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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식 '참여의 동원', 이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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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식 '참여의 동원', 이래서는 안 된다

[초록發光] '보여주기 식 행사 관행' 버려야

매해 반복되고 이제는 일상이 돼 버린 미세먼지 문제. 시민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하늘도 정치도 뿌옇다"며 정치를 향해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다. 그 탓에 장미 대선이 그동안 찾아보기 힘든 '환경 대선'이 되기도 했다. 대선 후보라면 누구나 미세먼지에 대해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직후 노후 석탄발전소를 폐쇄하겠다는 카드를 꺼내들며 미세먼지 문제 해결 의지를 다짐했다. 미세먼지 때문에 임신까지 미루고 있다는 시민들에게 이런 정치는 분명 반가운 일이 틀림없다.


감동은 이어졌다. 서울시가 광화문 광장에서 3000명의 시민들이 참석하여 미세먼지 해결 방안을 찾는 원탁 대토론회를 개최하면서 획기적인 미세먼지 대책을 발표한 것이다. 미세먼지 고농도 시에 시민참여형 차량 2부제를 실시하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서 대중교통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사대문 안으로 노후 경유 차량의 진입을 금지하며 미세먼지 배출을 다량 배출하고 있던 건설장비 등을 본격적으로 규제하겠다는 정책 등이 포함되었다. 여러 전문가들과 환경단체들이 오래 전부터 주장해오던 정책들을 상당수 수용한 것이었다. "역시 박원순 시장!"라며 '엄지척' 할 사람들이 많을 듯하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에게 쓴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미세먼지 정책의 시급성과 발표된 내용의 타당성은 별개로, 과연 그 정책이 얼미나 민주적으로 결정되었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3000명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가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묻는 것이다. 행사 진행자는 이번 '행사'를 "숙의 민주주의"라고 선언하였지만, 애석하게도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맨 정신을 가진 이라면 2시간 동안 광화문 광장에서 3천명이 참여하여 '숙의'를 하였다는 주장에 수긍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서울시가 보도자료(2017. 5. 25, 환경정책과)에서 묘사한 대로 "각계각층에서 모집된 3000명의 인원이 250여 개의 원탁에 앉아 보여주는 풍경도 색다른 볼거리"에 더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시민들이 참여하여 숙의적 토론을 가능케 하려면, 충실한 정보 제공과 충분한 토론 시간을 보장하는 것이 최소한의 요건일 것이다. 과연 현장에서는 어땠을까? 필자 중 한 명은 이 토론회에 직접 참여하였다. 지켜본 바에 따르면, 3000명의 시민들에게 미세먼지 문제와 해결책에 관해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었다고 할 수 없었다. 시간에 쫓겨서 서울연구원장은 준비된 내용을 충분히 전달하지도 못하고 무대를 내려가야 했다. 사전에 시민들에게 자료가 배포되었다고는 하지만 충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또한 토론할 시간도 너무 부족했다. 각자 한마디씩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으니, '숙의'에 필요한 토론을 기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나마 각 원탁 토론은 중앙 무대에서 나오는 각종 안내와 입담 좋은 김제동 씨의 참가자 인터뷰 방송으로 계속 방해를 받았다. 토론을 도와야 할 촉진자(퍼실리테이터)는 발언을 기록해서 진행팀 쪽으로 자료를 전달하기에 바빴을 뿐이다. 그 때문인지 투표에 참여한 인원은 1800여 명에 그쳤다.


미세먼지 문제의 심각성과 시급히 행동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원인과 책임 그리고 해결책을 두고는 여전히 이론(異論)이 많다. 미세먼지가 중국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국내산인지도 여전히 논쟁적이며, 국내 발생하는 미세먼지라고 하더라도 핵심적인 배출원이 경유자동차, 석탄발전소 아니면 공장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이외에도 누가 사회경제적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따져 봐야 할 일이다. 이 복잡한 주제에 대해서 3000명이 두 시간 안에 토론을 하고 숙의에 따른 의사결정(투표)을 했다니 놀랍기까지 하다.


박원순 시장도 그날 하나의 원탁 토론에 직접 참여하였다. 여느 때와 같이 의견을 경청하고 나란히 토론에 참여하는 박 시장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박 시장에게 그 토론회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많은 시민들로부터 의견을 청취하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사전에 조사된 의견과 그에 따라 미리 준비된 정책에 대한 동의를 확인하는 것이었을까? 그는 토론회를 마치며 "자동차 2부제 시행은 고민을 많이 했는데 80%나 지지하니 용감하게 조치를 취할 수 있겠다"고 발언했다. 서울시가 과감히 준비해온 미세먼지 정책에 이 토론회가 강력한 정당성을 부여해 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언론들은 박원순 시장의 미세먼지 정책을 "깜짝", "전격" 발표라고 보도했다.


관점을 바꿔 보자. 뙤약볕 광화문, 미세먼지 속에서 모인 시민들에게 이 토론회는 어떤 의미였을까? 심각한 미세먼지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볼 데가 마땅치 않았던 시민들에게 이 토론회는 반가운 일이었을 것이다. 미세먼지가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에 대해서 토론하는 기회가 부족한 시민들에게 "촛불 혁명"이 일어난 광화문 광장에서의 토론회는 감격스러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동감할 수 있는 미세먼지 정책까지 과감히 선언되었으니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선언되었던 '숙의 민주주의'와 실제로 진행된 토론과 결정 실제 사이에는 심각한 괴리가 있었다. 시민들은 감동을 안고 돌아갔을 수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민주주의는 결국 '허구'라는 경험을 남기지 않았을까 두렵다. '숙의 민주주의'는 대규모 사람들이 모여서 두 시간 동안 토론하는 형식으로 국한되었다. 기초지자체와 산하 기관별로 참여자들이 조직적으로 동원되었다는 의혹과 불만, 서울시청 인근에서 토론회 전부터 이미 "센 것"이 준비되어 있다는 소문, 토론에 집중하기 보다는 보여주기 방송 쇼와 같은 진행 등. 참여한 시민들의 권능과 덕성을 높이려는 노력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저 토론회장을 박원순 시장에 감동한 시민들로 채우기를 원했던 것일까.


우리에게는 여전히 많은 토론거리들이 남아있다. 왜 사대문 안쪽으로만 노후 경유차 진입을 금지하나? 서울의 다른 지역은 괜찮은 것인가? 자동차 대수와 교통량 자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이번 대토론회에서 그나마 허용되었던 질문과 배제되었던 질문은 무엇인가? 무엇이 실현가능한 정책이며 무엇은 실현불가능한 정책인가? 두 시간의 토론으로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숙의 민주주의'라고 선언하지 말았어야 했다. 한판 보여주기 식 행사 관행을 버리고 조급증을 털어 버려야 했다. 박원순 시장에게 기대하는 것은—관료적으로 동원되고 합의가 가장되어 온—지금까지의 허구적 민주주의 관행을 뛰어 넘는 것이다.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서 목소리 한번 내고 정치인과 한 테이블에 앉음으로써 확인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가 자치를 위해서 토론하고 갈등하며 합의하고 변화하는 충분한 기회를 얻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원탁 테이블과 전자 투표 시스템 안으로 가둔 채 민주주의를 심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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