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일자로 수많은 지자체에서 새로운 의지와 열정을 간직한 채 지방정부의 수장들이 취임식을 가졌다. 과연 이들 중 4년 후 그 자리에 다시 설 수 있는 자들은 몇이나 될까 공연히 부질없는 상상을 해본다. 결국 그들이 다시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다. 그때도 이번처럼 민심의 쓰나미가 불어 능력과 성과에 크게 상관없이 국민들이 정치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첫 번째이고, 철저히 지역주의에 기반하고 있어 성공적으로 공천만 따내어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 자동으로 보장되는 경우가 두 번째요, 지역주민으로부터 재임 4년간의 활동에 대해 승인을 받아 그 결과로서 재선이 되는 것이 마지막 세 번째이다. 물론 4년 후에 어떤 공식이 적용될 것인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정도(正道)는 누가 뭐래도 마지막 경우이다.
어차피 앞의 두 경우는 바람직스럽지도 않고 단체장 개인의 차원에서 도모할 수도 없는 지극히 정치적인 영역이므로 그것에 기댈 수는 없다. 합리적인 자라면 또 다시 세 번째를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달한다.
그렇다면 정도를 걷는 자, 합리적인 자라면 어떻게 하여 민심의 승인을 얻을 것인가?
도로는 뻥 뚫렸는데, 그리로 지역의 부가가치는 도회지로, 서울로 쏜살처럼 빠져나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럴듯한 건물은 지어 놓았는데, 온통 빚잔치이고 더군다나 그 기능을 다하기 위한 전문가를 쓸 인건비는 없어, 주민들이 그 건물에 대한 존재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되는 그런 방법도 아닐 것이다. 기업이 활약하기 좋게 한다고 각종 규제조치를 모두 무장해제 시키고 설사 조(兆) 단위의 유치실적을 올린다고는 하지만, 실제는 비정규직 일자리나 늘고 공유지만 갖다 바친 꼴이며 마을의 평화로운 경관마저 오간데 없는 그런 난개발도 아닐 것이다.
아이들 교육에, 아이들 보육에, 치매에 걸린 부모님과 가족들의 지병에, 집 살 걱정에, 무엇보다도 자신이나 자녀의 실직에 걱정이 태산인데, 이런 식의 명목적인 지역의 발전에 더 이상 국민들이 목을 매거나 현혹되지 않는다는 사실부터 깨우치는 것이 필요하다.
▲ 민주당 워크숍에 참여한 안희정 충남지사(맨 왼쪽)과 송영길 인천시장(왼쪽에서 두번째) ⓒ연합뉴스 |
답은 새로운 지방정부의 패러다임을 펼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지방정치의 장에서, 지방정책의 기조에서 진정한 핵심이 되지 못했던 '보편적 복지'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이미 무상급식, 무상보육 등으로 민심의 바다에는 복지에 대한 기대심리가 상승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바다를 무상급식 정도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실 무상급식으로 지방정부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음을 실감할 수 있는 계층은 일부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마치 무상급식만 성공하면 되는 것처럼, '무상급식 하나만은 반드시 하고야 말겠다'고 결연히 다짐하는 일부 정치인들과 단체장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또 다시 실망할 준비를 해야겠다는 서글픈 생각이 든다.
