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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양양 고속도로를 달리며 ‘빠름’과 ‘느림’의 미학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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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양양 고속도로를 달리며 ‘빠름’과 ‘느림’의 미학을 생각한다

[서정욱의 여행 에세이]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갖고 양양으로 가다

원래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길이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다니면서 길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우리에겐 가지 않은 길이 많다. 반면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면서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이 된 길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차 안에서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기억하며 달렸다.

▲프로스트의 시, '아무도 가지않은 길'을 떠올리며 갔다 돌아오는 44번 국도길. ⓒ프레시안(서정욱)

그 때 나는 동해 바다가 생각날 때마다 차를 몰고 바닷가로 가는 44번 국도를 달렸다. 그러나 새 고속도로가 건설되자 모든 뉴스가 너나없이 ‘빠름’의 속도만을 강조한다.

2일 주발 아침. 나는 서울∼양양 고속도로 여행을 위해 강일 I.C로 차를 몰았다.

새 고속도로는 프로스트의 말처럼 지금까지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다.

▲아무도 가지않았던 암벽을 뚫고 길을 내면서 만들어진 동물보호터널길. ⓒ프레시안(서정욱)

인간의 기술과학과 문명의 진보가 행복한 삶이라는 그들 나름의 방식이 만든 이 도로는 기존 175.4km를 150.2km로 단축시켰다. 이때문에 기존에 2시간이나 걸리던 양양 바닷가로 가는 길을 30분이나 단축시켜 1시간 30분대로 좁혔다. 이 모든 결과는 인간의 힘이다.

속도를 1/4로 줄인 건 수학적으로 계산해도 토목기술의 힘이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다.

이제 아무도 가지 않았던 이 길 위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차를 몰며 달릴까? 그 물음에 나는 속도를 즐기려는 폭주족들은 이도로의 평균 시속 1시간 30분을 비웃으며 시속 150킬로로 달린다면 서울에서 1시간 만에 동해바닷가에 도착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침 6시 30분. 강일 I.C를 지나자 양양으로 가는 고속도로에는 꽤 많은 차들이 긴 행렬을 꾸렸다.


서울을 떠나 100km 평균 속도를 생각했는데 내가 탄 차는 80km를 달리다가 어느 구간에서는 20km와 40km를 반복했다.

이 도로는 어젯밤 저녁 8시에 첫 길을 열었다. 그런데 지금 이 도로는 만원이다, 대한민국 인구의 1/2정도가 몰려 사는 수도권 사람들이 주말 여행길을 또 한 번 실감해야 했다.

▲지난달 30일 저녁 8시부터 첫 개통된 양양고속도로에 몰린 자동차들로 꽉찬 내린천 휴게소의 주차장 풍경. ⓒ프레시안(서정욱)

이미 몇 년 전에 뚫린 서울∼춘천구간. 당시 이 도로를 뚫을 때 어느 정치인이 2차선으로도 충분하다며 차라리 그 돈을 복지에 쓰라는 말을 했다는데, 그 정치인이 지금 이 도로를 달린다면 미래를 보는 눈이 꽤나 없었던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서울∼춘천 구간만이라도 최소한 편도 3차선은 놓았어야 옳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차가 동홍천 I.C로 들어섰다.

▲바닷가 마을이 있는 양양으로 가는 첫 관문인 동홍천 톨게이트. ⓒ프레시안(서정욱)

공사 착공 13년 만에 완공된 서울∼양양간 동서고속도로는 서울시 강동구와 강원도 양양을 연결하는 새로운 길이다.

넓게 트인 길. 창문을 열자 새집 냄새 같은 도로의 아스팔트 냄새와 터널 안의 콘크리트 냄새가 코끝을 누빈다.

동홍천 I.C를 지나자 차는 고속도로의 길고도 높은 교각 위를 계속 달렸다. 그리고 몇 분 쯤 달리자 홍천휴게소가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이른 아침인데도 주차장이 꽉 찼다.

▲동해안으로 주말 하이킹을 떠나는 여행객들로 붐비는 홍천휴게소. ⓒ프레시안(서정욱)

하이킹을 줄기려는 젊은 사람들이 탄 자동차와 함께 관광버스가 계속 도착했다.

홍천휴게소는 여느 휴게소와 별 다를 바 없는 건물이다. 나는 휴게소에서 커피 한잔을 마셨다.

그러고 나서 10여분 후, 휴게소를 떠났다.

휴게소를 떠나자 홍천 서석과 내촌으로 나가는 출구가 보였다. 우리나라 군 단위 중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진 홍천. 그곳에서도 산촌이 가장 많은 곳으로 알려진 서석과 내촌은 이 고속도로 덕분에 산간벽지에서 벗어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 동홍천을 지나 인제 경계선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인제의 명품숲, 자작나무가 빼곡이 심어져 있다. ⓒ프레시안(서정욱)

홍천 경계선을 벗어나자 하늘이 내린 마을이라는 내린천이 있는 인제로 들어섰다. 인제가 자랑하는 자작나무숲을 옮긴 듯한 자작나무들이 도로 가운데 괘 많이 심어졌다.

