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 앞엔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남북관계를 둘러싼 안보 문제에 일자리 창출과 청년실업 해소, 비정규직 문제, 검찰 개혁, 방송 개혁, 교육 개혁, 재벌 개혁, 부동산 문제 등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이런 현실에서 철도 개혁 문제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문제로 비쳐질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철도 정책은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 정권 초기부터 방향을 잡고 끈기 있게 추진해야 잘못 설계된 정책 노선을 제대로 돌려놓을 수 있다.
이미 철도 정책의 나아갈 방향은 정해져 있다. 용인 경전철 혼란과 의정부 경전철 파산의 교훈은 무엇인가? 만성 적자구조였던 코레일이 비로소 흑자를 내다가 다시 적자 공기업의 굴레로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강남 지역 주변의 고속철도 이용자들에게만 할인 혜택이 주어지나?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같은 것들을 원천적으로 막는 방법은? 철도 현장에서 계속되는 노동자 사망사고를 막는 길은 무엇인가? 이와 같은 물음에 답을 달다 보면 철도가 가야할 방향이 어디인지 가늠할 수 있다.
극단적인 효율화 논리와 경쟁, 민영화 드라이브가 이제까지의 철도 정책이었다. 이런 정책 기조 속에 시설과 운영이 분리되고 수서발 고속철도 민영화가 추진되다가 현재의 SRT체제로 자리 잡았다.
최근 철도 민영화 정책의 수호자로 나선 <중앙일보>는 적극적으로 과거의 정책을 옹호하고 나섰다. <중앙일보>는 김대중-노무현을 거친 철도 개혁 정책을 문재인 정부가 원위치 시킨다는 자극적 제목으로 최근 신임 장관이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 방향에 제동을 걸고 있다. 현재까지 이어져온 철도 정책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개혁 정책이 아니었다. 김대중 정권은 출범초기부터 이전 정권이 초래한 IMF 구제금융 사태를 해결해야 하는 짐을 짊어졌다.
IMF는 기업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과 공기업 민영화를 지원 조건으로 내걸었다. 공기업 민영화는 국가기간산업을 국제투자자들의 수익추구 장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추진하게 된 정책이었다. 또한 이시기 득세했던 신자유주의의 위력은 민영화를 통한 공기업 개혁이 그럴듯한 정책 아젠더처럼 보이게 했다.
노무현 정권이 김대중 정권의 정책을 이어받았다면 철도 민영화는 진즉에 추진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 때에 마지못해 결정된 철도 민영화 정책이 노무현 정권 때 폐기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건재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전 정권에서 철도민영화에 사활을 걸었던 국토부 관료들이었다. 이들은 참여정부의 코드에 맞추는 척 하면서 철도 민영화를 위한 기본 틀을 관철시켰다. 그것이 시설과 운영의 분리, 철도에 시장 경쟁논리 관철 이었다. 철도 관련 정보를 독점하고 원하는 방식대로 가공할 수 있는 관료들은 새로 출범한 정권을 길들이려 들었다.
결국 본색이 들어난 것은 이명박 정권 때였다. 대우건설에 수서고속철도를 떼어주겠다는 노골적인 민영화 정책이 대우건설, 한국교통연구원, 국토부의 삼각 협력에 의해 진행됐다. 철도민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노무현 정권 때 국토부가 법안에 교묘히 이식한 경쟁논리를 담은 철도산업발전기본법의 취지를 따른 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였다.
상하통합이나 SRT 통합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개혁 정책을 원점으로 돌려놓는 게 아니다. 다국적 금융 산업계의 이익을 보장하는 IMF컨설턴트들에 의해 제기된 공기업 민영화를 억지로 받아들여야 했던 김대중 정권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례를 듬뿍 받은 관료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참여정부 시절의 철도정책을 시민을 위한 것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그 첫 단추는 코레일과 SRT의 통합이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일부 교수들은 경쟁체제가 도입되어 여러 가지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긍정적 효과란 것들은 통합구조에서도 누릴 수 있는 것들이다. 경쟁체제의 효과라는 것들은 아전인수식 해석에 따른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 반대로 분리체제가 지속될 경우 발생될 폐해들은 시간이 갈수록 극심해 질 전망이다.
경쟁체제를 옹호하는 교수들은 진정한 효과가 드러날 때 까지 만이라도 현 체재를 유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신기루는 시간이 지나도 신기루 일 뿐이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문제는 더 고착화 되고 이해관계는 첨예화 된다. 시간을 끌수록 현 체제를 기득권화 시키게 된다. 이것이 효과가 드러날 때 까지 기다려보자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
행동해야 할 때 가만히 있어보자는 사람들의 말을 듣다가 철도 개혁의 중요한 골든타임을 놓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취임사에서 부동산 정책은 투기세력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결정한다고 당당히 밝혔다. 이것은 부동산 정책에만 국한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철도 정책역시 시민 다수의 이익이 보장되는 공공성 위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재벌이나 고위 관료들, 이들과 카르텔로 엮인 세력들이 철도 정책을 주무르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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