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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가 출신 39살 엘리트, 어떻게 프랑스 대통령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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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가 출신 39살 엘리트, 어떻게 프랑스 대통령 됐나

[나라 밖 이야기] 프랑스 대선, 99%의 정치를 가로막다

에마뉘엘 마크롱, 39세 젊은 나이에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지난 4월 23일에 치른 1차 투표에서 24.01% 득표로 1위를 차지, 21.3%로 2위를 차지한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과 지난 5월 7일 겨룬 결선투표에서 '66 대 34'의 더블 스코어로 압승했다. 일주일 뒤, 에마뉘엘 마크롱은 붉은 주단이 깔린 엘리제궁의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위에서 62살의 프랑수아 올랑드 전임 대통령은 신임 에마뉘엘 마크롱을 영접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쯤 뒤 프랑수아 올랑드는 후임자에게 "봉 꾸라주!(용기를!)"라는 말을 남기고 5년간 머물렀던 엘리제궁을 떠났다.

실상 에마뉘엘 마크롱의 당선은 1차 투표 결과가 나온 4월 23일, 거의 결정된 바나 다름없었다. 결선투표에서 겨룬 두 후보 다음으로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 후보가 20.01%, 급진좌파인 복종하지 않는 프랑스당의 장 뤽 멜랑숑 후보가 19.58%, 사회당'의 브누아 아몽 후보가 6.36%를 얻음으로써 이미 결선투표의 판세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1차 투표 결과가 나오자마자 프랑수아 피용과 브누아 아몽은 각기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결선투표에서 마크롱을 지지해 달라고 선언했다. 일면 1차 투표에서 마크롱이 1위를 차지했다는 점보다 극우 마린 르펜이 2위를 차지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나 같은 관찰자에겐 장 뤽 멜랑숑이 그야말로 2% 부족하여 결선에 나가지 못한 게 몹시 아쉬운 점으로 남았는데, 만약 프랑수아 피용이나 장 뤽 멜랑숑이 결선투표 상대자였다면 마크롱이 쉽게 승리했을지는 누구도 쉽게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은 프랑스 역사상으로도 1848년 제2공화국 이래 가장 젊은 국가원수가 되었다. 오늘날 전 세계의 국가원수 중 단지 4명만이 그보다 젊다고 하는데(북한의 김정은도 여기에 속할 것이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국가원수로는 가장 젊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라면 마크롱은 대통령 후보로 나설 수도 없었다. 프랑스는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선거권이나 피선거권이나 똑같이 만 18세로 정하고 있다. 선거권 만 19세. 국회의원 피선거권 만 25세, 대통령 피선거권 만 40세로 제한하고 있는 한국과 다른 점인데, 프랑스 대혁명의 해인 1789년에 선포된 '인간과 시민 권리 선언' 제1조에 담겨 있는 "사회적 차별은 공익을 전제로 할 때만 인정된다"가 적용된 예라 하겠다. 사실 한국의 만 19, 25, 40세의 선거권, 피선거권 연령 제한은 가부장제 발상에서 나온 것일 뿐 합리적 논거가 담겼다고 말할 수 없다.

▲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국가원수 중 가장 젊다. ⓒAP=연합

미국과 달리 새 정권의 인수위원회 기간이 없는 프랑스 대통령 당선자 마크롱은 박근혜 탄핵으로 인수위 기간을 갖지 못한 문재인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엘리제궁 입성과 함께 곧바로 총리와 각 부처 장관 지명 등의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외국으로는 가장 먼저 베를린으로 달려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만났는데, 그만큼 유럽연합의 쌍두마차인 독일과 프랑스 두 나라 관계의 중요성이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1차 투표 이전에는 은근하게, 1차 투표 후에는 아주 노골적으로 마크롱을 지지한 〈르몽드〉는 결국 마크롱이 당선됨으로써 오스트리아, 네덜란드에 이어 프랑스에서도 반(反) 유럽연합(EU), 반 이민, 반 이슬림의 기치를 내건 유럽 극우세력의 상승세를 막았다고 분석하였다. 그러나 유럽에서 왜 극우세력이 상승세를 타게 되었는지, 또 하층 노동계급과 서민 계층들이 왜 극우세력에게 표를 주는지에 대해서는 심층적 분석과 대안 모색을 회피하고 있다는 점을 지울 수 없다. 과연 은행가 출신인 39세의 젊은 엘리트는 어떻게 프랑스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그 배경에 어떤 정치사회적 구조와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로선 그 답을 탐색해 보는 것이 훨씬 중요할 것이다.

