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에 맞춰 이뤄지리라 던 북의 미사일 발사는 그 다음날인 28일 이뤄졌다. 평안북도 구성군에서 탄도미사일 발사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었다는 보도와는 달리 자강도에서 발사가 시행됐다. 대신 문재인 정부가 제안했던, 그리고 기대했던 남북군사회담은 없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북의 행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인디아발(發) 대화 제의와 거부
북의 행태는 일차적으로 북의 책임이다. 유엔 결의안 위반에 대한 책임,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에 충격을 준 것도 북의 책임이다. 말해서 뻔한 당연한 이런 명제를 넘어서 보면 아쉬운 부분이 보인다. 북의 선택은 한국 및 미국과의 전략적인 상호관계 속에서 이뤄진다는 부분이다. 한국이나 미국의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서 북의 선택이 달라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 6월 21일 인디아 주재 북한대사가 한 발언에 대한 한·미 당국의 선택이 중요했다. 계춘영 북한대사는 인디아 방송 위온과 한 방송에서 "미국 측이 잠정적이든 항구적이든 대규모 군사훈련을 완전하게 중단한다면 우리 또한 (핵과 미사일 실험을) 잠정적으로 중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정한 상황에서 우리의 요구조건이 충족된다면 무기 실험 유예 조건을 협상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반도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 방안을 논의하자"고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북의 이러한 입장은 이전보다 진전된 것이었다. 한미군사훈련을 중단하면 핵실험을 중단하겠다는 과거의 입장에 미사일 실험 중단까지도 추가했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이 핵미사일을 개발하기 위해 막무가내로 돌진하고 있다고 많은 이들이 말하지만, 사실은 북이 스스로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중단할 수도 있다고 먼저 대화를 제안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 정부는 그 다음날 이 제안을 거부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북의 ICBM 발사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던 것이다. 북이 무슨 의도로 이런 제안을 했는지, 만약 한국과 미국이 이를 받았을 때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했을지는 알 수 없다. 북의 진정성을 테스트해볼 기회를 우리 스스로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북의 제안을 받았을 경우 적어도 ICBM 시험발사가 이렇게 빨리 진행되는 것은 막았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라는 추정은 할 수 있다. 그 이후 이뤄진 문재인 정부의 남북군사회담 제안이 성사될 가능성도 높아졌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을 하루 만에 완전히 닫아버린 것은 박근혜 정부의 행태를 되풀이 한 것이니 아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016년 7월 6일 북의 정부 대변인이 비핵화 제안을 했으나 박근혜 정부는 이를 즉각 거부했다. 북은 이후 9월 9일 5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북의 대화 제안을 거부한 이유도 아쉽기 짝이 없다. 북의 핵과 미사일 실험은 유엔 결의안을 위반한 불법행위이지만 한미 연합훈련은 합법적 성격의 군사훈련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일찍이 리온 시갈이 '북핵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한 '죄와 벌'의 논리이다. 하지만 이러한 형식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유엔 결의안이 만들어진 목적을 망각한 것이다. 북이 핵 및 미사일 실험을 할 때마다 유엔에서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목적은 북의 무기 개발 행위를 중단시키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유엔 결의안 자체가 목적이 되어 북이 스스로 무기 개발을 중단할 의사를 표시해도 이를 수용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목적과 수단을 뒤집어서 보는 도착된 시각 때문에 ICBM 발사 동결의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것이니 아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위태로운 역사인식: 장진호 전투와 흥남 철수
이러한 도착된 시각의 근원에는 더욱 심각한 사고의 편향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오랫동안 굳어진 미국 중심주의적 사고가 문재인 정부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가 한국 정부의 선택을 강제하고 있다는 현실은 문재인 대통령의 첫 대외활동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월29일 미국 방문시 첫 공개행사로 장진호 전투 기념비에 헌화를 하고 기념사를 했다. 그 기념사는 미국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고마움"의 서사였고 "세계전쟁 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를 거둔 한미동맹의 토대 위에서 "북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 나아가 동북아 평화"를 성취하겠다는 다짐이었다. 이 기념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가족사와도 연결되어 많은 사람에게 인간적 감동을 주기도 했지만 21세기 국제정세 속에서 냉정히 평가할 때 심각할 정도로 미국 중심적 세계관에 경도된 것이었다.
우선 장진호 전투가 어떤 것이었는가? 1950년 낙동강까지 파죽지세로 진격했던 북한군을 38선 이북으로 몰아내고 서울을 수복한 미국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38선을 넘어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북진했다. 한반도를 분단한 38선을 북이 침범한 데 이어 미국이 그 분단선을 넘어 선 것이다. 북한의 공격으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어하고 평화와 안전의 회복을 지원하라는 유엔 결의안의 권고 내용도 넘어서는 행동이었을 뿐만 아니라 38선을 넘지 말라는 중국의 거듭된 경고도 무시한 것이었다. 그 결과 중국이 행동에 돌입했다. 사상최초의 미·중 군사충돌에서 미국 제1해병사단이 중국인민지원대 제9병단에 포위되어 전멸할 위기를 겪었다가 천신만고로 후퇴에 성공한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가 장진호 전투였다.
