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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법원은 왜 아기 연명 치료 중단 결정을 내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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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법원은 왜 아기 연명 치료 중단 결정을 내렸나?

[기고] ‘아동 최선의 이익’ 법리에 대하여

최근 영국의 희귀불치병 신생아의 연명 치료를 두고 의료인과 부모 간의 법정 분쟁 끝에 법원이 '치료 중단' 판결을 내렸다는 소식이 국내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미토콘드리아결핍증후군(MDS) 진단을 받은 생후 10개월 신생아에 대해 부모는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한 크라우드 펀딩까지 했지만, 유럽인권재판소(European Courts of Human Rights)에서는 연명치료를 중단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영국 법원에서도 마찬가지 판결을 내렸다.

부모가 원하고, 미국 병원에 치료를 담당하겠다는 의료진도 있고, 비용을 지불하기 충분한 돈도 있다. 그런데 왜 영국 법원은 그런 판결을 내렸을까? 일반적인 한국인들의 시각에선 다소 의아한 이 같은 판결은 어떻게 내려진 것일까? 국내 언론보도들만으로는 자칫 핵심 내용이 생략되고 전달될 우려가 있어 이를 보충 설명하고자 한다.

이 사안은 영국 내 법적 절차와 유럽인권재판소의 제소 절차를 구분하여 설명하여야 한다.

우선, 사실관계는 이렇다. 찰리 가드(Charlie Gard)는 출생시부터 희귀병을 가지고 있었고, Great Ormond Street Hospital (GOSH) 병원의 중환자실에 있다. 이 병원은 1852년 설립된 영국 런던의 대표적 아동전문병원이다.

아기는 매우 드믄 사례이다. 유전적으로 미토콘드리아 병을 가지고 있다. 병명은 'infantile onset encephalomyopathic mitochondrial DNA depletion syndrome'이라고 한다. 아기의 뇌, 근육, 호흡능력은 모두 심각하게 훼손되었고, 선천적으로 귀가 안 들리고, 간질 증상을 보인다. 심장, 간, 콩팥 역시 훼손되었다. 근육 약화가 진행 중이고, 팔과 다리를 움직이거나 혼자서는 호흡을 할 수 없다. 근육이 약화되어 눈을 뜨고 있을 수도 없고 시선을 한곳에 집중시킬 수 없는 등 상태는 급속하게 악화되고 있다.

GOSH병원은 아기는 치료 불가능하며, 마지막 상황에 도달했다고 확인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한 병원에서 실험적 치료를 해보기로 동의했고, 아기의 부모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그 치료비를 지불할 만한 기부금을 모았다. 그러나 GOSH병원의 입장은 미국 병원의 처치는 아기를 치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험을 위한 것이며, 따라서 아기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여기까지가 전문적 의료진이 판단하는 아기의 상황이다.

앞으로 찰리에 대한 처치를 어찌할 것인가에 대해서, GOSH병원은 아기에게 제공할 수 있는 치료는 더 이상 없으며, 미국의 한 병원에서 제공할 수 있다는 치료 역시 헛되고, 아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반면 부모는 아기에게 지속적으로 연명치료를 제공하기를 원하며, 미국에서의 실험적 치료도 받아보고 싶어한다.

여기서부터 병원과 부모가 아닌, 영국법에 의한 절차가 등장한다.

일부 언론은 이 법적 절차를 연명치료에 대한 것으로 보았으나, 법적 쟁점은 아기의 치료에 대한 부모의 동의권이다.

영국뿐 아니라 유럽 가족법의 추세는 '친권'(parental rights)라는 용어를 '부모의 의무' (parental responsibility)로 변경하고 있다. 아동인 자녀에 대해 부모가 가지는 의무, 권한의 내용을 부모의 권리로부터 아동양육에 대한 의무로 무게중심을 옮겨가는 양상을 반영한다. 여기서는 그냥 우리의 이해를 위해 '친권'으로 하겠다.

영국에서는 친권에는 아동의 치료에 대한 동의권이 포함된다. 의료행위를 하는데 있어서 환자의 동의는 반드시 필요한 절차이고, 찰리와 같이 스스로 동의를 할 수 없는 아동은 부모가 그 동의권을 행사한다. 의료진과 부모의 판단에 차이가 없는 당연하고 간단한 사안인 경우 이 동의권은 일상적으로 행사될 수 있으나, 부모의 동의권에도 한계가 있다. 아동 자신에게만 귀속되는 근본적인 권리에 영향을 주는 치료에 관해서는 부모의 동의가 무한대로 인정될 수는 없다. 그러한 경우에는 아동에게 해당 치료를 할지 여부는 법원의 관할이다. 즉 법원의 결정에 의한다. 찰리의 경우는 사실 이 동의권이 문제가 되는 이례적인 경우이다. 일반적으로는 이러한 부모의 동의권의 쟁점은 아동의 생명권 보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치료를 부모가 자신의 신념 혹은 종교적 믿음을 이유로 거부하는 경우, 아동 최선의 이익 보호를 위해 법원이 치료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찰리의 경우는 아동의 미래의 치료에 대해서 병원과 부모의 의견이 다르고, 아동 최선의 이익을 판단하기 위해 법원의 재판 절차를 거치게 된 것이다. 영미법계 국가의 병원에는 아동학대와 아동보호를 담당하는 전담 인력을 두고 있다. 법적으로 아동 최선의 이익을 전적으로 부모의 판단에 맡겨두지 않기 위해서는 이러한 제도가 필요하고 그렇게 발전되어 온 결과이다. GOSH병원은 고등법원(High Court)에 아동에게 미국 병원에서 해보겠다는 실험적 치료를 제공하는 대신에 호흡기를 제거하고 완화치료를 하는 것이 아동 최선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판단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고등법원은 2017년 4월 11일, 이것이 아동 최선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하였다.

