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세계환경의 날인 5일 '세계의 골칫덩이'로 떠오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지난 1일 트럼프가 거의 전세계 모든 국가들이 어렵게 합의한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하겠다고 공식 발표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자 세계에서 중국과 함께 가장 많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나라다. 트럼프는 스스로 국제적 리더십을 포기하는 길을 선택한 셈이다.
물론 최대 명분은 그가 천명한 '미국 우선주의' 노선에 따라 파리협정 탈퇴가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파리협정은 미국 국민에게 엄청난 비용부담을 주고 있다"면서 "이미 미국이 막대한 해외 원조를 하고 있는 마당에 수십억에, 수십억에, 수십억 달러를 또 내놓으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트럼프는 "우리는 이미 어느 나라보다 비용을 많이 부담하고 있는 반면, 다른 나라들은 한 푼도 내놓지 않는 곳이 많고 이런 나라들은 한 푼도 더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용부담 규모를 수십억 달러를 세 번이나 더해서 반복한 것을 보면 듣는 입장에서는 미국이 부담하는 비용이 최소한 60억 달러 이상은 되나보다 할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가짜 사실'에 근거한 주장을 하기로 악명 높은 인사다. 따라서 트럼프의 주장을 '팩트체크'없이 전달하는 것 자체가 언론에게는 '보도 직무 유기'가 될 위험이 있다.
미국이 파리협정 때문에 돈 많이 내고 있다고?
트럼프의 비용 부담 주장은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들에게 지원하는 1000억 달러의 자금을 '녹색기후기금'에 출연하라는 협정의 의무를 언급한 것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은 파리협정의 모태인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으로 조성된 녹색기후기금(GCF)에 30억 달러를 출연하기로 약속했다. 이 출연금은 2020년까지 개발도상국들이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달성하도록 지원하는 데 쓰인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6조 5000억 달러에 달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부담하는 30억 달러는 그렇게 많은 돈이 아니다. 게다가 지난 5월까지 미국이 녹색기후기금에 실제 출연한 액수는 현재까지 30억 달러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다.
트럼프는 탄소배출을 많이 하는 인도가 선진국들로부터 수십억 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파리협정에 참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인도타임스>에 따르면, 인도가 탄소배출 감축에 따르는 비용 보전을 위해 파리협정이 타결된 2015년, 31억 달러의 해외 원조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지원금 중 미국이 출연한 자금은 1억 달러 정도에 불과했다.
이처럼 미국에만 비용을 너무 많이 청구한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파리협정을 탈퇴할 명분으로서 사실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나아가 미국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상당한 부담을 안고 앞장서야 할 의무를 피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트럼프는 "많은 나라들은 한 푼도 더 내지 않을 것"이라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에서 기후변화 관련 기사를 총지휘하는 편집자 한나 페어필드는 "미국만큼 지구를 오염시키는 나라들은 별로 없다"고 꼬집었다.
트럼프의 파리협정 탈퇴 결정은 미국에 돈 몇 푼의 비용부담을 줄이는 '소탐'의 대가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국익을 훼손하는 '대실'을 초래하는 최악의 실정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미국의 석유메이저도 반대하는 탈퇴 결정
미국이 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1년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은 선진국 37개국에만 감축 목표를 의무화한 교토의정서(2020년까지 적용되는 파리협정 이전 체제로 1997년 발효. 편집자)가 미국의 산업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탈퇴했다.
부시의 교토의정서 탈퇴 결정에 대해 당시 "석유메이저의 지원으로 집권한 대통령으로서 석유메이저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었던 결정"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미국의 세계 최대 석유기업 엑손모빌은 "파리협정이 천연가스 등 탄소배출량이 적은 자원과 기술발전을 촉진한다"면서 파리협약에 잔류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트럼프 정부에 보내는 등 미국의 에너지업계 전반에서 전기차, 태양광, 해상 풍력 등 친환경 분야 신산업의 기회를 미국이 놓쳐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파리협정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90%를 차지하는 195개국 모두 온실가스 감축 의무에 모두가 동참하는 체제라는 점에서 교토의정서와 무게가 다르다. 파리협정을 외면하면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은 국제사회에서 사업기회를 잃게 될 위기에 처한다.
이 때문에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일본에서 열린 G7정상회담에서 파리협정 이행을 약속하면서 같은 해 9월 행정명령을 통해 파리협정을 비준했다. 트럼프는 전임 대통령이 비준까지 한 협정에서 탈퇴를 결정한 것이다.
나아가 파리협정 탈퇴는 미국의 대통령이 미국의 국익에 중대한 침해를 한 결정이라는 점에서 "트럼프는 미국을 위하는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성토가 주류 인사들로부터 터져 나오고 있다.
사실 파리협정은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동참한 국제법적 약속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기후협정에서 탈퇴했다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세계를 주도해 나간다는 미국이 자신의 위상을 포기한다는 선언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보수진영조차 경악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 이후 최악의 실책으로 드러날 것"
경제석학으로 재무장관, 하버드 총장까지 지낸 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아예 미 사회 지도층이 트럼프 노선 반대에 나설 것을 공개 촉구하고 나섰다.
서머스 교수는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에 '재계는 트럼프가 미국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Business needs to show there is more to the US than Donald Trump)'라는 기고문을 통해 "파리협정 탈퇴는 이라크 전쟁 이후 최악의 실책으로 드러날 것이며, 훨씬 더 장기적으로 그 적폐가 실감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미스 교수는 "테슬라 그룹의 일론 머스크 회장, 디즈니 그룹의 로버트 아이거 회장이 트럼프의 대통령 자문직에서 사퇴한 것은 올바르고 원칙을 지킨 입장을 취한 것'이라면서 "더 많은 재계 인사들이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미국의 대통령이 미국은 아니다"면서 "세계는 트럼프의 말과 행동이 미국이 되돌릴 수 없는 길로 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지, 아니면 잠시의 일탈로 봐야 할지 지켜볼 것"이라면서 "미국 사회의 더 많은 지도층 인사들이 다른 국가들과의 공동 목표에 기여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자"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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