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국무총리가 29일 오후 3시 텔레비젼으로 생중계된 담화문 발표를 통해 총리직을 사임했다. 지난 해 9월 말 취임 이후 10개월여 만의 퇴진이다.
정 총리는 △세종시 수정안을 관철시키지 못한 것 △대입 본고사·기여입학제·고교등급제를 금지하는 '3불 정책'을 바꾸지 못한 것 등에 대해 강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국가백년대계 위해 세종시 수정안 마련했지만…"
여당의 지방선거 패배, 세종시 수정안 국회 본회의 부결 이후 수 차례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던 정 총리는 "여러 번에 걸친 사의표명 이후에도 국무총리직을 지킨 이유는 6·2 지방선거부터 7·28 재보궐 선거에 이르는 일련의 정치일정 속에서 자칫 동요할 수도 있는 정부의 근무 기강을 확립하고 국정의 중심을 잡아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다행히 7·28 재보궐 선거가 마무리된 지금 주요 정치 일정들이 일단락되면서 대통령께서 집권 후반기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여건과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국가 운영의 원칙을 바로 세우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로하며, 사회의 그늘진 곳을 밝게 하는 균형추의 역할을 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 했다"면서 "그러나 당초 제가 생각했던 일들을 이루어내기에 10개월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고,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은 너무 험난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재임기 국정 난맥상의 원인을 외부적 요인 탓으로 돌린 것.
그는 "'3불정책'이라는 도그마에 사로잡힌 현재의 교육시스템을 '3화정책'으로 정착시키지 못한 점은 아직도 아쉽기만 하다"면서 "무엇보다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세종시 수정안을 마련했지만, 이를 관철하지 못한 점은 개인적인 아쉬움의 차원을 넘어 장차 도래할 국력의 낭비와 혼란을 방지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불러일으킨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지만 용산문제 해결은 가장 보람된 일"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정 총리는 "다만 국정의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후임 국무총리가 결정될 때까지 최소한의 책무는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높은 점수 주기 힘든 10개월…'정운찬 역할론'은 여전?
정 총리가 재임한 지난 10개월에 대한 평가는 박한 편이다. 잠재적 대권주자로까지 꼽혔던 정 총리의 발탁은 정치권 안팎에서 긴장감과 기대를 불러일으켰었다. 하지만 인사청문회에서 부터 크고 작은 흠결과 말실수가 터져나왔다.
또 총리 임명 전 "세종시는 경제학자인 내 눈으로 볼 때 효율적인 모습은 아니다"라며 수정론에 불을 지피고 취임 이후 13차례 충청권을 찾는 등 세종시 수정안 관철에 매진해 '세종시 총리'로까지 불렸지만 국론은 분열되고, 수정안은 부결됐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는 "잘못된 약속도 지키려는 여자가 있다"는 등의 발언으로 비난을 자초했고 국회 대정부 질문, 고 이용삼 민주당 의원 빈소 방문 등의 자리에서 다양한 실언을 쏟아냈다.
최근 불거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문제에 있었서도 정 총리는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을 뿐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로 인해 정 총리와 개인적 친분이 있는 인사들 사이에서도 "대권 도전은 물 건너 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던 점, "그래도 그만한 인물도 없다"는 여권 일부의 견해, 세종시 문제 등에 대한 친이 진영과 강력한 공감대 등을 근거로 '정운찬 역할론'도 그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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