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밤 북한이 다시 미사일 시험 발사를 감행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일곱 번째이며, 7월 들어서만 두 번째다. 특히 이번 미사일은 사거리가 8000킬로미터에 이르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으로 한반도 신뢰회복과 평화구축을 위한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 파격적인 조건을 담은 문 대통령의 대화 제의에 미사일 발사로 답한 북한의 진의는 무엇인가?
첫째는 향후 시작될 대화에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방편이며, 둘째는 미사일 개발과정에서 기술적 진보로 시험발사를 해야 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미사일은 핵무기를 실어 나르는 운송수단으로, 핵무기의 전략적 유용성을 담보하려면 핵탄두의 소형화와 못지않게 미사일 개발이 필수적이다. 강냉이죽으로 연명한다는 북한이 경제대국 남한도 성공하지 못한 ICBM급 로켓 기술에 근접할 수 있었던 바탕은 체제위기에서 비롯된 '절박함'이었다. 만일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성공한다면 동북아 정세의 판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나리오를 조속히 실현키 위해 김정은이 밤낮없이 현지지도를 불사하며 미사일 개발을 독려하였고 최근 상당한 기술적 진보가 시험 발사로 증명된 셈이다. 하지만 미사일을 개발하는 북한의 속내도 그리 편치는 않다. 미사일이 미국과 남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는 수단은 될지언정 체제위기를 극복하는 근본적인 방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도 자신들의 이러한 딜레마를 잘 알고 있고 대응방식을 모색하는 시점에 문 대통령이 베를린구상을 통해 새로운 한반도 평화 독트린을 발표한 것이다. 결국 이번 미사일 발사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이루어진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와는 달리 전향적 포석을 염두에 둔 시험발사라고 보여진다.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은 무엇보다 비현실적인 북한붕괴론에 기대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장 진정성 있는 한반도 평화구축 방안이라고 평가된다. 베를린 구상 발표 직후 나온 북한의 반응에서도 얼핏 그러한 속내가 드러난다. 하지만 베를린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좀 더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 사고가 필요하다. 지난 9년 동안 양측 모두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에서 너무 멀어졌기 때문이다. 평화로 회귀하는 길은 멀고 험하다. 짊어져야하는 짐도 무겁고 감내해야하는 고통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돌아가는 것이 숙명이라면, 북한의 단기적 대응방식에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 달콤한 제안 한 번에 핵이고 미사일이고 다 포기할 북한이라면 예전에 붕괴되어 흔적도 없을 것이다. 체제를 흔들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조만간 북한 정권 내부에서 다소의 반응이 포착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신호를 감지하고 그들을 협상으로 끌어내려면 비핵화에 대응하여 제시하는 교환조건에 대한 담보가 필요하다. 사실 북한이 저리 완강하게 핵무장을 고수하는 이유는 2005년 9.19 선언의 당사자인 미국이 협정 서명도 하기 전에 BDA은행에 있던 김정일의 통치자금을 동결했기 때문이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며, 이후 비핵화보다는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담보를 위해서는 우리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요구된다. 베를린 구상 실천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미국은 북핵 문제에 관해 사용할 카드가 거의 없다. 지난 9년 간 제재 일변도의 대북 기조로 유지하며 가용한 모든 카드를 써버렸기 때문이다. 최근 군사적 옵션이 자주 언급되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하지만 이는 한반도에서 전면전을 전제로 한 최후의 수단이므로 잃을게 많은 우리 입장에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또한 미국도 동아시아에서 대만과 필리핀 문제로 중국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동북아에서 중국과 또 다른 군사적 갈등을 야기하기는 쉽지않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상황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우리 정부의 운신의 폭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단언컨대, 북한은 조만간 또 다시 미사일 시험 발사를 감행할 것이다. 새판에서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나가기 위한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하는 경우, 이에 상응하는 압박과 제재도 필요하지만, 이는 베를린 구상의 실현이라는 큰 틀 아래서 국제적 공조를 통해 수행돼야하며, 이와 별도로 평화프로세스는 중단 없이 추진돼야한다. 베를린 구상은 긴 호흡을 요구하는 거대 프로젝트이며 이에 포함된 평화담론은 미사일 발사 몇 번에 좌절 될 수 없는 소명이기 때문이다. 상대측 교란 작전에 우리 포메이션을 바꾸면 바로 골을 먹는게 축구나 국제관계나 모두 마찬가지이다. 끈기있는 측이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다.
파울 슈마츠니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다니엘 바렌보임과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의 원제는 "Knowledge is Beginning"이다. 조국의 따가운 눈총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통해 중동에서 진정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분투하는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상대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공감(knowledge)이 평화의 시작(beginning)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조금만 객관적인 눈으로 보아도 이스라엘이 중동 분쟁에 끼친 영향이 적지않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일방적인 피해자이며 절대 화해할 수 없는 아랍 세계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주장하는 바렌보임이 국가를 공격하는 위험한 인물이라고 폄훼하며 그를 비난한다. 비슷한 영화가 한반도 상황을 소재로 만들어진다면, 제3국의 누군가가 영문도 모르고 강대국 정치에 휘둘려 한반도에서 대리전을 치르는 우리가 바렌보임을 비난하던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더욱 어리석고 답답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하게 되지 않을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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