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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에서 탄생한 '히어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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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에서 탄생한 '히어로'의 이야기

[ACT!] 영화 <파란나비효과>

<파란나비효과>는 지난 2016년 7월, 국방부의 성주군 사드배치 계획이 발표된 후부터 사드배치에 반대 하는 성주 주민들의 투쟁을 담은 영화이다. 사실 <파란나비효과>는 사드와 관련한 첫 영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관객의 입장에선 이 영화에 대한 여러 기대치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전문가의 분석을 통한 사드의 문제점과 해법 같은 것을 기대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전문가의 인터뷰나 자료 분석을 통해 객관적인 설득력을 만들어내는 것은 다큐멘터리가 취하는 흔한 방식 중 하나이긴 하다.

하지만 영화는 사드배치의 불필요성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와 전문가들의 증언보다, 사드가 들어와서 성주라는 지역의 사람들이 어떻게 변해가는 지에 대해 집중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사드라는 절대악의 생성과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마치 히어로영화가 그렇듯 절대악인 빌런(villain)의 탄생 과정보다 히어로(hero)의 탄생에 집중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 사실이 그렇다. 사드는 어느 날 갑자기 성주 지역에 뚝 떨어져 버렸다. 그렇다면 서사는 지금부터인 것이다. <파란나비효과>는 절대악에 맞서 싸우며 성장해가는 히어로 영화와 닮아 있다.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절대악에 맞서 두려움 없이 싸우지만 하늘을 날지도, 그렇다고 그 괴물 같은 사드를 휴지조각처럼 구겨서 던져버리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다른 헐리우드 히어로 영화만큼 흥미진진한 건 바로 각 캐릭터들의 성장과정이 그만큼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들의 변화 혹은 성장은 자신들의 반성과 고백에서부터 시작된다.

예를 들어 영화 속 이수미씨가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삼십 몇 년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간첩의 소행인 줄 알았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이국민씨가 "내가 백골단을 하면서 제일 싫었던 게 나도 모르게 투쟁가를 따라 부르게 되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집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다"라고 말하는 것도, 또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를 지지했다는 김정숙씨가 딸에게 "박근혜 찍지 않을 거면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던 것 역시 어쩌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드라마틱한 장치가 아닐까.

그런데 그들의 살아온 세월과 경험을 생각하면 삶의 가치관이 바뀐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미 완성된(혹은 완성되었다고 생각되는) 인격체의 변화는 쉽지 않은 법이다. 게다가 그들이 사는 지역이 ‘보지도 않고 1번을 찍는’ 경북의 어느 한 지역이라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절대악이라 할 수 있는 사드의 등장으로 자각의 계기를 맞게 된다. 히어로영화로 치자면 주인공이 드디어 자신은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깨우치게 되는 이야기의 시작인 셈이다.

▲ <파란나비효과>(박문칠, 2017)

자각 뒤 마주하는 적은 너무나 거대하다. 성주 주민들이 직면하게 되는 가장 궁극적인 적이 ‘국가’이기 때문이다. 절대악인줄 알았던 사드는 이렇게 ‘중간보스’ 쯤으로 밀려난다. 혈서(결과적으로 큰 밑밥이었지만)까지 써가며 함께 싸움을 시작했던 김항곤 성주군수는 제3부지(성주군 초전면 소성리)를 핑계로 사드배치 찬성으로 돌아서 버린다. 성주가 지역구인 이완영 국회의원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의심스러운 내부의 동지(영화 속 표현에 따르면 ‘관군’)였다가, 마치 짜여진 각본처럼 배신을 ‘때리고’ 절대악의 편에 서버린다. 평화를 위해 사드를 들여온다는 형용모순처럼 국민을 위해야 할 국가가 그 자체로 큰 모순이 되어 버린다. 국가의 부재.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제주 강정의 해군기지 반대 투쟁, 밀양과 삼평리의 송전탑 반대 투쟁 등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장면이다.

그렇다고 좌절할 순 없다. 그들은 국가라는 보다 분명해진 적에 대항해 새로운 싸움을 만들어 간다. 의심스러운 관군은 빠지고 의병만이 남은 싸움은 오히려 즐겁다. 그렇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드가 들어올 예정지인 성산포대를 수 킬로미터 인간띠를 만들어 둘러싸는 모습은 이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관군들은 자존심 버린 배신에도 모자라 비열한 공격을 감행한다. 남성들이 국가를 상대로 싸워 이길 수 있겠냐며 눈치를 살피던 때 사드배치 반대투쟁을 조직하고 싸움의 최전선에 썼던 주민들 중 대부분은 여성들이었다. 그런데 김항곤 성주군수는 관변단체들과의 회의 자리에서 이들을 향해 ‘술집하고 다방하는 그런 것들’이라며 여성비하 발언을 한 것이다. ‘국가’라는 거대 모순에 맞서 싸우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은 삶의 모순들 역시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잠시나마 함께했던 사람들의 이런 행태에 소름이 끼치지만 주인공들은 이 싸움 역시 피할 생각이 없다. 배미영씨의 말처럼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촛불집회에 나와 투쟁하는 이들이 권력의 기생충들보다 훨씬 떳떳하고 멋지기 때문이다. 싸우면 싸울수록 주인공들은 점차 완전체가 되어 가고 있다.

▲ <파란나비효과>(박문칠, 2017)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주민들 사이에 국가라는 절대악을 이길 수 있겠냐는 의구심 역시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 싸움은 성주라고 다르지 않았던 느슨한 마을 공동체를 더욱 활기차게 만들어주었고, 진심을 알고주고, 뜻 맞는 사람들과 무언가를 함께한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것임을 느끼게 해주는 싸움이었다. 이것은 어쩌면 일상에서의 작은 승리들 일지도 모른다. 성주주민들의 투쟁이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조롱거리로 전락했을지언정 뭐 어떤가. 히어로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언제 처음부터 ‘나 히어로요’ 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들도 처음에는 조롱과 무시를 당하지 않는가. 그러다 결국 악을 깨부수는 게 누구인가. 주인공들로 대변되는 성주 주민들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렇게 싸워나가며, 성장해 나가고, 작은 승리들을 일구어 갈 것이다. 물론 마지막 승리가 주인공의 몫임은 당연하다.

<파란나비효과>가 다른 히어로영화처럼 시리즈로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들은 분명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우리 사회의 부당함과 억울함이 있는 곳에 늘 나타나 활약을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어떤 부조리에 직면했을 때, 그들은 배미영씨의 말처럼 먼저 이렇게 질문하고 행동할 것이다. "아, 이러면 안 되지. 그럼 이제 내가 뭘 해야 하지?"라고. 주인공들은 이미 엄청나게 진화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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