10년쯤 후. 저 자작나무들이 이 고속도로의 또 다른 숲길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자작나무가 길게 늘어선 도로를 지나면서 터널은 점점 많아졌다.

그리고 10여분 후. 이 고속도로가 자랑하는 도로 위에 세워진 내린천 휴계소가 웅장한 규모를 드러낸다.


▲공항 같은 웅장한 내린천 휴게소 옆 연못의 물을 보며 좋아하는 여행길의 아이들. ⓒ프레시안(서정욱)


멀리서 보면 공항 같다. 비행기 앞 몸체 같은 건물이 도로 위를 길게 뻗어 있고, 그 앞에 앞날개 같은 휴게소 건물에 음식점과 깨끗한 화장실이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는 긴 에스컬레이트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처음으로 설치되어 마치 공항 로비 같다.

휴게소 건물을 나오면 건물 옆에 작은 연못이 있다. 맑은 물 위에 징검다리를 닮은 정사각형의 질서정연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연못 한켠에 놓여있어 여행을 나선 아이들이 너무 즐거워한다.

▲내린천 휴게소안의 에스컬레이트. ⓒ프레시안(서정욱)

나는 휴게소 연못 앞 벤취에 앉아 잠시 생각했다. 온통 ‘빠름’의 생각 때문에 콘크리트 교각과 터널로 연결된 고속도로에 이 휴게소가 없었다면 정말 숨이 막힐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백두대간의 허리 같은 태백산맥이 강원도를 영동과 영서로 나누어 생활환경과 말씨까지 이질적인 이곳을 하나의 문화권으로 묶어 놓은 도로.

여기에다 이미 확정된 춘천∼속초간 동서고속전철이 완공되면, 어쩌면 이들의 이질적인 삶은 더 이상 못 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길이 만들어지고 철도가 지나는 철길은 새로운 마을을 만들어 낸다. 그런가 하면 그 새로운 길로 인해 아무도 찾지 않은 마을이 되는 곳도 이제부터 생겨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자동차가 홍수처럼 붐비는 내린천 휴게소를 떠났다.

자동차가 터널을 빠져나오면 또 터널 속으로만 달렸다.

▲국내에서 가장 긴 11km의 인제양양터널. ⓒ프레시안(서정욱)

작은 터널을 정신없이 지나가자 국내에서 가장 길다는 11km나 되는 인제양양터널이 나왔다.

터널 입구는 기존의 터널이 주는 무겁고 어두운 이미지가 아닌 밝고 포근한 색깔을 입혀 편안한 터널의 느낌을 주려는 흔적들이 역력하다.

대부분의 터널들이 주는 회색 콘크리트의 천정이나 벽에서 벗어나 세계 11위의 명성답게 터널 천정은 하늘을 닮은 하늘색을 한 터널 천정을 중간에 만들어 놓았다.

▲ 하늘을 닮은 인제양양 터널의 천정 모습. ⓒ프레시안(서정욱)

그리고 터널 벽에는 푸른 하늘과 바다를 닮은 시원한 그림의 벽화가 운전을 하는 내 마음을 터널의 무거운 이미지에서 벗어나게 했다.

▲인제양양터널 안의 벽화들. ⓒ프레시안(서정욱)

그리고 태백산맥을 넘어오는 강풍과 겨울이면 1m 높이의 눈발이 쌓일 수도 있는 산악도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교각위에는 하늘을 닮은 색깔의 지붕을 얹었다.

▲태백산맥을 지나는 터널과 터널 사이의 교각위에 설치된 투명유리 지붕들. ⓒ프레시안(서정욱)

연인원 5만 명에 2천900대의 중장비가 1일 평균 25m씩 2년 5개월 동안 파냈다는 이 터널을 뚫으며 여행객을 위한 이미지 배려 흔적이 곳곳에 스며 있었다.

터널을 빠져 나오자 저 멀리 양양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다의 비린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기술과학문명의 힘이 준 ‘빠름’의 가치는 충분했다.

나는 양양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전진리 앞바다 백사장을 걸었다.

▲양양 앞바다의 한 모래사장과 바다에서 주말을 즐기는 가족들의 모습. ⓒ프레시안(서정욱)

내가 달려온 고속도로에서 내린 가족과 함께 온 아이들이 모래성을 쌓고 밀리는 바닷물에서 행복한 웃음을 웃는다.

멀다고 느낀 서울에서 동해 바닷가로 가는 길이 만든 또하나의 삶의 질을 높인 것일까?

