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다섯 번째 광우병이 발생했다. 따라서 안전성이 확인될 때까지, 잠정적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 초기 대규모 촛불집회를 통해 확보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 부칙 6항에 보장된 권리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보도한 언론 및 정부의 대응은 지나치게 안이하다는 지적이 있다. 예컨대 미국에서 네 번째 광우병이 발생했던 2012년, 이명박 정부는 미국 현지 조사단을 파견했다. 미국에선 소의 이력추적제가 시행되지 않는 탓에, 미국 측 발표만으론 안전성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촛불집회의 영향도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 다섯 번째 광우병이 발생한 지금, 한국 정부는 미국 측 발표를 그대로 인용할 뿐이다. 정부 차원의 안전성 확인 절차는 미국산 쇠고기 현물 검사 비율을 현행 3%에서 30%로 높이겠다는 것뿐이다. 미국 현지 조사단을 파견했던 이명박 정부와 대조적이다.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앞둔 시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태도가 특히 답답하다.
언론 역시 부정확한 보도를 한다. <프레시안>은 통상 전문 변호사 및 보건의료 전문가의 설명을 빌어, 사실 확인을 했다.
첫째, 광우병 의심인가, 광우병 판정인가?
이번 사태를 보도한 언론이 사용한 표현은 각양각색이다. 일부 언론은 미국에서 광우병 의심 소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미국 농무부 발표문 원문을 보면, ‘광우병 판정 소’라고 보는 게 맞다. 영어 원문은 이렇다.
"USDA Animal and Plant Health Inspection Service’s (APHIS) National Veterinary Services Laboratories (NVSL) have determined that this cow was positive for atypical (L-type) BSE"
미국의 동식물 검역 기관이 이 소가 L-타입 비정형 광우병 양성 반응을 보인 것으로 판정했다는 내용이다. ‘광우병 의심’이라고 번역할 여지는 없다. 통상전문변호사인 송기호 변호사는 "'의심 소'라는 프레임을 누가 만들었습니까"라고 되물었다.
둘째, 비정형 광우병은 정형 광우병에 비해 덜 위험한가?
광우병(BSE)은 크게 정형(classical)과 비정형(atypical)으로 나뉜다. 미국에서 발생한 5건의 광우병 가운데 2003년 1건을 제외한 나머지 4건 모두 비정형 광우병이었다. 상당수 언론 보도 및 정부 발표는 ‘이번에도 비정형 광우병이므로, 덜 위험하다. 혹은 안전하다’라는 입장이다. 근거는 주로 미국 육류 업체의 발표다. 이런 주장, 믿어도 될까.
보건의료 전문가, 활동가들로 구성된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및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회가 20일 반박 보도자료를 냈다.
"비정형 광우병의 경우도 그 위험성이 이른바 정형 BSE와 다를 바 없다. 유럽식품안전청 등의 자료에 의하면, 이번에 발견된 L-type 비정형 광우병의 경우 영장류 실험에서 먹는 것으로 전파되는 것이 확인되었고, 일부 영장류 실험에서는 전형적 광우병보다 잠복기가 더 짧아 독성이 더 높을 수 있다는 것이 시사되기도 했다. (…)
미국질병통제본부(CDC)는 비정형 광우병이 (정형 광우병과 마찬가지로) 프리온 질병의 또 하나의 계통일 수도 있으며, '사료나 환경에 의한 전파가 배제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L-type 비정형 광우병에 감염된 소의 고기를 먹는 것으로 병이 전파될 수 있다. 인간을 상대로 실험할 수는 없으므로, 영장류 실험을 했을 뿐이다.
셋째,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지나친 조치 아닌가?
한국 농림축산식품부가 이런 입장이다. 수입 중단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광우병이 발견된 앨라배마주에는 한국으로 쇠고기를 수출하는 도축장·가공장이 한 곳도 없다“며,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옹호했다.
건강과 대안 및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회는 한국 정부의 이런 태도가 너무 낙관적이라고 본다. 미국 농무부 발표에 담긴 정보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미국 측은 광우병에 걸린 소가 도축 전 축산 시장에 배달 된 후에 그 지역에서 사망했다고만 했다. 광우병 소가 어느 농장에서 왔으며 어떤 시설에서 길러졌는지 등에 대한 정보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마냥 신뢰한다면, 그게 비과학적인 태도다. 충분한 근거 자료에 바탕한 판단이 과학적 태도에 가깝다.