금융자본과 경제적 로비의 헤게모니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은 최근 〈르몽드〉와 가진 인터뷰에서 "오늘날 불행의 깊은 뿌리의 하나는 금융자본과 경제적 로비의 헤게모니가 사회뿐만 아니라 정치에까지 관철된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나의 정치적 지향이 그렇게 보이도록 했을 수 있겠지만, 〈르몽드〉 같은 신문조차도 신문사의 자본 점유에서 보거나 논조를 보거나 이 헤게모니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하다.

레지스 드브레의 말처럼, 정치의 구성 요소는 '공포'와 '희망'이다. 경제적으로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내국인들, 다수자들은 기득권의 마지막 근거인 내국인, 다수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방어하기 위해 몰두하게 되는 바, 바로 이것이 극우세력의 강력한 토양이다. 달리 말해, 희망이 보일 때 극우세력은 자연스레 약화되는 것이다. 이 희망을 갖기 위해서는 '1%에 맞서는 99%를 위한 정치'가 필수적인데, 1%를 위한 '금융자본과 경제적 로비의 헤게모니'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 이 헤게모니는 가령 미국에서는 버니 샌더스보다는 힐러리 클린턴을 선택하도록 하고, 영국 노동당의 제레미 코빈 대표를 노동당 의원들 대부분한테서는 배척하게 만들고, 프랑스에서는 장 뤽 멜랑숑을 주변화하도록 도모한다. 그리하여, 이 헤게모니는 유럽에서 '반세계화, 반유럽연합, 반이민, 반이슬람'의 기치를 내건 극우세력의 뿌리를 약화시키기보다는 일정 수준으로 유지케 함으로써 정치의 본령을 '반극우'에 가둬 다시금 1%에 맞서는 99%의 정치를 가로막는 효과를 거둔다. 하층 노동계급과 서민들에게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극우세력은 잦아들지 않고 정치의 본령은 다시금 '반극우'에 갇힌다. 에마뉘엘 마크롱은 이와 같은 헤게모니 관철과 그 메커니즘에 올라 탄 기린아, 또는 기회주의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마크롱의 반노동정책

이번 프랑스 대선은 전통적인 좌우파 정당인 사회당과 공화당 사이의 결선으로 나아가는 대신 중도를 표방한 마크롱과 극우파인 르펜이 겨루었다는 점에서도 프랑스 사회 전반의 우경화를 드러낸다. 브누아 아몽 사회당 후보는 6.36%밖에 획득하지 못했다. 흥미롭게도 마크롱과 장 뤽 멜랑숑은 2008년에는 둘 다 사회당원이었다. 지금은 둘 다 아니다. 장 뤽 멜랑숑은 57살 나이에 자신의 이념에 충실하고자 우경화하는 사회당을 떠나 공산당과도 연대하여 싸웠는데, 마크롱은 31세에 사회당을 떠나 로칠드 은행가가 되었다.

프랑수아 올랑드에 의해 경제장관에 발탁된 마크롱은 신자유주의 노선에 충실하게 노동자 해고를 용이하게 하는 노동법 개정에 참여하였다. 이번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도 그는 노동자 해고에 대한 배상액에 제한을 두거나 기업 내 협약을 용이하게 만들겠다고 밝혔다. 특히 기업 내 협약을 우선시하겠다는 것은 노동법과 노조를 무력화할 수 있어서 노동진영과의 갈등은 예정되어 있다고 하겠다. 그 갈등 양상은 이미 2014년 마크롱 경제장관 시절 실업보험체제를 바꾸려 했을 때 장 뤽 멜랑숑의 날 선 비판을 통해서도 이미 드러난 바 있다.

"이 (사회당 정권의) 못된 인간들을 보라. 원칙적으로 좌파라는 정부인데, 실업보험을 금기(타부)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가 양반아, 실업보험은 금기가 아니라 사회적 획득물이야! (중략) 우리에게 그런 말 하지 마라! 우파 인사가 그런 말을 한다면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언제나 그랬으니까. 그런데 스스로 좌파라고 하면서 우파, 아니 거의 극우파의 목소리를 내다니, 심각한 일이다."

멜랑숑의 발언 때문은 아니겠지만, 마크롱은 결국 사회당 정권의 경제장관 자리를 박차고 나온 뒤 '전진' 그룹을 결성하여 스스로 대선 후보가 되었다. 멜랑숑은 마크롱이 인민의 처지는 아랑곳없이 유럽집행위의 지침만 충실히 따른다고 비판했는데, 대선에 바로 이어 6월에 치러지는 하원 선거 결과가 프랑스의 정치 지형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와 함께 중도라기보다는 '친기업 반노동'에 가까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노동진영 사이의 대결 구도를 규정할 것이다.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의 '나라 밖 이야기'는 <작은책>과 필자의 동의를 받아 <프레시안>에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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