찰리의 부모는 상소법원(Court of Appeal)에 항소하였다. 2심 역시 5월 25일, 1심 결정을 유지하면서 존엄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찰리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하였고, 미국에서 실험용 치료를 받는 것은 찰리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일부에서는 이 치료가 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도, 미래의 다른 아동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였으나, 법원은 오직 찰리의 최선의 이익에 기반하여 판단하였으며, 의료과학의 이익을 고려하지는 않았다.

부모는 이 사안을 대법원(Supreme Court)까지 가지고 갔다. 대법원 역시 6월 8일 1, 2심 법원의 결정이 찰리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하였다.

부모의 바람과 반대되는 아동 치료의 집행은 이렇듯 무엇이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아동 최선의 이익인가를 판단할 수 있는 법원의 결정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원은 조사할 수 있는 모든 사안, 판단할 수 있는 모든 근거를 동원해서 재판을 진행한다. 의료 전문가와 부모의 참석은 물론이고, 독립적으로 아동만을 대표하는 변호인을 판사가 직권으로 임명하기도 한다.

찰리에게 최고도의 현대의학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다는 점도 재판과정에서 충분히 검토되었다. 영국 최고의 병원이 가진 최고의 의료진을 모두 동원하고 최첨단 의료 설비를 통해서 치료를 집중적으로 진행해 왔음을 재판 과정에서 확인하였다. 이러한 절차가 없었다면, 병원도 법원도 '존귀한 죽음이 찰리의 최선의 이익'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4월 11일 1심법원의 판결 이후, 6월 8일에 최고법원의 판결까지 마무리된 것은 이례적으로 빠른 진행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신속한 법원절차는 그 심리나 결정이 간단해서가 아니다. 외국 법원, 소위 선진국의 법원에서는 아동과 관련되어 있고, 해당 사안으로 아동이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을 경우, 이와 같이 신속하게 절차를 진행한다.

찰리의 부모는 영국 법원의 최고심에서도 연명 치료를 중단하라는 결정이 나올 경우를 대비해 6월 6일 유럽인권재판소에 영국 법원의 판결의 집행을 중단해 달라는 일종의 긴급한 잠정적 조치를 신청하였다.

국제법원에서의 새로운 절차를 시작한 것이다. 유럽인권재판소의 결정은 가입국들에 의해 그 취지대로 이행되어야 한다. 개인의 권리가 국가작용에 의해 침해되었을 경우, 실질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효과적인 절차이다. 그러나 모든 사안이 다 이 법원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국가의 행위에 의한 권리 침해여야 하고, 해당 국가 내에서 가능한 권리 구제 절차를 완전히 마쳐야 한다. 찰리의 경우, 최고법원까지의 판단을 모두 마치고 영국 내에서는 더 이상의 구제절차가 남아있지 않다.

이번 케이스의 타이틀은 'Gard and others v. the United Kingdom'이다. 이 소송 제기 당사자와 다투는 요지는 둘로 나눌 수 있다. 찰리를 대신해서 부모가 제기하는 소와 부모가 직접 다투는 내용이다. 찰리를 대신해서 부모는 병원이 찰리의 진료에 대한 판단으로 안전과 자유에 대한 권리(유럽인권협약 제5조)를 침해받고 있으며, 부모 자신들은 영국 법원의 판결로부터 친권이 과도하게 간섭받아 사생활과 가족의 권리 (동협약 제8조)를 침해받았다고 제소했다.

유럽인권재판소 역시 신속한 심리를 진행하였다. 우선 6월 9일 영국 법원의 판결의 집행을 중단하고 아동의 연명치료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잠정 조치를 영국정부에 요구하였다. 6월 19일 신청인에 의한 소송이 접수되고, 6월 27일 최종적으로 '각하(inadmissible)' 결정을 내린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이 케이스에 있어서 영국 법원이 아동과 부모의 권리를 침해했는지를 스스로 판단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는 영국 내에서 일련의 법원 절차가 합당할 결론에 이를 수 있도록 진행되었고, 그러한 국내 절차에 유럽인권재판소가 개입하고 별도의 심의와 판단 절차를 진행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국제법원이 국내법원의 기능을 대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찰리의 부모는 찰리의 생명을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아들의 최선의 이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법원은 의료전문가의 견해를 종합하여, 찰리의 최선의 이익은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 사건을 멀리서 목격하면서, 우리는 '아동'이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권리의 주체라고는 하는데,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말할 수 없는 한계. 이 존재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법제는 현대국가의 기본 토대이다. 영미법계에서는 '아동 최선의 이익'(Best Interests of the Child) 원칙에 의거하여 국가가 아동의 친권에 직권적으로 개입하는 국친 관할(Parens Patriae jurisdiction)의 제도를 두고 있다. 이 케이스는 실제로 그러한 법리가 영국 내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필자 이경은 씨는 대한민국 행정부 공무원으로 있었고, 미국에서 국제관계학 석사, 한국에서 국제법 박사를 마쳤으며, 전문분야는 '정책과정, 국제법, 아동권리' 입니다. 저서로는 <대통령의 성공, 취임전에 결정된다>(2012, 중앙북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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