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불과 이틀 앞으로 다가 온 가운데 여권 전체가 휘청이고 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지도부를 뽑는 중요한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향후 비전이나 리더십 등 생산적인 논쟁은 실종됐다. 누가, 왜, 차기 한나라당 지도부가 돼야 하는지 지켜보는 이들은 그 이유를 찾아보기 힘들다.
끝없이 확산되는 '영포 게이트', '권력 사유화' 논란 속에 자중지란에 빠진 친이(親李)계와 교통정리에 실패하면서 응집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친박(親朴)계는 함께 여권을 진흙탕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6.2 지방선거 참패 이후 불어 온 '변화의 바람'을 타고 급부상한 쇄신파 역시 '뒷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차기 당권을 노리는 각 후보자들의 상호 비방과 폭로전 역시 금도를 넘었다. 현 상황에 대해 "한나라당이 두나라당을 넘어 세나라당, 네나라당으로 쪼개지고 있다"(김성식 의원)는 비판마저 나온다.
눈물 흘린 정두언…더 때리는 이성헌…"둘 다 사퇴하라"는 김성식
권역별 비전발표회 등 전당대회를 위한 공식 일정이 없는 12일 각 후보자들은 앞다퉈 기자회견을 자청하며 난타전을 벌였다. 그 중심은 단연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을 통해 불거진 '권력 사유화' 논란이었다.
이에 앞서 김무성 원내대표는 "야당의 '정권 흔들기'에 악용당하지 않도록 모두 애당심을 발휘해 관련 언급을 삼가해 주길 바란다", "정권 재창출을 함께해야 하는 동지인 만큼 서로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되는 상호 비방은 삼가고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정치적 공격도 자제하라"는 주문을 쏟아냈지만 별무소용이었다.
정두언 후보는 "이번 사태의 본질은 청와대와 정부 내 비선 조직의 존재와 측근의 부당한 인사개입"이라며 박영준 국무차장을 정조준했다. 그는 "저를 권력투쟁의 당사자로 몰지 말라", "내가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는지 아느냐"며 울먹이기까지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 후보 자신과 박영준 차장 모두를 질타하며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 것과 무관치 않은 반응이다.
반면 "영포 게이트 관련 정보를 야당에게 제공한 것은 정두언 의원과 가까운 국무총리실 간부"라고 폭로한 바 있는 친박계 이성헌 후보는 친이계 내부의 갈등고리를 파고 들며 연일 공세의 수위를 높여 갔다.
이날 이 후보는 "총리실 박영준 차장의 횡포를 막아달라는 내용과 관련된 여러 건의 문건이 있고, 가장 충격적인 것은 총리실에서 만든 이 문건이 글자 하나 안빼고 민주당에 그대로 넘어갔다는 것"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 후보는 "얼마 안 있으면 그 내용 중 일부가 언론에 공개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처럼 논란이 확산되자 아예 정두언, 이성헌 두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김성식 후보는 "권력의 사유화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미 권력투쟁 당사자가 된 정 후보는 당의 변화를 위해 살신성인의 자세로 사퇴할 용의는 없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성헌 후보를 향해서도 김 후보는 "낡은 계파의 시각으로 계파적 이익에 집착해 황당한 폭로전으로 전당대회 판 자체를 흐리고 있다"며 "화합의 전대를 위해 사퇴할 용의가 없는가"라고 했다.
"병역기피당 된다"는 홍준표…"흑색선전 징계하라"는 안상수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친이 주류인 안상수 후보와 비주류 홍준표 후보는 '병역문제'를 놓고 난타전을 벌였다.
홍준표 후보는 "10년 동안 도망다니다가 고령으로 면제받은 안상수 후보가 당의 지도부가 되면 한나라당은 '병역기피당'이 될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이에 대해 안상수 후보는 "군 문제는 검사 임용 때와 4번의 국회의원 선거 등 벌써 5번의 검증을 거쳤다"며 "어찌됐든 이 문제에 대해선 항상 안타깝고 송구한 마음"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안 후보 측은 "소집면제는 합법적이었고, 해당 사안은 안상수 후보가 검사임용시 이미 국가로부터 철저하게 검증된 것으로 더 이상 문제의 소지가 없다"며 "홍준표 후보의 사실왜곡 언동은 명백히 한나라당 당규에 위배된다"며 홍 후보의 징계를 요구하고 나섰다.
끝내 '교통정리' 안되는 親朴…계파갈등 속에 쪼그라든 쇄신파
친이계 밖으로 눈을 돌려 봐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특히 4명의 후보가 난립한 친박계 내부에서는 "지도부 입성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나오고 있다. '대의원 열세'라는 객관적 조건을 무시한 결과다.
당초 친박계에서는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수도권 1명, 영남권 1명으로 후보를 단일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지만, 당사자들의 거센 반발과 박근혜 전 대표 본인의 '묵인' 속에 끝내 무산됐다. 박 전 대표는 "(지지받지 못한) 의원들이 입을 타격이 너무 크다"며 '교통정리'에 부정적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이성헌, 이혜훈, 한선교 후보뿐 아니라 "영남권의 유일한 친박 후보"임을 내 세우고 있는 서병수 후보조차 지도부 입성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쇄신파 역시 마찬가지다. 남경필 후보가 정두언 후보 쪽으로 단일화되면서 '쇄신'을 대표하는 유일한 후보로 남은 김성식 후보는 "대의원들이 기득권 체제와 계파싸움의 골을 깊게 할 후보를 분명히 심판해줄 것으로 확신한다", "초계파 쇄신대표의 길을 걸어가 대의원 혁명으로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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