이러한 전투의 기념비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헌화하며 미국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고마움"만을 포현한 것은 현재 동북아시아 국제질서에 비추어 볼 때 많은 아쉬움을 주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한국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국 사이에 있으며 둘 중 어느 하나를 배척하고는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없다. 그 구체적인 내용과 정도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양국과 모두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는 이의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장진호 기념비에서 공개적으로 천명한 역사인식은 '미국 찬양' 한 가지였다. 이와는 달리 장진호 전투에서 미군 2500여 명이 전사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군도 2만5000여 명 사망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면 어땠을까? 왜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에 모두 처참한 피해를 준 비극적 전쟁은 이제 영원히 종식되어야 하며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했을까? 미국만을 역사의 중심에 놓고 장전호 전투를 보는 역사인식이 그 원인의 하나가 아닌가. 그 결과 문재인 대통령은 동북아시아에서 한국의 위치를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는 길을 선택하겠다고 천명하며 대한민국의 손을 스스로 묶은 것이다.
장진호 기념비 기념사에 드러난 인식의 한계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장진호 전투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흥남 철수에 대한 역사적 몰이해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민간인 10만여 명을 남쪽으로 철수시켰고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도 이 피난민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왜 이 많은 인원이 피난을 했는지는 묻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6일 시작됐고 흥남 철수는 12월 15일부터 시작됐다. 과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10만이라는 많은 사람이 갑자기 피난을 했을까?
그 답은 11월 30일에 열린 트루먼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중국군에 미군이 참패를 당하자 놀란 트루먼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군비증강을 발표하면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날 "핵무기 사용의 적극적 고려"가 있다는 그의 발언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 발언이 정책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백악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2차대전이 종식된 이후 최초로 핵무기가 사용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심지어 미국의 동맹국 영국의 애틀리 수상은 핵무기 사용을 만류하기 위해 즉시 워싱턴으로 날아와 트루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정도였다.
흥남 철수 등 피난민들의 증언에서도 이러한 우려는 확인된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었고, 10만이 넘는 많은 '피난'민이 피하려고 했던 난리도 핵전쟁이었다. 그리고 차후의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트루먼 행정부가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한 것만 아니라 실제로 핵무기를 한반도에 투하할 조치들을 취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가족사에서, 또 많은 피난민에게 있어서 흥남 철수는 중대한 전기였지만, 이 사건에 어른거리는 것은 미국의 핵무기 위협이었다. 일국의 대통령이 전쟁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흥남 철수 당시 군함에서 미군이 나눠준 사탕은 얘기하면서, 민족에 참화를 가져올 수도 있었던 핵무기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매우 미흡한 것이었다. 물론 오래 전의 얘기를 꺼내서 미국을 비난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의 핵무기는 오늘도 한반도의 북부를 겨냥하고 있고, 미국은 적어도 1950년 11월부터 지금까지 그 위협을 거둔 적이 없다. 북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중요한 구실이기도 하다. 해서 문재인 대통령은 흥남 철수를 얘기하며 이제는 핵위협을 한반도에서 완전히 거둬들여야 한다며 한반도 비핵화를 절절히 구했어야 한다. 그 누구보다도 이 요구를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지 않았는가.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를 촉구하는 대신 "북핵 폐기"를 요구했다. 이러한 편협한 역사인식,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핵위기를 논하는 대신 사탕을 얘기한 대통령의 역사인식은 위태롭기 짝이 없다.
'단호한 대응'을 위하여
북이 ICBM을 시험발사한 후 모두가 단호한 대응을 얘기하고 있다. 맞다. 단호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단 과거와 똑같이 제재와 군사적 대응을 지루하게 되풀이하는 것이 단호한 대응은 아니다. 실패한 과거와 깨끗이 단절하고 담대하게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단호한 대응이다. 촛불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민심은 70%를 넘는 지지율이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지지를 살려서 남북관계와 외교안보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가 보여준 인식에 대한 깊이 있는 자성이 필요해 보인다.
공자가 오래 전 말했다.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고 부끄러움이 없다면 대체 무엇을 걱정하고 두려워하겠는가?" 이러한 내성(內省)이 이뤄져야 지금까지 실패한 것으로 판명난 정책들과는 다른 길로 들어서는 과감한 행동이 따를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운전대를 쥐었다면 한반도 평화를 향한 방향으로 제대로 운전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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