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던 서울시 청년수당과 성남시 청년배당 정책이 보건복지부의 강한 반대로 대폭 축소된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청년을 복지의 영역으로 호명하고 금전적인 형태로 지원했다는 점에서 두 정책은 청년정책의 이정표라 불릴만 했다. 그런데 최근 청와대 캐비닛에서 발견된 문건은 서울시 청년수당 직권취소 명령이 청와대로부터 압력이 행사됐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굴뚝 연기의 주범이 의심의 여지없이 박근혜 정부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지방자치단체의 청년정책까지 꼼꼼히 발목 잡으려했던 전 정권의 비열함은 이제는 더 이상 놀라운 일도 아니다.
서울시 청년수당 시행 첫 해인 작년(2016년)에 보건복지부의 직권취소 명령에 따라 서울시는 3000여 명의 청년을 선발하고도 1회 지급에 그쳤다. 성남시 청년배당은 결과적으로 전액을 다 지급하긴 했지만, 시행 첫 해에 애초 지급하기로 했던 금전(성남사랑상품권)에 절반밖에 지급하지 못했다. 보건복지부 뒤에 청와대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이상, 직권 취소 처분은 당장 철회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유도 모른 채 수당을 도둑맞은 청년들에게 공식적인 사과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청년수당에 지원했다는 이유만으로 청년들은 '용돈 받는 벌레' 취급을 받으면서 수모를 겪어야 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우리사회가 그들에게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네야 한다.
청년수당을 흠집 내려는 정치권력은 사라져가고 있지만, 여전히 보수언론은 흠집 내기를 멈추지 않는다. 지난 4일, <조선일보>는 "엉뚱한 데로 새는 청년수당… 보고만 있을 건가요"라는 기사를 내고 "일부 청년들이 정당하지 않은 곳에도 카드를 쓸 수 있는 꼼수를 주고받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카톡방에 올라온 질의・응답 내용을 근거로 청년수당을 "엉뚱한 데로 새는" 낭비성 예산으로 교묘하게 등치시키고 있다.
일찍이 <조선일보>는 '상품권깡'이라는 프레임으로 성남시 청년배당을 흠집 낸 전사가 있다. 한 중고 상품 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몇 건의 글을 보고, 마치 청년배당 정책 자체가 심각한 하자가 있는 것처럼 교묘하게 기사화했던 곳이 조선일보다. 이번 서울시 청년수당 기사도 얄팍하기는 마찬가지다. 순전히 추축만으로 쓴 기사일 뿐 아니라, 청년수당 당사자나 담당 공무원을 인터뷰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단톡방에 올라온 몇 개의 질의・응답 내용만으로 청년수당 자체를 비도덕한 정책으로 보이게 하는 건 너무 비열하다.
청년수당은 직・간접적인 구직활동에 사용해야 한다. 학원수강료, 응시료를 비롯해 식대, 교통비, 통신비 등에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직・간접적 구직활동'이라는 기준은 상황에 따라 모호한 경계선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청년배당 대상 청년들은 홈페이지 게시판에 사용처에 대한 질의를 끊임없이 한다. 가령, 새벽에 일이 끝나는 아르바이트생이 은행 창구에서 어떻게 교통비를 충전해야 하는가? 연체된 통신비로 사용해도 되는가? 임용고시를 위해 시력교정용 안경을 구입하면 안 되는가?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관련 부서 담당자들도 바쁘게 대응해야 한다.
조건부 수당은 이처럼 사용하는 이나 관리하는 이 모두에게 해석의 여지를 주게 된다. 본질을 짚지 못한 보수언론의 억지 추측의 기사로 인해 정책의 대상자나 관리자들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숲을 보지 못하고 개별 나무에 집착하는 과정이 반복되면 정책의 효용성마저 의심받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조건부'라는 한계를 거두지 않고, 부차적인 것만 개선한다고 문제는 해소되지 않는다. 청년수당이 한 단계 더 진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보편성을 확보할 것인가로 나아가야 한다.
지난 6월, 통계청에 따르면 청년실업률은 10.5%였다. 단시간 노동자, 시험 준비생, 경력단절여성 등이 포함되는 체감실업률은 23.4%가 넘는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포인트가 높아진 수치다. 통계만으로도 청년의 고용상황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은 저성장 시대의 청년의 삶은 불안하다.
청년 관련 갖가지 지표가 이를 잘 보여준다. 실업률뿐 아니라, 주거빈곤율, 소득증가율, 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비율, 비정규직 비율, 사회보험 가입률, 청년 부채 등 취약계층에 청년이 제외되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그래서 서울시와 성남시가 거대한 한 발을 내딛은 후, 올해부터 경기도, 부산시, 대전시, 경상북도 등이 이름은 다르지만 청년수당 정책을 도입했다. 단순히 청년이 불쌍해서 지급하는 것이 아니다. 시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청년의 권리다. 청년은 노동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 전통적인 상식이었다. 그러나 노동력을 수용해야 하는 노동시장은 점점 위축되는 경향이 강하고, 이에 따라 일자리의 숫자와 질이 예전 같지 않다.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가 그렇다.
그런 점에서 청년수당 혹은 청년배당은 청년에게 숨통을 틔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가까운 미래에 부모와 노인세대를 부양할 만큼의 사회적 부를 쌓아야 하는 청년에게 이 정도의 복지 정책은 결코 과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쉬운 점이라면, '서울시 모델'보다는 '성남시 모델'이 더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해부터 부산, 대전, 경기, 경북 등에서 시작한 청년정책은 서울시 청년수당 모델을 이어받고 있다. 가구소득에 대한 증명서를 비롯해 지원조건에 해당되는 각종 서류를 준비하고 구직활동계획서까지 작성하여 제출한다는 것이 공통된 조건이다. 심지어 대전시의 경우는 1차 정량평가와 2차 정성평가까지 거쳐야 한다. 지원받는 금전은 모두 구직활동에 국한하여 사용해야 한다.
절차가 복잡하고 심사를 거치고 사용범위도 제한적이라면 행정적 비용이 추가적으로 발생할 뿐만 아니라 대상 청년들의 태도가 소극적일 가능성이 크다. 보편 정책은 그 반대편에 있다. 성남시 청년정책이 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는 해가 갈수록 더 적은 노동으로 더 많은 양의 상품을 생산하는 '높은 생산력의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인간은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따라잡을 수 없다. 그래서 앙드레 고르는 "노동의 양으로 임금이 결정되면 사회구성원들이 삶을 지탱할 수 없음에 따라 사회의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는 소득"을 주장했다.
우리사회가 보유한 재화와 용역은 과연 어디서부터 왔는가? 우리는 이런 질문에 "모든 사회구성원으로부터 창출되었다!"고 대답해야 하고, 사회가 보유한 재화와 용역으로부터의 이익을 나눠가질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이 배당의 개념이든 소득의 개념이든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기본권이자 시민권으로서 수용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청년수당을 넘어 청년기본소득으로 한 발 더 나갔으면 좋겠고, 내년 지방선거의 주요한 의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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