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식품기업 오뚜기의 주가가 코스피 시장에서 7% 넘게 급등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27∼28일 14대 재벌그룹과의 대화 자리에 재계 순위 232위 오뚜기가 유일하게 초청받았다는 소식이 지난 주말 알려지면서다.
오뚜기는 청와대에 초청된 14개 재벌그룹 중 자산규모가 가장 적은 CJ의 28조 원과 비교해도 차이가 한참 난다. 1조5000원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 총수들과의 첫 집단 대면을 하는 자리에 오뚜기 총수를 초청한 것에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
만일 문 대통령이 재계 총수에 대한 임명권을 가졌다면, 오뚜기 총수를 임명했을 것이라는 비유까지 나오고 있다. 그만큼 오뚜기와 관련해서는 문재인 정부가 이상적인 대기업으로 꼽는 미담이 차고 넘친다.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갓뚜기'라는 별칭으로 칭송의 대상이 될 정도다.
문 대통령에게 오뚜기가 모범기업일 수밖에 없는 미담은 여러 가지다. 우선 정규직 일자리 창출을 공약 1호로 내걸고 있는 문 대통령에게 오뚜기는 거의 완벽한 정규직 고용 모범 기업이다. 창업주 고(故) 함태호 명예회장의 "절대로 비정규직을 고용하지 말라"는 경영철학을 함영준 회장이 대를 이어 실천하고 있다.
정규직 고용, 사회봉사, 상속 등 모범사례 넘쳐
지난 3월 말 기준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오뚜기 전체 3099명의 직원 가운데 기간제는 1.16%인 36명뿐이다. 지난 2015년 오뚜기가 마트 시식 판촉사원 1800여 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고용한 덕분이다. 지금도 대형 마트의 시식코너에서 일하는 판촉사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인 현실에서 정규직 고용 대기업의 모범으로 '갓뚜기'라고 불릴 만하다.
또한 오뚜기는 지난 1992년부터 심장병 어린이의 수술 비용을 후원해 왔다. 지난해 12월까지 이 혜택을 받은 심장병 어린이는 4357명에 이른다. 지난 2012년부터 장애인학교와 장애인재활센터를 운영하는 밀알재단의 '굿윌스토어'와 손을 잡고 다양한 자원봉사도 한다.
토스트 업체인 석봉토스트가 노숙자와 어려운 이웃에게 토스트를 무료로 나눠준다는 소식에 듣고 마요네즈 등 각종 소스를 2000년대 초부터 10년 동안 무상으로 제공한 것도 오뚜기의 남다른 미담이다.
삼성 등 재벌그룹들이 사회적 지탄을 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에서도 오뚜기는 모범적이다. 지난해 9월 함태호 명예회장이 작고하면서 함영준 회장이 상속세 1500억 원을 5년 분할로 성실납부하기로 했다. 상속세·증여세법에 따르면, 30억 원 이상의 상장 주식에 대해서는 상속·증여세 50%가 부과된다. 함 회장은 상속 지분으로 오뚜기 자분 28.91%를 소유한 오뚜기의 최대주주가 됐다.
그뿐이 아니다. 오뚜기의 라면 가격은 2008년 이후 10년째 동결돼 있다. 밀가루 등 재료 값이 모두 올랐으나 소비자에게 부담을 돌리지 않은 선택은 경쟁업체들과도 크게 대조가 된다.
그러나 함영준 회장이 '모범 대기업 총수'로 임명돼 청문회 자리에 섰다면,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오뚜기라면은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생산·판매되고 있다.
비상장사로 함영준 회장이 최대 지분을 가지고 있는 오뚜기라면은 일종의 개인 회사다. 지난해 말 기준 함영준 회장의 오뚜기라면의 지분은 35.63%, 2대 주주인 오뚜기의 지분율은 24.20%다.
오뚜기라면이 라면을 제조하면, 거의 전량을 오뚜기가 사들여서 판매한다. 오뚜기가 라면을 제조하고 판매하면 되는데, 오뚜기가 오너 회사에서 라면을 사와서 판매하는 방식인 것이다.
한마디로 오뚜기라면의 내부 거래 비중은 100%에 가깝다. 지난해 오뚜기라면의 매출액 5913억 원 중 내부거래로 발생한 매출액은 5892억 원이다. 당연히 오뚜기의 일감 몰아주기는 오뚜기의 주주 이익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의 기업집단에 속한 회사가 총수 일가의 지분이 일정 비율을 넘는 계열사와 거래하면 이를 일감 몰아주기로 규제하고 있다. 규제 대상은 총수 일가 지분 30% 이상인 상장사와 20% 이상인 비상장사다.
만일 오뚜기의 자산규모가 5조 원이 넘으면 일감 몰아주기로 총수가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 범죄다. 그러나 자산 규모가 크지 않아 규제 대상이 아닐 뿐이다.
재계에서는 오뚜기라면의 이런 내부거래가 함 회장의 상속세 마련을 위한 '불가피한 꼼수'로 보고 있다. 대기업을 가업으로 보고, 대물림을 하려는 총수 일가는 현행 상속세 체제에서는 편법적인 증여나 상속을 하거나, 상속세를 일감 몰아주기로 조달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뚜기라면의 주식 배당금도 최근 2년간 가파르게 뛰었다. 배당률은 주식 액면가 5000원과 같은 100%에 달해 배당금은 2년 연속 50억 원이 넘었다.
지난 2월 "오뚜기가 자산이 5조 원에 미달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오뚜기물류서비스, 오뚜기에스에프, 알디에스, 상미식품 등을 통한 총수 일가 일감 몰아주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던 경제개혁연구소 등 경제관련 시민단체들은 "오뚜기 같은 중견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기업과의 대화에 배석하는 정부 관료 중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 후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위해 하림 그룹을 상대로 첫 직권 조사를 강도 높게 밀어붙이고 있다.
23일 청와대 관계자는 "오뚜기는 대기업과의 대화 첫날인 27일 참석 예정"이라면서 "오뚜기는 여러 가지 방면에서 모범적인 기업이기 때문에 초청하게 됐다"라고 유일하게 비재벌그룹중 초정된 배경까지 친절하게 밝혔다.
문 대통령이 오뚜기를 초청하면서 던지려는 메시지는 분명하지만, 그 메신저로 삼은 기업에도 역시 어쩔 수 없는 명암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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