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文에 도움되나 짐 되나
문 대통령이 귀국 후 맞이할 정치 현실에서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은 멈춰선 국회 상황이다. 현재 국회의 의석 분포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120석, 제1야당이자 원내 2당인 자유한국당이 107석, 국민의당 40석, 바른정당 20석이다. 원내교섭단체 구성 기준(20석 이상)에 못 미치는 원내 정당으로는 정의당(6석)과 이번 주말 창당 발기인 대회를 치른 (가)새민중정당(김종훈 윤종오 2석), 대한애국당(조원진 1석)이 있다.
때문에 지난달 말까지 여당은 추경과 정부조직법 심의, 인사청문 일정 정상 진행을 위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을 설득해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 왔고, 바른정당이 김상곤 교육부총리 임명에 반발해 비협조로 돌아서자 지난 5일까지는 국민의당이라도 붙잡아 일부 상임위에서 추경안 처리를 추진해 왔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독일 방문 이틀째인 6일, 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발언 때문에 그간 여당에 비교적 협조적인 태도를 취해온 국민의당이 국회 보이콧을 선언했다.
추 대표는 당시 국민의당의 '증언 조작' 사태와 관련, 대선 때 당 대표였던 박지원 의원과 대선후보였던 안철수 전 의원이 해당 사건을 몰랐을 리 없다면서 국민의당 자체 조사 결과에 대해 "머리 자르기"라고 비난했다. 국민의당은 당일 오후 추 대표의 사퇴와 사과를 요구했지만, 추 대표는 다음날인 7일 오히려 공세 수위를 높여 "미필적 고의에 의한 형사 책임으로 (국민의당을) 수사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문 대통령이 귀국을 하루 앞둔 9일, 검찰은 실제로 이준서 전 국민의당 최고위원에게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의심하고 이 전 최고위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추 대표의 당시 발언 내용이 옳았든 틀렸든, 국민의당의 주장대로 추 대표가 검찰에 '수사 가이드 라인'을 준 것이든 단순히 '예측'을 내놓은 것이 적중한 것이든 관계없이, 추 대표의 발언과 검찰의 영장 청구가 맞물리며 국민의당은 더욱 자극을 받은 모양새다.
결과적으로 문 대통령이 시급하게 생각하고 있는 장관 인선과 '일자리 추경' 문제를 푸는 데에 여당이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한 꼴이 됐다.
추경 처리 전망은?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일은 하나하나가 모두 가볍지 않다. 문 대통령의 '1호 사업'이자 청와대에 수석비서관실과 상황판까지 새로 설치할 정도로 관심을 기울인 것이 일자리 창출 문제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추경예산이 마중물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 정부·여당의 주장이었다. 정부가 이번 추경을 '일자리 추경'이라고 이름지은 것부터가 그 방증이다.
하지만 현재의 국회 상황 속에서 국회의 추경 처리 전망은 간단치 않다. 국민의당은 지난 7일 예결위 전체 회의에 불참하는 등 6일 이후부터 국회 일정을 전면 보이콧하고 있다. 이들은 추 대표의 사퇴 등 납득핧 만한 조치가 있기 전까지는 비협조적인 자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오는 10일로 예정된 예결위 종합정책질의에도 불참한다는 계획이다. 이언주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기자 간담회를 열어 "대선 후부터 당사 외벽에 '국정은 협치, 국민의당은 혁신'이라는 현수막을 걸었는데, 철거하기로 했다"며 "청와대와 여당이 더 이상 협치를 하려는 의지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총 50명인 국회 예결위는 지난주에도 여당 위원 20명과 여당 성향 무소속(서영교) 의원 1명, 정의당 의원 1명만이 출석해 과반을 채우지 못한 채로 열렸고 추경안 상정도 하지 못했다. 자유한국당(18명)과 바른정당(3명) 등 보수 야당이 여당에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만큼, 예결위에서도 국민의당(7명)이 협조는 절실한 상태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요구하는 추 대표의 사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추 대표가 사과할 가능성도 여권 안팎의 말을 종합해볼 때 높지 않다. 한국당은 국회 복귀 조건으로 김상곤 부총리의 임명 철회와 송영무·조대엽 장관 후보자의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바른정당도 "두 후보자(송·조)를 임명하면 임시국회는 사실상 끝"(5일,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이라고 하고 있다.
송영무·조대엽 임명, 文대통령 귀국 후 '첫 수'는?
이처럼 보수 야당이 강경한 자세로 돌아선 '계기'는 국무위원 인사였고 이들은 이제 추경과 인사 사안의 연계를 공식화하고 있다. 보수 야당은 지난 4일 문 대통령이 김상곤 교육부총리를 임명한 데 대해 강하게 반발해 보이콧을 선언했다. 한국당은 "의원총회를 개최하고 문 대통령이 임명한 김상곤 장관 임명에 맞서 추경과 정부조직법 심의를 국회 상임위 일정을 전면 중단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5일,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문 대통령이 귀국하자마자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문제도 역시 장관 인사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쳤지만, 여야 간 이견으로 청문보고서 채택이 무산된 조대엽 고용노동부,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임명을 강행할지 말지부터가 문 대통령의 귀국 후 정치적으로 두어야 할 '첫 수'가 될 전망이다.
송·조 후보자에 대해서는 야권 전체가 부정적이다시피 하다. 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물론, 국민의당도 조대엽·송영무 후보자에 대해서는 임명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 여당에 협조적이었던 정의당도 조대엽 후보자에 대해서는 부적격 판단을 내리고 "새로운 후보자를 추천해 달라"는 입장이다.
정부·여당은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야권에서는 송·조 후보자 중 한 명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임명을 철회할 가능성도 꾸준히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 역시 이에 대해 "둘 중 하나만 임명한다 해도 입장이 변할 가능성은 없다" (이언주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 9일 기자 간담회)거나 "한 명을 고르라는데 (그렇게 하면) 우리 입장에서는 한 쪽을 인정하는 것"(바른정당 관계자, <연합뉴스> 인터뷰)이라며 '둘 다 낙마'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여당 내에서도 송·조 후보자 임명을 부담스러워하는 기류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일 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우원식 원내대표, 이낙연 국무총리와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참석한 당정청 고위 회동에서도 이들 2명의 후보자 문제가 화제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은 인사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만큼 문 대통령이 귀국한 후 여러 의견을 고려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켜보자는 정도의 자세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판단할 일"이라고만 했다. 정상외교 무대 데뷔를 마친 문 대통령이 귀국 후 이번에는 국내정치 무대에서 어떤 상과를 거둘 수 있을지 시선이 쏠리고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