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를 보면 1960년대 이후 압축적 현대화 과정에서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는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발전국가는 경제발전이라는 국가 목표를 설정하고 사회의 모든 자원을 동원하고 통제하면서 고도성장을 주도하였다. 한편 발전국가는 모든 집단과 개인을 지배하고 억압하면서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를 유지했다. 한국의 발전국가는 성장과 독재라는 두 개의 얼굴을 가졌다.
한국의 발전국가를 되돌아보면 야누스의 얼굴이 드러난다. 급속한 경제성장, 높은 소비 수준, 물질적 성공의 이면에는 권위주의, 정경유착, 노동조합에 대한 억압이라는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발전국가는 찬양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저주받는 악마가 되기도 한다. 발전국가의 이중성은 한국 현대사의 모순과 갈등을 보여주는 동시에 역사를 선악의 이분법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교훈을 보여준다.
신자유주의와 발전국가의 쇠퇴
독일 철학자 헤겔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해가 진 다음에 하늘로 난다고 말했다. 1980년대 고도성장을 이룬 다음에야 동아시아의 발전국가가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자유시장의 역할을 강조했던 세계은행이 1993년 ‘동아시아의 기적’ 보고서에서 동아시아 경제성장에서 국가의 역할이 중요했다고 인정한 것은 예외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발전국가론이 세상에서 인정을 받자마자 역사의 무대에서 물러날 운명에 처했다.
1997년 한국 경제를 강타한 외환위기가 관치경제와 정경유착에 의해 발생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발전국가가 지구화 시대에 걸맞지 않은 낡은 유물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 자유시장경제가 지배 담론이 되면서 정치인과 경제관료의 눈에 발전국가는 과거의 악령으로 간주되었다. 발전국가는 박정희 모델로 간주되면서 개발독재의 산물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대안이 없다’는 주장은 시장 만능주의를 합리화하고, 발전국가는 ‘죽은 개’가 되었다.
발전국가의 쇠퇴는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10년 동안 자유시장경제가 확산되면서 저성장과 빈부격차가 심화되었다는 논쟁이 제기되었다. 장하준 교수의 <한국경제 쾌도난마>와 장하준 교수와 신장섭 교수의 공저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만든 한국경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제공했다. 이들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정책 방향이 자유시장경제를 강조하고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면서 오히려 저성장과 양극화가 심화되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지나치게 탈규제, 공기업의 사유화, 자본시장의 개방, 무역 자유화, 노동 유연화를 추진하여 불평등이 커지고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활이 악화되었다고 보았다. 반면에 소득세와 법인세는 낮아지고 대기업 임원의 연봉은 상승하면서 부유층의 소득과 재산은 더욱 증가하였다. 이처럼 민주정부의 시기에 기업과 부유층의 부와 소득은 증가한 반면 빈곤과 불평등은 증가했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이 대안적 정치경제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불평등의 심화와 민주주의의 위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의 근본적 구조 변동이 일어났으며, 가장 중요한 변화는 경제의 신자유주의화이다. 미국에서 교육받은 경제학자들과 자유시장 경제를 추종하는 경제 관료들은 미국식 자본주의가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굳게 믿었다. 국가의 개입 대신 기업의 주주 가치(shareholder value)를 강조하는 주장이 정부뿐 아니라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널리 인기를 얻었다. 효율성과 경쟁의 원리에 따라 탈규제, 감세, 경제의 금융화와 지구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그러나 경제의 신자유주의화는 2007년 미국 월가에서 출발한 세계금융위기를 통해 심각한 위험에 직면했다. 그동안 글로벌 스탠더드로 간주되었던 미국 경제는 1929년 대공황 이후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였고, 전 세계의 수많은 시민들이 실업자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는 세계를 미증유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세계 경제의 위기는 일시적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인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이후 미국 정부가 추진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 바로 경제위기를 만들었다. 부자 감세가 투자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낙수 경제학은 참담하게 실패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의 대가>에서 낙수 경제학은 “이미 오래 전에 신빙성을 잃은 허무맹랑한 주장”이라고 주장했다.
1990년대 후반 한국의 신자유주의화가 이루어지면서 경제성장률은 낮아졌고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유연 노동시장이 급속하게 확대되면서 노동시장에서 저임금, 불완전 고용인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율이 절반 수준으로 급증하면서 사회적 불안이 급속하게 커졌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자살율과 낮은 출산율은 공공영역의 시장화와 사회문제의 개인화가 만든 한국 사회의 비극이다. 최장집 교수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주장한 것처럼 한국에서 대기업의 지배가 공고해지고 공공영역이 쇠퇴하는 현상은 곧 민주주의의 후퇴를 의미한다.
포스트민주주의와 기업의 지배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 신자유주의화가 진행되는 동안 신자유주의가 자유시장에 그다지 충실하지 않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국가는 노골적으로 자유시장을 무시하고 대기업에 특혜를 제공했다. 시장과 국가의 대결을 조정하는 정치의 역할은 사라지고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았다. 영국 사회학자 콜린 크라우치가 <포스트민주주의>에서 묘사한대로 형식적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글로벌 기업이 가장 강력한 정치적 행위자가 되었다.
2016년 한국을 뒤흔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배후에는 최순실이라는 개인뿐 아니라, 더 중요하게도 청와대-국민연금-재벌을 연결하는 거대한 부패의 커넥션이 존재한다.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현실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거나 옹호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큰 책임을 가지고 있다. 2016년 촛불집회에서 한국 시민의 항쟁이 일어나 대통령은 헌법 위반으로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되었지만, 공범자인 재벌 대기업은 모든 책임을 부정하였다.
지금 많은 학자와 언론인들은 정경유착을 비판하고 박정희 모델과 단절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기업이 국가와 시장을 지배하는 신자유주의화의 결과이다. 한국 민주주의가 신자유주의의 제물이 된 것은 분명하다. 재벌개혁과 소액주주운동은 찻잔 속에 태풍에 그쳤고, 결국 재벌 대기업의 지배는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우리는 모든 재벌 대기업을 없애자고 주장하거나 시장 자본주의를 철폐하자는 결론으로 뛰어들 수 없다. 그러나 경제 권력이 정치 권력을 좌우한다면 민주주의의 위기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제 국가가 평범한 사람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발전국가를 넘어
최근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공정경제, 4차산업혁명, 혁신성장, 포용적 복지국가의 목표를 제시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10년 동안 추진한 자유시장 접근법과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도 시장만능주의를 넘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참여자본주의, 적극적 복지국가, 민주적 발전국가, 사회투자 국가, 역량강화 국가, 기업가형 국가 등 다양한 담론과 논쟁이 등장하고 있다. 경제위기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자유시장 이데올로기 대신 새로운 대안적 국가 거버넌스 모델을 모색할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우리가 과거 발전국가의 시대에 돌아갈 수는 없지만, 발전국가를 무시하고는 한국의 현재 상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국가의 역할을 외면하면서 한국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국가의 역할을 재조명하려는 이 책이 2016년 촛불집회와 시민항쟁 이후 한국 사회의 전면적 개혁을 예고하는 시기에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발전국가는 역사의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글은 김윤태의 <발전국가: 과거, 현재, 미래>(김윤태 엮음, 도서출판한울, 2017)의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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