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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전설’ 겐팅 그룹 ‘림고통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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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전설’ 겐팅 그룹 ‘림고통 회장’

[홍춘봉 기자의 카지노이야기] ④‘카지노 신화’ 창조한 전설

동남아시아의 ‘숨겨진 보석’, ‘천(千)의 얼굴’을 가진 나라 말레이시아에서 ‘전설적인’ 기업은 카지노 회사인 ‘리조트월드 겐팅’ 그룹이다.

입헌군주국인 말레이시아에서 중국인 화교가 국왕을 설득시켜 카지노 사업을 성사시킨 인물은 ‘말레이시아의 전설’로 알려진 ‘림고통(林梧桐)’ 리조트월드 겐팅 창업주다.

림고통 창업주는 강원랜드 설립 초기 강원랜드 인수를 위해 강원랜드를 두 차례나 방문했다. 또 그는 겐팅 카지노 개장에 앞서 전락원 파라다이스 회장으로부터 카지노 경영 노하우를 전수받을 정도로 대한민국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겐팅 창업주 림고통 회장 자서전. ⓒ프레시안(홍춘봉)


그는 대한민국 현대그룹을 일군 고 정주영 회장과 비견되는 말레이시아의 입지전적 인물로 회자된다.

중국 푸젠성 안시지역에서 평범한 가정의 4남3녀 가운데 1918년 5번째로 태어난 림 회장은 14세에 부친이 세상을 뜨면서 인생에 전환기를 맞는다.

부친을 일찍 여의면서 가세가 기울게 되자 그는 삼촌에게서 목수기술을 배우며 험난한 사회생활의 기초를 다졌다.

당시 중국의 농촌 경제는 몰락 상태였고 일본이 만주전쟁을 통해 중국 동북지방을 점령한 뒤라 정치 사회적으로도 극심한 혼란기에 있었다.

특히 1937년 7월 7일 베이징에서 중국군을 공격하면서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중국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불투명했다.

림고통은 중국에서는 미래를 기약하기가 힘들다는 판단을 했다.

내성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지만 미래를 보는 안목이 남달랐던 그는 19세가 되던 1937년 당시 ‘희망의 땅’으로 알려진 말레이시아로 이주한다.

수십 일에 걸친 도보여정 끝에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했을 당시 그의 수중에는 미화 2달러가 전 재산이었다.

1786년부터 영국통치를 받던 말레이시아는 림고통이 ‘말레이 드림’을 꿈꾸며 찾을 당시에도 국왕의 존재가치는 절대적이었다.

이후 말레이시아는 1957년 11개 주를 통합해 말레이 연방으로 독립하면서 입헌군주제 국가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말레이시아 구눙울루 칼리산 밀림에 들어선 세계 최고원 휴양리조트 리조트월드 겐팅. ⓒ리조트월드 겐팅.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생각이 남달랐던 그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맞닥뜨린 첫 과제가 먹고 사는 문제였다.

대부분의 중국출신 가난한 화교들이 그랬던 것처럼 생존을 위해 일자리를 찾아야 했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악착같이 일하고 부지런히 돈벌이에 사활을 걸어야 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에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약속에 관해서, 나는 지키는 것이 습관이다. 나는 약속시간 보다 항상 10분 먼저 나가 상대를 기다렸다. 약속은 매우 중요하며,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는 상대하지 않는 원칙을 갖고 있다.

나는 어린 시절 부끄러움이 많았고, 내성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친절하고 성실하게 긍정적으로 손을 내밀었고 항상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사귀었으며, 절대 실패하지 않았다.

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좋아한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잠을 자면서도 항상 생각을 한다.나는 중요한 것을 기록하기 위해 항상 메모지를 가지고 다닌다. 해야 할 일을 항상 일기장에 적어둔다.나는 언제나 빠르게 행동하고 효과적으로 움직인다. 이것은 성공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왜 내가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지 궁금해 한다.나는 신념의 힘을 믿는다. 내가 결정을 내리고 그것이 옳다는 것을 강하게 믿을 때, 누가 어떤 반대를 하더라도 그것을 실행한다.>

철저한 신용관리와 성실함을 바탕으로 건설현장에서 삼촌에게서 배운 목수 기술자로 일하던 그는 말레이시아 정착 10여 년 만에 자그마한 건설 회사를 차려 사업가로 나서게 된다.

다른 사람보다 보는 눈이 남달랐던 그는 남보다 빠른 공정과 하자를 거의 용납하지 않는 꼼꼼한 일처리로 다른 기업과 차별화를 했다.

이러한 건설업 과정에서 림고통은 쿠알라룸푸르에서 북쪽으로 3시간 30분 거리의 고원산악리조트 ‘카메룬 하이랜드’인근 변전소 공사장의 하청 일을 하면서 고원리조트의 매력에 빠졌다.

사계절 서늘한 고원지대 휴양리조트의 가치를 알게 된 그는 이때부터 겐팅리조트 사업구상을 하게 된다.

평소 좌우명처럼 매사에 적극적으로 일하던 림고통에게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속담처럼 인생 최고의 행운이 찾아온다.

1963년 정확한 내용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공사현장에서 일하다 국왕 아들의 생명을 구해주는 일이 생겼다.

자신의 아들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 중국계 화교신분의 영세 건설업자라는 소식을 들은 국왕은 곧장 림고통을 왕궁으로 초청했다.

융숭한 대접을 한 국왕은 림고통에게 말했다.


▲해발 1800미터 말레이시아 구눙울루 칼리산 정상에 들어선 리조트월드 겐팅 전경. ⓒ리조트월드 겐팅

“소중한 우리 아들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나의 진심을 담은 보답을 하고 싶다. 무엇이든 필요한 것을 말해 달라!”

당시 국왕은 많은 돈이나 땅을 원할 것으로 생각했고 지금 같으면 ‘백지수표’나 수백만 에이커의 땅을 공짜로 줄 생각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잠시 뜸을 들이던 림고통은 “국왕 폐하! 제가 하고 싶은 평생의 사업이 있는데 카지노 사업입니다. 카지노 사업권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하고 전혀 뜻밖의 제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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