공개된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면, '사전예방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위험성과 안전성이 모두 입증되지 않았다면, 위험성을 전제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험과 안전의 수위가 입증되면, 그때 다시 경계 수준을 조절해야 한다. 이런 입장에 따르면, 전면적인 역학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위험을 전제로 대응해야 한다. 잠정적인 수입 중단을 요구하는 주장이 과학적 태도에 더 가깝다.
법적 근거도 있다. '미국산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 수입위생조건' 5조에는 "미국에 광우병(BSE)이 추가로 발생하는 경우, 미국 정부는 즉시 철저한 역학조사를 실시하여야 하고 조사 결과를 한국정부에 알려야 한다. 미국정부는 조사 내용에 대해 한국정부와 협의한다"고 돼 있다. 그리고 부칙 '제2008-15호, 2008.6.26.' 6항에 따르면, "수입위생조건 제5조의 적용과 관련하여 한국 정부는 GATT 제20조 및 WTO SPS 협정에 따라 건강 및 안전상의 위험으로부터 한국 국민을 보호하기위해 수입중단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돼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은 한국과 미국의 약속에 따른 권리다.
넷째, 미국 축산업의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상당수 언론, 그리고 정부 발표가 미국 육류 업체의 발표를 인용했다. 하지만 미국 축산 및 육류 산업은 보건 안전 측면에서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도 된다.
건강과 대안 및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회의 보도자료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현재까지도 미국은 소가 돼지와 닭을 먹고 돼지와 닭이 소를 먹는다. 교차오염의 위험성을 피할 수 없는 사료정책이다. 2008년 한국의 촛불운동의 영향으로 소의 뇌와 척수를 사료에서 배제하는 미국정부의 조치가 이루어지기는 했다. 그러나 이는 소의 광우병 특정위험부위 전체를 사료에서 배제한 조치도 아닐 뿐더러 유럽에서 시행하는 소(및 농장동물)에게 동물성 사료를 전면 금지한 유럽의 사료조치에는 크게 못 미치는 조치다.
이외에도 미국은 소의 이력추적제가 시행되지 않아 역학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광우병 검사도 유럽은 물론 캐나다에 비해 매우 뒤쳐져 있다. 비정형 광우병의 경우 여전히 사료와 환경적 요인에 의한 원인을 배제할 수 없음에도 이에 대한 확실한 역학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번 광우병 발생 소가 도축을 위한 가축 시장에서 발견된 것도 사전에 이런 위험 소들에 대한 우선적인 검사들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산 소고기 수입조건은 강화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 시기, 민간기업의 합의로 수입이 배제된 30개월 미만의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을 수입에서 배제해야 한다. 최소한 대만의 수입위생조건과 동일하게 광우병 위험이 있는 내장과 분쇄육도 수입을 금지해야 한다. 이 내장이나 분쇄육은 맥도널드 햄버거 분쇄육 논란으로 제기된 O157등의 시가독소대장균(STEC)에 의한 식중독의 흔한 원인이기도 한 부위다.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 정부와 마찬가지로 과학적 근거가 바탕이 되지 않은 미국 정부의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정부가 되어서는 안된다. 2008년 촛불 운동이 2017년 촛불 항쟁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로 태어난 문재인 정부다. 따라서 이제 새 정부는 국민건강과 안전에 대해 분명히 책임을 지는 정부여야 한다. 이명박 정부조차 2012년 4번째 미국의 광우병 소 발견시 미국에 현지조사단을 파견했다. 특히 현 시기는 한미FTA 재협상(혹은 수정협상)을 앞두고 있는 시기다. 미국은 이 협상과정에서 앞으로 미국산 소고기 수입조건 완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현 정부의 강력한 대처를 요구한다. 미국의 책임 있는 역학조사가 시행될 때까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중단이 되어야 한다. 또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건이 인근 국가들과 동일한 조건으로 되어야 한다. 즉 내장과 분쇄육이 수입금지항목에 포함되어야 하며, 민간기업의 합의가 아닌 정부 간의 합의로 30개월 미만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이 배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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