▲양양 바닷가의 벽화마을 모습. ⓒ프레시안(서정욱)

나는 바닷가 옆 벽화마을을 지나 의상대사가 지었고,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이 지은 관동별곡을 통해서 동해 해돋이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낙산사 경내의 의상대로 가는 숲길을 산책했다.

▲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지목한 낙산 의상대의 모습.

의상대 숲 사이로 전진리 마을로 들어오는 작은 고깃배들을 지켜온 빨간 등대가 보이는 벤취에 앉았다.

이미 기상대가 예보한 장마 탓인지 하늘은 회색빛이다. 그리고 바다도 푸른 하늘이 비추는 빛 대신 회색의 빛 때문인지 무거운 바다를 내 앞에 내놓았다.

정오 무렵. 나는 점심을 먹기 위해 속초 대포항으로 발길을 옮겼다.

▲밀려오는 파도가 부서지는 대포항의 모습. ⓒ프레시안(서정욱)

대포항에서 물회를 점심으로 먹었다. 해는 뜨지 않았지만 장마철 기온탓과 습한 온도 때문에 다소 짜증스런 날씨. 그런 내 마음을 바다를 담은 물회 한 그릇이 타이레놀 한 알로 아픈 머리를 낫게 하려던 내 머리를 말끔히 사라지게 했다.

나는 그곳에서 가까운 장사항으로 자리를 옮겨 바다를 보며 커피 한 잔으로 매운 속을 달랬다.

▲새고속도로 개통으로 속초여행이 더 가까워진 속초시내로 들어가는 현수교의 아치 모습. ⓒ프레시안(서정욱)

그리고 커피를 마시며 프로스트가 단풍남무 숲속에 난 두 길 앞에서 어느 길을 갈까 고민하다 아무도 가지 않은 작은 길을 선택한 것처럼 나는 이제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이 될 것 같은 국도를 따라 집으로 가기로 했다.

설악산 바위들이 장엄하게 우뚝 선 미시령 길을 지나 바다에서 잡은 명태들이 겨울내내 눈을 먹기도 하고, 때로는 겨울바람을 먹으며 황태로 거듭나는 우리나라 최고의 황태덕장이 있는 용대리 황태마을을 지났다.

황태덕장 마을로 들어가는 휴게소 앞에는 거대한 폭포수가 쏟아지고 있었다.

▲황태덕장 마을에 있는 폭포수의 아름다운 장관. ⓒ프레시안(서정욱)

이런 계곡의 폭포수는 바다의 파도와는 맛이 또 다르다.

그리고 터널과 교각으로 연결되어 자연이 주는 풍경과 숲의 공기를 제대로 느낄수 없는 고속도로와 달리 국도는 그런 ‘빠름’대신 ‘느림’이 주는 선물이 많다.

내가 지금 눈으로 보고 느끼는 저 폭포수와 숲의 공기들. 그리고 도로 곳곳에서 서로 다른 산촌마을 사람들이 농사지어 내놓는 찐 옥수수와 감자. 그리고 용대리 마을에서 주는 황태 국밥 한 그릇이 배를 채워주는 그런 여유로운 촌스런 맛이 없다.

나는 태백산맥을 넘어오는 바람이 강한 용대리 마을에 세워진 거대한 풍차들을 보며 생각했다.

▲인제 용대리마을에 있는 풍력발전소의 풍차들. ⓒ프레시안(서정욱)

이제 주말이면 이 길을 꽉 메우던 수도권에서 내려오던 자동차 물결을 보는 건 어려울 것이다.

모든 것이 빠름의 속도에 밀려나는 사회. 이 때문에 철도가 지나고 고속도로 톨게이트가 지나는 곳에는 새로운 마을 집단이 생기고 신도시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제 올여름부터 이 국도로 오는 수도권 사람들의 자동차는 오늘 내가 달려 온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달릴 것이고, 사람들은 찐옥수수 대신 잘 갖춰진 공항 터미널 같은 쾌적한 의자에 앉아 커피에 길들여 질 수밖에 없다.

물론 끊임없는 행복의 공간을 찾는 인간의 욕구는 문명의 진보를 요구해 빠름의 가치는 멈출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아침에 달려 온 고속도로처럼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인간은 개척할 것이다.


▲새고속도로가 생기면서 프로스트의 시 '아무도 가지않은길'처럼 다시 언젠가 그리워질 길이 될 국도 44호선의 모습. ⓒ프레시안(서정욱)

그러나 에른스트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처럼 작고 느리지만 그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소중한 아름다움의 가치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44번 국도를 빠져 나오며 생각했다. 이제 이 길은 지난 날처럼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이 그리워하는 길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밟아온 상처를, 숲과 맑은 산공기가 있는 자연의 숲길로 치유하는 시간을 줄 것이다.

그러면 먼 미래 언젠가 프로스트 시인처럼 사람들은 아무도 가지 않은 이 길 위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으러 사람들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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