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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병 없는 아기 얻으려 유전자 교정? 위험한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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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병 없는 아기 얻으려 유전자 교정? 위험한 시도!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인간 배아 유전체 편집, 시기상조다

인간의 유전정보인 게놈 전체를 처음 읽었을 때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유전자의 개수가 예상외로 적다는 것이었다. 인간이 복잡한 생물체이기에 과학자들은 인간의 유전자의 수가 다른 생명체에 비해 엄청 많을 것으로 기대했었으나 그 수는 많아야 약 2만5000개 정도로 알려졌다. 맥주나 빵을 만들 때 넣는 이스트라는 단세포 생명체의 유전자가 6200개 정도이고, 지렁이가 약 2만 개 정도임을 상기해 보면 정말 턱없이 적은 유전자 개수이다.

그런데 유전체 전체의 크기를 비교해 보면 사람의 유전체 내 DNA 염기서열의 양은 이스트의 220배, 지렁이의 30배 이상 많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즉 인간은 전체 유전자의 수는 많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유전자를 사용하는 스위치가 매우 복잡한 생물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과학적으로 알려지고 있는 결과들도 유전체에서 유전자가 차지하는 정보는 1% 내외이지만 이 1%의 유전자를 조절하기 위한 스위치가 전체 정보의 80% 이상이라고 한다.

우리 주변의 소, 개 등 우리와 친숙한 다른 척추동물들도 유전체의 크기에 비해 유전자 수가 적다. 따라서 유전자에 따라 한 개의 유전자가 한 가지의 생체 기능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의 발생 단계, 발현되는 장(腸)기나 세포의 종류에 따라, 또 외부의 다양한 자극에 반응하여 여러 가지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고 있다.

한 개의 유전자가 여러 가지 형질의 발현에 작용하는 유전자의 다면 발현 현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잘 알려져 왔다. 지난 반세기 분자생물학의 발전으로 많은 유전자 각각의 기능이 규명되었지만 기능이 알려진 대부분의 유전자가 가장 명백하게 알려진 기능 외에 다른 다양한 생리 현상에 관여하는지에 관한 정보는 아직 축적되어 있지 않다.

이렇게 장황하게 유전체와 유전자의 수, 그리고 유전자의 다면 발현 효과에 대해 설명하는 이유는 우리가 인간을 비롯한 복잡한 생명체에서 크리스퍼라는 방법을 이용하여 특정 유전자를 편집하는 것의 효과를 현재 우리의 생명과학 수준으로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따라서 크리스퍼 기술을 이용하여 쉽게 모델 생물체에서 특정 유전자를 하나씩 제거하며 어떤 생리적 변화가 나타나는지 관찰하는 방법으로 유전자의 기능을 규명하는 기초 연구는 꼭 필요하고 가치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유전자의 정보를 기초로 특정 유전자를 없애거나 바꿔치기 해서 실용성을 높인 개체를 만드는 것은 생명체에서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크리스퍼 기술이 성공적으로 적용되어 만들어졌다는 '광우병 내성 소'나 '근육강화 돼지' 등의 경우도 특정 유전자를 제거한 개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지, 이들의 수명, 노화, 질병, 정상적인 자손의 생산, 그리고 이들이 어떤 신체적 고통을 느끼는지 등 생명체로서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정보도 보고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의 배아 유전체에 크리스퍼 기술을 적용하고자 하는 시도는 시기상조이다.


우리는 모두 부모의 난자와 정자가 만난 수정란이라는 하나의 세포에서 시작된 생명체이다. 수정란은 발생과정에서 그 개수를 늘리고 기능을 다양하게 분화시켜 생명체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생명체가 태어나면 세포의 수는 수십 조 개가 되고 이들 세포 각각 마다 유전정보를 갖고 있다. 우리의 몸이 성장하는 것은 우리 몸의 이 많은 세포들이 계속 그 수를 늘리기에 가능하다.

또 다 자란 후에도 계속 특정 주기를 두고 새 세포로 교체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미 개체로 태어난 후 부모에게서 받은 정보인 유전체를 교정하거나 편집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고, 몸에서 분리한 후 다시 넣어줄 수 있는 혈액이나 골수에 있는 몇몇 세포를 제외하고는 가능하지도 않다.

그래서 소, 쥐, 돼지 등 다른 동물을 대상으로 특정 유전자를 편집할 때는 주로 수정란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기술을 적용하였다. 이렇게 해야 개체가 발생한 후에 전체 세포의 유전체 정보가 우리가 의도한대로 바뀐 개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여러 윤리적 우려 속에서도 인간 배아에 크리스퍼 기술을 적용하여 유전체를 편집하고자 하는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우리에게 하나의 유전자가 잘못되어 유전병이 발생하는 경우가 700 개 이상 알려져 있다. 이런 유전병을 중심으로 수정란의 유전체에서 잘못된 유전자를 크리스퍼 기술로 교정하는 유전자 치료가 지지를 얻고 있다. 과학자들도 인간 배아에 크리스퍼 기술을 적용해야하는 당위로 이런 경우를 들고 있다.

인간 수정란에 유전자 교정을 도입한다면 물론 이 수정란은 체외 수정에 의한 시험관 아기로 태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유전병이 없는 아기를 얻기 위한 선택지가 꼭 유전자 교정인지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 유전자의 이상에 의해 야기되는 유전병이 열성이면 부모가 모두 유전병을 일으킬 수 있는 변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경우에만 자손이 1/4의 확률로 병에 걸릴 확률이 있다. 유전병이 우성이면 주로 한쪽 부모만 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고 이 경우 자손이 유전병에 걸릴 확률은 1/2이다.

따라서 가계(家係)에 유전병이 있고 유전병이 없는 정상적인 아이를 낳는 것이 목적이라면 체외 수정을 한 후 배아의 유전정보를 검사해 정상적인 유전자를 갖는 배아를 착상시켜 아이를 낳는 방법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미 임상에서 검증되고 또 시행되고 있는 방법이며 비용도 많이 들지 않는다.

아직 인간 등 복잡한 생명체의 유전체가 과학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며 유전자들이 어떤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크리스퍼 가위를 적용한 교정은 성공 확률도 낮고 위험성도 높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윤리적 이유를 떠나서도 유전병 치료를 위해 인간 배아의 유전체에 인간이 손을 대는 행위를 논의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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