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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야동을 보는 것 같아요. 어떡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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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야동을 보는 것 같아요. 어떡하죠?"

[격월간 민들레] 아기, 황새가 물어다 줬다? 첫 단추부터 어긋난 성교육

알 건 다 안다고!

중학교 2학년 즈음인가,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맞이하는 엄마의 모습이 평소와 좀 달랐다. "아라야, 여기 앉아봐." 엄마의 첫마디는 큰 돌덩이가 저수지에 빠진 듯 무겁고 답답했다. 이윽고 이어진 말, "니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아나?".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답답함의 정체를 알아버렸다. 젠장,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이다. 바로 엄마표 성교육. "안다, 다 안다!" 나는 외치듯, 짜증을 내듯, 화를 내듯 내뱉었다.

당시 나는 엄마와 성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는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고 거북했다. 그런 얘기가 엄마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도 싫었고 그런 얘기를 내 귀로 듣는 것도 싫었다. 그 자리를 벗어나고만 싶어서 "다 안다고!"를 외치며 격렬히 저항했지만, 엄마는 그런 나의 외침을 전혀 믿지 않았다. 엄마 눈에는 언제까지나 작고 순진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미성년자 딸내미가 그런 걸 절대로 다 알 리가 없었고, 또한 아직은 알 리가 없어야 했다. 이어지는 엄마의 성교육 시간 동안 나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장판이나 벽지의 무늬를 보며 거북스러운 속을 달랬고, 엄마는 본인도 하기 싫고 두렵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숙제를 하는 것처럼 할 말만 순서대로 쏟아내고 있었다.

서로에게 힘들기만 했던 성교육의 결론은 결국 '남자는 욕구를 잘 참지 못하며, 흥분하면 성기가 단단해지는데 그 성기를 여자 성기로 집어넣으면 정자와 난자가 만나게 되고 그러면 아기가 생기므로 여자인 나는 몸조심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꼭 몸조심을 하겠노라' 여러 차례 다짐하고서야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좋아하는 연예인의 팬픽(팬들이 만든, 연예인이 주인공인 소설)을 즐겨 읽으며 이미 사랑, 섹스, 동성애, SM 플레이 등에 대해 '글'로는 빠삭하게 알고 있었고, 남자의 몸속에 있는 정자가 여자의 몸속에 있는 난자와 무슨 수로 만나는지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사랑해서 혹은 사랑 없이 욕구만으로 섹스하기도 하고, 또한 섹스는 황홀감을 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엄마와 아빠도 섹스를 통해 나를 낳았다는 것이 마치 동물처럼 느껴져 외면하고 싶기도 했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성교육은커녕 부모님과 성에 대한 이야기를 입에 올려본 적도 없는 친구들이 수두룩했다. 그나마 성교육을 받았던 친구들도 그 내용과 결론이 나와 다르지 않았는데, 결론은 언제나 '여자는 팬티를 잘 벗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나에게 성은 호기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미지의 세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미지의 세계를 나와 함께 걸어가거나 안내해준 사람은 없었다. 단지 그 입구에 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출입금지' 팻말을 세우는 어른들이 있었을 뿐이다.

ⓒgettyimage.com

모른 척하는 부모들

몇 년 전, 대구의 한 중학교에서 '이성 교제'(강의안에는 이성 교제라고 적지만, 실제 수업에서는 '연애'라는 표현을 주로 쓴다)를 주제로 성교육을 하면서 연애할 때의 좋은 점과 걱정되는 점을 포스트잇에 적고 얘기한 적이 있다. 연애할 때 걱정되는 점을 적은 메모 중 눈에 띄는 것이 '낙태'였다. 그 메모를 골라 소리 내어 읽는 순간 교실엔 "으어~" 하는 야유가 쏟아졌다. 간간이 "쓰레기네, 누구고? 미쳤나!" 하는 추임새도 있었다. 그때 묻지도 않았는데,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더니 자기가 썼노라 이실직고했다. 그러자 야유는 한층 더 높아졌다. 그러나 그 아이가 내뱉은 말에 모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가 임신하면 낙태하는 것 말고 뭐 다른 방법 있어요?"

아이를 낳아 키운다 해도 중학생이 돈을 벌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어쩌다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쳐도 최저시급도 안 주는 사업주가 수두룩하고, 아이를 돌볼 수 있을 만큼의 급여를 위해서는 결국 학교를 그만두어야 그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어떠한 이유로든 학업을 중단한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겪는 어려움을 떠올려본다면 그들의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다. 어렵게 아이를 낳더라도 '걸레' '양아치'라는 말로 손가락질을 받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날 나는 아이들에게 성에 대한 고민이 생겼을 때 누구와 의논하겠는가 하는 질문도 했는데, 대부분 친구나 그 일을 함께 벌인(?) 상대방을 꼽았다. "부모님하고는 상의하지 않아? 그 이유가 뭐야?" 하고 묻자 아이들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부모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것 같은데요."

그날 이후로 얼마간 나는 아이들이 부모님은 왜 해결 방법을 모를 것이라고 여기는지 생각해보았다. 부모들이 성에 대해서 늘 모르는 척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아기는 어떻게 생겨요?"라는 질문에는 "나중에 크면 알게 돼"라며 대답을 회피하거나, "황새가 물어다 줬지"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라고 둘러대기 일쑤다. 가정에서의 성교육은 첫 단추부터 어긋난 셈이다.

