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문화아카데미(옛 크리스천아카데미)가 이날 서울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발표한 새 헌법안에서 우선 주목할 지점은 기존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된 '분권형 대통령제'의 도입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 극복하자"
조문화 위원으로 참여한 고려대 김선택 교수(법학)는 "대통령 국민직선제를 유지하면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출현을 막고 책임정치를 구현하려면 대통령과 총리가 각각 다른 민주적 정당성을 갖고 선출되는 정치체제로 갈 수밖에 없었다"면서 "대통령은 국가의 상징이자 국민통합의 구심적 역할을 하도록 하고, 총리는 현실정치와 맞닿아 있으면서 행정부의 정책수립 및 집행자의 역할을 맡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새 헌법안에 따르면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며 1차에 한해 중임할 수 있도록 했다. 총리와 내각은 입법부인 국회를 통해 선출된다. 조문화 위원장인 이화여대 김문현 교수(법학)는 "대통령은 국가수반으로서 외국에 대해 국가를 대표하고, 대내적으로는 나라의 어른으로서 사회통합을 실현하는 역할을 하도록 했고, 국정은 총리와 내각이 담당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입법부인 국회는 양·하원제로 개편할 것을 제안했다. 하원의원의 임기는 4년, 상원의원의 임기는 6년으로 하도록 했다. 서울대 박찬욱 교수(정치학)는 "상원은 하원보다 좀 더 장기적이고 일반적인 국익의 관점에서 국정을 심의하고 여론을 광범위하게 수렴해 졸속입법을 수정하고 다수 의사의 일방적 관철을 견제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사법부의 경우에는 대법원장에게 권한이 집중되면서 나타난 부작용을 고려해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분산하도록 했고, 헌법재판소장은 추천위원회의 추천과 국회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헌재 재판관과 예비 재판관은 추천위의 3배수 추천을 받아 국회 하원에서 선출하게 된다.
김문현 교수는 "종래 사법부는 국회나 정부보다는 국민의 불신의 정도가 덜 했지만, 근래와 와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도 심각해지고 있다"며 "새 헌법안은 이러한 불신의 원인을 이루고 있는 법원의 관료화나 권위주의화를 막고 기존의 헌법재판제도의 문제점을 정비·보완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했다"고 부연했다.
이러한 구조는 '삼권분립'으로 대표되는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원칙을 유지하면서 각 부분 내에서도 일정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됐다는 설명이다. 연세대학교 박명림 교수(정치학)는 "집행부에선 대통령과 총리, 입법부 내에서는 상원과 하원, 사법부에선 법원과 헌법재판소, 정부 내에서는 중앙과 지방 사이에 상당한 수준의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 새 헌법안 마련을 위한 조문화 위원회의 구성원들. ⓒ대화문화아카데미 |
'국민' 대신 '모든 사람'…중앙정부의 식민지가 아닌 '실질적 지방자치'를
기존 헌법이 부여하고 있는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각 조항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제안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에 따라 새 헌법안에는 기존 헌법의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가 '기본권과 기본 의무'로 수정됐다.
역시 조문화 위원으로 참여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의 하승창 전 운영위원장은 "현행 헌법에는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의 주체를 '국민'으로 명시하고 있으나, 세계화에 따른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나 무국적자 등 국민만이 아닌 모든 공동체의 구성원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정신을 담았다"면서 "또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기본적인 권리도 보다 강화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여성이나 노인, 아동, 장애인을 수동적인 복지의 대상으로 한 현행 헌법과 달리, 새 헌법안에서는 이들 소수자들이 기본적으로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 주체로서 자기 권리는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며 "더불어 차별금지 조항의 범위가 확장되어야 하는 데에도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새 헌법안에는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10조 1항)", "모든 사람은 성별, 종교, 종족, 언어, 피부색, 연령, 신체적 조건이나 정신적 장애, 충신 지역, 성적 취향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10조 2항)", "국가는 양성평등의 실질적 실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10조 3항)" 등의 내용이 명시됐다.
실질적인 지방자치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인하대 이기우 교수(법학)는 "현행 헌법은 지방자치를 지방행정의 일종으로 인식하고 있어 지방정부가 떠맡아야 할 시대적인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방정부를 중앙정부의 하급기관, 지역을 중앙정부의 식민지로 전락시킨 현행 헌법과 달리 시·군·자치구의 재정책임과 재정권한을 헌법에 명시했고, 준헌법으로서 '지방자치기본법'을 제정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된 새 헌법안은 대화문화아카데미 학자, 정치인, 시민사회계 인사, 언론인 등 500여 명이 수십 차례에 걸쳐 가진 지난 5년 동안의 논의의 결과물이다.
대화문화아카데미 강대인 원장은 "이 제안을 둘러싸고 각계의 다양한 입장과 견해들이 다시 대화의 장으로 나오는 모습을, 헌법 논의를 통해 우리 사회가 평화로운 민주문화국가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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