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도 재해가 있다. 출산 후 우울증이나 고된 육아노동으로 인해 허리 디스크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남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는 육아를 맞이하게 된다. 엄마도 그러한대, 아빠는 더더욱 그렇다. 어떤 아빠는 숨을 꽉 막히게 하는 직장에서 벗어나 아이와 가족과 함께 하는 행복한 상상으로 육아휴직에 들어가지만, 막상 부딪치는 현실 앞에서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 나는 첫째 윤슬이를 키우면서 허리디스크에 걸렸다.
윤슬이가 태어날 때 우리는 서울 은평구에 있는 1층 빌라에 살았다. 윤슬이가 돌도 되기 전 일이다.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들고 계단을 내려오다 발을 헛디뎠다. 어떻게든 아이를 다치지 않기 위해 유모차는 꽉 잡고 바닥에 내렸지만, 허리를 삐긋했다. 아이를 맡길 사람이 없어서 병원에 갈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 생각하면서 한 달을 꾹 참았다.
한 달 후에도 낫지 않았다. 아내한테 아이를 맡기고, 토요일마다 한의원에 가서 침을 몇 번 맞았다. 그래도 낫지 않아 평일에도 아이를 데리고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다. 몇 번 침을 맞으면 나을 거라 생각했지만 큰 차도가 없었다. 왠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을 했다. 큰 병원에 가서 MRI를 찍었더니, 디스크가 터져서 흘러나온 것. 의사가 "괜찮았냐고, 이 정도면 무척 아팠을 건데..."라고 물었다.
물론, 괜찮지 않았다. 허리가 아파도 아이는 울고, 보채고, 안아 달라고, 밖으로 놀러가자고 한다. 아이도 키우랴, 허리 치료하랴 참 힘든 기간이었다. 김연아가 운동치료 받았다는 병원도 가보고, 유명한 한의원에 가서 눈물 나게 아픈 침도 맞았다. 백약이 무효였다.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날짜도 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허리 통증이 사라졌다.
수술은 하지 않았다. 물론 그 이후에도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허리통증 때문에 침도 맞고, 물리치료도 받았다. 매년 통증이 찾아오는 주기가 길어지더니 이제는 괜찮다. 가끔씩 뻐근할 때도 있지만, 스트레칭을 해서 자체 해결한다.
귀에서 "삐익"하는 소리가 들렸다. 방바닥이 90도로 일어섰다. 나는 쓰러졌고 평생 처음으로 119에 실려 병원 응급실로 갔다. 의사는 고막은 물론 달팽이관을 보호하는 막까지 찢고 젓가락이 들어갔다고 말했다. 의사 생활 15년 동안 이렇게 귀를 심하게 다쳐서 온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얘기했다.
의사는 달팽이관까지 손상된 것 같고, 청력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손상된 달팽이관이 회복되지 않으면 평생 어지러울 수도 있다고 했다. 수술 여부는 응급처치 이후 2,3일 경과를 보고 나서 판단하자고 했다. 다행히 수술은 하지 않았다.
1년 가까이 된 지금, 청력은 60% 돌아왔다. 듣지 못하는 40%는 고음역대다. 여러 명이 큰 소리로 말하면 무슨 소리인지 당최 알아들을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래도 의사가 "이 정도라도 회복된 게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일상생활하면서 큰 지장은 없으니까. 몹쓸 어지러움증은 말끔히 사라졌다.
대신 이명이 무척 심하다. 듣지 못하는 음역대가 고장난 라디오의 '지~지~' 소리로 변했다. 라디오 볼륨 4 정도 소리쯤 되나.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갑자기 '삐! 삐!' 거리면서 귀 안을 날카롭게 후벼파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지 않냐고" 묻는다. 솔직히 그러저럭 지낼 만한다. 의사 말대로 "이 정도라도 회복된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의 상태를 그냥 받아들이고 있다. 의사가 "이명 치료의 기본은 이명을 잊는 것"이라며 말했다. 처음 그 말을 들을 땐 ‘무슨 선문답 같은 소리야’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닥 좋은 말 같지 않지만), "괴로우면 지는 것"이다. 이명도 내 몸의 일부다라고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생활하려고 노력하다보니 이명 자체를 잊고 있을 때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아들이 밉지 않냐고" 묻는다. 둘째 은유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아빠 귀 아파"하면서 내 귀에 입을 대고 "호~"를 해줬다. 다친 왼쪽 귀가 아니라 멀쩡한 오른쪽 귀에다 대고. 그러면서 "내가 젓가락으로 아빠 귀를 찔렀지"라는 말도 자주 덧붙였다. 나는 귀를 다쳤지만, 그 사건으로 아이도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여튼 귀를 다친 것 때문에 아들이 "밉다"라는 생각은 딱 한번 했다.
육아를 하다가 손목이나 허리가 아프거나, 갑작스런 사고로 다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이를 대신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병원에 가는 것도 큰일이고, 어쩔 수 없이 차일피일 미루다가 병을 키우기도 한다. 육아종합지원센터에 육아돌보미를 신청할 수도 있으나, 여러 가지 절차도 있고,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지자체별로 있는 육아종합지원센터나 건강가족지원센터 같은 곳에 엄마나 아빠가 치료를 받는 동안 아이는 돌봄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병원도 만들면 어떨까. 아이를 키우는 것은 행복한 일이기도 하지만,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기도 한 것도 사실. 엄마, 아빠들이 여러 가지 정신적 어려움과 질병에 시달리기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좋은 육아공약을 많이 내놓았지만, 아픈 엄마, 아빠들이 맘 편히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아이 돌봄실이 있는 병원 하나쯤 동네마다 생기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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