조이다. 경기도는 인구 요건을 충족하는 도시가 5곳이나 되는데, 광역시 승격을 추진하는 도시는 단 한 곳도 없다. 실현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창원시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대선후보들이 창원광역시 승격을 공약으로 반영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단 한 명의 후보도 공약으로 반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문재인 대통령이 창원광역시 승격을 찬성할까? 문 대통령은 후보시절 마산지역 유세에서 ‘창원은 자치분권이나 자치재정 능력을 높이는 특례시 형태로 운영하겠다’는 공약을 했다. 이런 점에서도 광역시 승격은 가능성이 없다.
다음으로, 지금 국회에 계류된 광역시승격특별법을 통과시키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르긴 해도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본다. 긴급하고 현안인 법률안이 부지기수로 많은데, 관심을 끌지 못하는 창원광역시 법안은 통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도 지금은 광역시 승격을 추진할 때가 아니다. 예정대로라면 내년 지방선거와 함께 헌법개정안도 국민투표에 부쳐질 것이다. 헌법개정안에는 중앙권력구조의 개편이 핵심이겠지만, 지방자치와 지방분권도 최우선의 화두가 되고 있다. 따라서 당연히 행정체제 문제가 언급되거나 헌법 개정 후 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 등이 제정될 것이다.
이런 법체계가 정비되고 나면 자연히 지방자치단체의 행정구역과 규모 등에 따라 대변혁이 일어나게 된다. 창원시가 광역시가 될지, 통합 이전의 창원시를 분리해서 다른 자치단체와 폐치 분합을 할지는 그때 결정해야 한다.
한 가지 더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 시민의 열정과 참여로 이뤄냈다는 과거 대전과 울산의 광역시 승격은 지금의 상황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점이다.
대전시의 경우 관선으로 지명된 시장이 정치권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대통령과 정부의 지시에 의해 광역시 승격을 추진했다. 또 울산은 민선 초기였지만 경남의 동북부에 위치해 지역 자체의 광역시 승격 염원이 컸고, 경남도로서도 반대의 명분이 크지 않았다.
따라서 창원시가 대전과 울산의 사례를 언급하며 광역시 승격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것은 정확한 진단이 아니다.
창원시의 광역시 승격운동을 보면서 오래되지 않은 사례가 오버랩 된다. 김태호 도지사 시절 진주에 혁신도시 유치가 정부 방침으로 결정됐다. 당시 김 지사는 치열하게 유치운동을 벌였던 마산시민들의 상실감을 이용해 준혁신도시를 마산에 유치한다는 선거공약을 내걸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때 나는 준혁신도시 마산 유치 공약이 전혀 실현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마산시민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지지했다. 결과는 어땠는가. 결국 헛공약이었다.
또, 지난 2012년 도지사 보궐선거에 나온 홍준표 후보가 마창진 통합으로 분열된 통합창원시 시민들의 갈등을 교묘히 이용해 도청을 마산으로 이전하고 진해에는 의과대학을 유치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이 또한 지역 주민들을 선거 전략상 이용만 한 뒤 결국 폐기되고 말았다.
자치단체장이든 누구든 정치인이라면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일이 진정 시민을 위한 정책인지 가슴에 손을 얹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우리 역사에서 큰 분수령이 될 개헌이라는 도도한 큰 흐름을 읽지 못한 채 추진되고 있는 창원시의 광역시 승격운동은, 그래서 동의하기도 어렵고 불필요한 오해를 낳기도 한다.
가능성이 없는 일에 인력과 예산을 낭비하고 있는 창원시를 보면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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