청소년이 된 아이의 방에서 휴지 뭉치를 발견하거나 컴퓨터에서 '뻐꾸기' '직박구리' 같은 수상한 새 폴더를 발견하면, 속으론 걱정하면서도 많은 부모들이 이 또한 모른 척 넘어가려 한다. 온라인 카페에 "우리 아이가 야동을 보는 것 같아요. 자위를 하는 것 같아요. 어떡하죠?" 하고 글을 올리면, "사춘기가 시작됐네요.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모르는 척하세요"라는 유경험자들의 댓글이 주르르 달리니까. 부모들끼리 자연스러운 발달상의 과제들에 대해 '모르는 척하기'로 대동단결하는 것이다. 그렇게 부모들은 꽤 오랫동안 쑥스러워서, 민망해서, 당연한 과정이라서, 혹은 정말 몰라서 아이들의 성에 대해 울타리 밖에 서서 모르는 척해왔다. 그러니 아이들 입장에선 지금까지 모르는 척하던 부모님이 어느 날 갑자기 성 얘기를 하자고 들면, '왜 이래?' 하고 거부 반응이 드는 게 당연할 것이다.

아이들과 성 얘기를 나눌 때

그러다 보니 나는 언제든(그러나 아이가 원할 때, 적절한 타이밍에) 아이와 성 얘기를 하는 부모가 되리라 마음먹었는데, 막상 부모가 되고 나니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아이는 두 돌 무렵부터 몸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엄마 몸을 여기저기 찔러보거나 자신의 몸을 무던히도 관찰하며 놀았는데 아빠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루는 속옷 차림으로 편안히 누워 있는 아빠에게 다가가더니 갑자기 고추를 확 잡아당겨 남편이 "억!" 하며 나동그라진 적이 있다. 나는 태연히 아이에게 다가가 "이건, 고추라고 하는 거야. 우리 아민이랑 엄마 몸에 있는 짬지랑은 다르지?"라고 말했다. 아, 얼마나 살아 있는 교육인가! 그러나 그런 내 의기양양한 태도도 잠시, 남편이 "아빠 아프다고! 아빠도 부끄럽다고!" 하며 아이를 붙잡고 혼을 내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빠는 아이의 성교육 교구가 아니라 아빠 자체로 성적인 인간임을. 그렇기에 그런 남편의 감정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는 것임을 나는 그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불행히도 나만 이런 착각을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종종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이 엄마의 목욕 장면을 힐끔 훔쳐보거나 슬쩍 가슴 쪽을 터치하고, 혹은 딸이 집에서 옷을 다 벗고 돌아다녀 민망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참에 성교육을 해야 한다", 혹은 "발달상 자연스러운 과정이니 넘어가라" 하고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안타깝게도 어느 쪽이든 누군가가 몸을 훔쳐보거나 가슴을 터치하는 것이 불쾌한 '나'는 어디에도 없고, 이런 아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부모'만 남아 있는 셈이다.

그래서 요즘은 아이에게 내 기분이나 생각에 대해 최대한 솔직하게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직은 어린아이라 가끔 가혹하게도 느껴질 테지만, "사람들 앞에서 엄마 찌찌 만지지 마, 간지럽고 부끄러우니까. 엄마 찌찌는 엄마 거야" 하고 말한다. 그러면 아이는 조금 서운해하지만 나름대로 그 상황을 잘 받아들인다. "그럼, 만져도 될 때 다시 이야기해줘" 하고 협상까지 할 정도니까.

그런데 '엄마이기 이전에 나도 한 명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다 보니, 그런 '나'가 어떤 사람인지 점검할 필요가 생겼다. 성교육 강사 생활을 하며 스스로 가지고 있던 성에 대한 여러 통념을 깨부수어왔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언뜻언뜻 숨어 있는 통념들을 발견하게 된다(예를 들면, 딸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아이고, 치마를 입었으면 얌전히 이쁘게 앉아야지"라고 말하는 것).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기억력이 좋다. 부모가 무의식중에 한 말뿐만 아니라 어조, 눈빛, 손짓까지 기억하곤 한다. 아니 기억한다기보다는 본능적으로 느낀다는 편이 맞겠다. 뉴스를 보다가 성폭행 사건 같은 보도에 무심결에라도 "아니, 그러게 왜 늦은 시간에 돌아다녀서. 쯧쯧, 혼자 사는 집에 남자를 들였다면 뻔하지"와 같은 말을 했다면 아이들은 비슷한 상황에서 가해 행위를 해도 그것이 잘못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반대로 피해를 입고도 도움을 요청하기 힘들 것이다.

'설마, 내 아들딸은 안 그렇겠지'도 부모들이 흔히 가진 가장 심각한 성 통념이자 아이들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이다. 이 문제의식을 시작으로 부모 안에 있는 통념들을 하나씩 발견하고 부수는 작업이 아이와의 소통을 위해 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성교육에 대한 부모의 관심이 높아져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니라 너무 아는 척(?)하는 사례들도 많다. 주로 초경을 시작한 딸아이에게 생리 파티를 열어주거나 연애를 시작한 아들의 서랍 안에 깜짝 선물로 콘돔을 넣어두거나 아빠와 아들이 함께 야동을 공유하거나 하는 것들인데, 아이의 성장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것은 좋지만 자연스러운 성장을 자칫 '이벤트'로 다루는 것은 아닌가 걱정되기도 한다. 아이의 성장과 발달은 일상이다. 평소 아이가 좋아하는 연예인에 함께 관심을 갖고(자연스레 아이의 이성에 대한 관심, 이상형 등을 알게 된다), 교육상 안 좋다는 이유로 참지 말고 부부싸움(이성 간의 싸움을 간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도 화끈하게 하고, 가끔은 아이 앞에서 뽀뽀도 당당하게 하며 아이들과 일상을 살아가는 건 어떨까.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일상 속에 아이들과의 성적 소통 또한 이전과 확실히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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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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