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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의 등판을 보며 이정현을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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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의 등판을 보며 이정현을 떠올리다

[기자의 눈] 2016년의 이정현, 2017년의 홍준표

'홍트럼프'가 전면에 등장했다. 그는 화려한(?) 언변을 앞세워 대선 참패 두달여 만에 당내 경선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대선 득표율 24%. 홍준표의 '개인기'로만 얻은 표는 아니기 때문에 이 수치는 휘발성이 강하다. 그래서일까. 역대 다른 대선주자들과 달리 그는, 정치권에서 잊혀지기 전에 대선에서 확보한 세를 몰아 보수 정당을 장악하고자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오랜만에 나타난 그는 여전히 막말을 쏟아냈다. 18일 당대표 출마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해 "결국 친박 패당에서 주사파(주체사상파) 패당 정부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내걸었다는 표현으로 들린다. 검찰청 담장을 아슬아슬하게 거닌다.

그는 또 호남 지역에서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99%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를 거론하며 "중국 공산당이 정권 유지(를 위해) 장악하는 제일 첫 번째가 선전부 장악"이라고 했다. 정부가 여론조사 기관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으로 읽힌다. 또 그는 홍석현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를 거론하며 "신문(중앙일보), 방송(JTBC) 가져다 바치고 조카(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시키고 얻은 자리가 청와대 특보"라고 했다.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의 '막말'은 거침이 없다. 대선 후보 시절에는 워낙 많은 말들이 쏟아져나오는 국면이어서 '관대함'의 세례를 받았다. 사실, 더 정확히 말하면 연일 쏟아내는 막말에 유권자들은 일일이 신경을 쓸 겨를조차 없었다고 하는 게 맞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107석을 가진 야당으로서 가깝게는 올해 말 예산 정국, 멀게는 내년 초 지방선거 정국을 돌파해야 한다. 길게 봐야 하는 상황인데, 당대표가 되어서도 이런 저급한 말들로 제 1야당을 이끌어갈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보수 궤멸'의 책임자들...자유한국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도우미'

자유한국당의 비극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묘한 기시감이다.

홍준표 전 지사의 등판은 1년 전인 2016년 8월 새누리당의 마지막 전당대회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새누리당은 4월 총선에서 패배한 후 인물난을 겪고 있었다. 그때 빈 공간을 파고든 인물이 이정현 전 대표다.

박근혜 정부의 실정으로 인해 당이 총선에서 패배했는데,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은 당 내에서 인기몰이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다. 희한한 흥행몰이였다. '서민'에 '무수저' 출신을 강조하며 이정현 전 대표는 배낭을 메고 전국을 도는 일종의 '기행'을 선보였고, 호남 출신 당대표가 혁신임을 설파했다.

당심과 민심의 괴리는 커져갔다. '무수저·친박·정권 핵심·비주류' 모순된 단어들이 뒤죽박죽 섞이면서 당원들의 판단력을 흐트러뜨렸다. 그리고 그는 결국 당대표에 선출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핵심 비서가, 박근혜 정권의 실정에 의한 총선 패배 이후 당권을 쥐었다. 보수 세력은 혼란에 빠졌다.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라거나 "탄핵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지지겠다", "(노무현정부가) 사실상 북한과 내통한 것" 등의 막말로 유명했던 이 전 대표는 거침이 없었다. 박근혜를 "쓰러뜨리려는" 야당에 맞서 여당 대표가 단식을 하는 엽기적인 장면도 보여줬다. 결국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졌고, 새누리당은 이정현과 함께 침몰했다.

그로부터 1년 후다. 5월 대선에서 참패한 후 패장이 된 홍준표 전 지사가 다시 등판했다. 단숨에 그는 자유한국당의 유력 당권 주자로 떠올랐다. 새로운 인물이 보이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홍준표의 등판은 '인물난' 외에는 설명이 안된다. 오죽하면 대선 패장이 보수 야당의 얼굴을 자청하고 나설까.

홍 전 지사는 이정현 전 대표 못지 않은 '입담'을 갖췄다. 2011년에 당대표를 하고 2017년에 대선 주자를 지냈던 인물이 여전히 '비주류'와 '흙수저'를 거론하며 '서민'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중이 외면했던 낡은 '색깔론'은 그의 최대 무기다.

보수 정당이 처한 정치적 상황도 비슷하다. 자유한국당은 대선에서 패배했다. 그런데도 홍 전 지사는 24%의 수치를 보수 재건의 '토대'로 언급한다. 지나친 낙관론이다. 돌이켜 생각해보자. 대선 1년 전인 2016년 총선에서도 새누리당은 완전히 망하지 못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107석을 가졌다. 그게 화근이 됐다.

21대 총선은 앞으로 3년 가까이 남았다. 국회의원 임기가 3년 가까이 남았는데 홍 전 지사의 말처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쇄신'을 실천할 수 있을까? 버겁다. 심지어 7월 3일에 선출될 자유한국당 대표는 총선 공천권도 없는 대표다.

민주당이 2007년 12월 대선에서 참패했을 때, 그들은 전열을 가다듬고 쇄신을 부르짖었음에도 불과 4개월 후에 총선에서 또 다시 참패했다. 모두가 예상한 결론이었다. 그들이 차지한 의석은 89석. 오히려 이 숫자는 돌이켜보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들은 패배를 뼈저리게 느꼈다. 모두가 '망할 것'이라고 했다. 쇄신과 혁신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수년간 '대안 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없었다. 외면당했다.

자유한국당의 상황은 더욱 나쁘다. 대선 패배 주역이 강력한 당권 후보다. 2016년 이정현 대표 체제를 만들어냈던 상황이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보수가 궤멸 수준인데 만약 '막말 당대표'가 전면에 나서게 된다면, 안타깝지만 당분간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정현 대표의 선출이 당의 몰락을 가속화했듯.

민주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최근 "홍준표 전 지사가 당대표가 된다면 민주당 입장에서 '땡큐'다"라고 했다.

지금 자유한국당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인물, 새로운 얼굴이다. '홍준표 세대'는 이제 끝난 것 같다. 10년 야당 생활하는 동안 더불어민주당은 더디지만 해낸 게 있다. 세대교체다. 자유한국당으로 대변되는 '보수 진영'에 대항하는 '민주 진영'의 리더는 이미 586세대로 내려왔다. 홍준표의 '15대 국회 동기(96년 총선 정계 입문)'들은 야권에서도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는 중이다. 자유한국당에 그런 젊은 리더들이 있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왜 내 주변엔 안희정, 이광재가 없느냐"고 한탄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2인자'를 철저히 짓밟는 정치를 구사했다. 그 결과는 처참하다. 지난 10년간 권력의 온실 속에 자라온 화초들만 남았다. 이정현 전 당대표가 '대안'으로 여겨졌던 그 희한한 상황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자유한국당에 필요한 것은 '사이다 대표'가 아니다. '젊은 피'다. 과거 경험으로 보건데, 보수의 세대 교체 과정은 지난할 것이다. 홍준표 전 지사의 당대표 도전 선언을 보며 공허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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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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