달리 말하면, 좀 더 과감해져야만 성공할 수 있다. DJ,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복지정책을 폈다지만 왜 국민들은 그것에 대해 정권 재창출이란 급부를 주지 않았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국민들이 체감할 만큼 과감한 정책을 펼치지 못한 탓이다. 헬리콥터에서 엄청난 양의 진화제를 폭탄처럼 퍼부어 산불을 끄듯이, 양극화로, 비정규직화로, 세계화로, 신자유주의화로, 민영화로, 시장화로 피폐해진 국민의 삶에 두 정권에서 행한 복지정책은 결과적으로 '찌질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에게 복지란 이런 것이라고 각인되는 정책적 효과를 한곳에서라도 낼 만큼의 파격적인 '복지폭탄'을 행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는 전년대비 몇 퍼센트를 올리는 점증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시험을 거쳐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안정적 운영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무엇보다도 '예산의 조달 범위 내'라고 하는 예산담당 관료들의 덫을 과감히 깨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패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렇게 과거 10년을 복기할 수 있다면, 비록 중앙정부의 경우와 지방정부의 경우가 다른 면이 있다고 해도 향후 지방정부의 수권자가 가야할 길은 명료하다. 대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10% 영유아만 혜택을 누리는 국공립보육시설을 임기 내 30%로 늘림으로써 싸고 질 좋고 접근성 좋은 보육시설을 관내에 배치하는 일은 어떤가? 더 적극적으로는 보육에 있어서만큼은 무상 내지는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실행안을 짜는 것은 어떤가? 역내 주민들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며 심지어 보호자가 필요 없는 공립병원을 권역별로 배치함으로써 확실한 의료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은 어떤가? 일반인구 10만명당 1곳이 있는 복지관, 노인인구 2만3000명당 1곳이 있는 노인복지관, 장애인인구 1만5000명당 1곳이 있는 장애인복지관, 그리하여 존재의미를 갖지 못하는 이들 복지관을 적정 인구규모별로, 적정 접근소요시간별로 촘촘히 배치하여 각자 욕구에 따라 찾아갈 수 있는 편안한 공공시설들을 만드는 것은 어떤가? 복지의 불모지대인 농촌에도 읍단위-면단위-리단위를 연결하는 복지지원망을 만들어 육아의 문제, 다문화가족의 문제, 독거노인의 문제, 속 타는 농심의 문제들에 대해 함께 하는 공공인력들을 배치하는 것은 어떤가? 관내의 대학생들에게 등록금 대출이자를 전면 보전해 주고, 향후 졸업 후 지역 내 만들어지는 사회적 일자리, 사회적 기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해당 대학의 교수들은 지역사회를 개조하는 일에 열성을 다할 수 있는 선순환체계를 구축하는 일은 어떤가?
사실 그리 대담한 발상이라고도 볼 수 없는, 지극히 당연한 지방정부의 역할에 해당하는 일에 일차적인 반응은 의례 '예산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진실이자 거짓이다. 즉, 현재의 예산 구조만을 놓고 보면 진실이지만, 예산의 우선순위와 사용방식을 재조정하고 나면 거짓이란 말이다.
그리하여 지방정부를 이름하여 진보적인 복지정부로 진정 바꾸고 싶은 열망과 의지가 있다면 지방정부의 예산을 낱낱이 해부하는 일부터 하라. 서울시의 경우도 한강르네상스, 디자인서울을 필두로 수백억에서 수천억짜리 사업이 즐비한 상황이다. 이들에 대한 사업타당성을 재검토하고 새롭게 확보되는 예상수입을 가름해보면 어떤 대담한 정책을 펼치는 것이 가능한지, 그리고 이것이 구청의 예산과 맞물렸을 때 구 단위에선 어떤 사업들을 행할 수 있는 지 구체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물론 이런 예산의 해부작업은 새로운 시각과 대담한 발상을 전제할 수 있는, 그러나 전문성 있는 이들에 의해 맡겨져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그간 수없이 배신당한 민심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집무를 시작한 당신들은 정말 준비된 것인가? 수십년을 주무른 성장지상주의, 토건위주의 치적 내세우기와 완전히 선을 긋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진정 서민을 위한 획기적 계획을 실현할 수 있는 철학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인가?
이제 이들은 이에 대해 답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 윤곽은 향후 2-3개월 안에 나타난다. 민심은 너그럽게 보아줄 여유가 없다. 이미 싹수가 없다치면 민심의 파도는 또 다른 쓰나미로 또 다른 대안을 찾아 나설 것이다.
대담하라. 그러면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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