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쇄신'의 시점을 '7.28 재보선 이후'로 잡고 있는 청와대다. 일단 여론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지역, 계층, 세대, 이념 사회의 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한 각종 '중도실용 정책'들을 제시하는 한편 행정구역과 선거제도 개편 등의 과제를 제기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선거패배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여전히 회피하고 있다. '쇄신'과 '반성'이 전제되지 않는 '정치개혁'과 '통합'의 목소리에 과연 힘이 실릴 수 있겠느냐는 회의도 여전하다.
반성없는 '정치개혁론'…가능할까?
이명박 대통령은 8일 청와대에서 오찬을 겸해 열린 사회통합위원회(위원장 고건) 업무보고에서 "갈등을 통합의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고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일방주의적 국정운영에 대한 심판과 견제로 귀결된 이번 지방선거의 성격을 '사회갈등'으로 규정한 발언이어서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우리 사회는 자꾸 진화하고 있으며, 과거의 고정관념에 묶여 있어서는 안 된다"며 "전통적인 갈등요인은 물론 새로운 갈등요인에 대해서까지 논의를 벌이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은 대단히 의미가 큰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서 사통위는 "지역주의 정치구조는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라면서 "현행 선거제도가 지역주의 정치 갈등과 지역별 일당독점체제 강화의 주요 원인으로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고건 위원장은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고, 사표를 줄여 표심의 왜곡을 막을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을 연구하자는 것"이라며 "여기에는 정치권의 현실적인 수용 가능성의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에 복수의 대안을 내놓고 공론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제안에 대해 이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전해지지 않았다. 박선규 대변인은 "한 마디로 영남지역에서 민주당 출신의 정치인들이 여럿 당선되고, 호남에서 한나라당 출신 의원들이 여럿 당선될 수 있는 제도가 발전적인 게 아니겠냐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이라며 "그러한 방향은 분명하지만, 그 구체적 수단에 대해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에 따라 사통위는 관련 학회 및 전문가 그룹과 함께 ▲중대선거구제와 소선거구제의 장단점 ▲정당투표와 인물투표의 비율 및 의원정수 ▲유권자 투표횟수와 투표 종류 등을 검토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결론을 올해 하반기에 도출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그 실현 가능성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행정구역 및 선거제도 개편 문제는 정치권의 개헌논의와 연관될 수밖에 없기 때문.
이에 대해 민주당 우상호 대변인은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 제도의 도입,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의 민주당 당론과 유사한 지역주의 극복방안이 대통령에게 보고 된 것을 환영한다"면서도 "다만 새로운 정치이슈에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을 반영하는 노력을 전환시키려는 목표가 있다면 이것은 또 다른 정략이라는 점을 지적한다"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어 우 대변인은 "이 문제는 반드시 국회 정치개혁특위를 열어서 논의해야 할 사안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청와대가 4대강 사업, 세종시 수정 등 최대 현안에 대한 '버티기 모드'를 이어가고 있는 대목 역시 야권의 협조를 당장은 기대하기 어려운 측면으로 꼽힌다.
게다가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소장그룹이 청와대 및 여권 핵심부에 대한 강력한 '인적쇄신'을 요구하고 나서는 한편, 박근혜 전 대표 측과의 계파갈등마저 재현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집안단속'이 먼저가 아니냐는 회의론이 적지 않게 제기되는 이유다.
▲ 8일 열린 사회통합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고건 위원장(왼쪽 끝). ⓒ청와대 |
정치적 위기 때마다 반복된 '親서민'…이번에는?
이날 회의에서 사통위는 대학 시간강사의 고용안정성을 제고하고 임금을 현실화하는 방안을 비롯해 ▲저임금 근로자 사회보험료 감면 ▲고용 및 복지서비스 통합정보망 구축을 통한 통합전달체계 구축 ▲무기계약직 전환 확산 지원 ▲도급근로자 보호방안 마련 ▲건설직 일용근로자 기능훈련 및 자녀 학자금 지원 및 건강검진, 문화시설 혜택 부여 등의 방안도 보고했다.
용산참사를 계기로 확산된 도시재정비사업 논란과 관련해서는 상가세입자의 영업보상금을 현실화하고 순환실 개발을 확대하는 한편 재개발사업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안 등이 제시됐다.
이 대통령은 "여러 갈등이 있지만 빈부 갈등은 앞으로 점점 심화될 것이라고 본다"며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하는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고 주문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방선거를 경과하면서 청와대가 난데없이 꺼낸 '중도실용'과 '친서민' 기조를 둘러싼 '진정성 논란'도 확산될 전망이다.
'친서민'이라는 구호는 이 대통령의 임기 첫 해인 2008년 '촛불사태' 이후, 여권에 '5대0 패배'를 안긴 지난 해 4.29 재보선 직후 등 주로 '정치적 위기국면'에서 등장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청와대 측은 "중도실용, 친서민 기조는 국면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 국정운영의 핵심적인 방향"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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