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행성들은 자율주행을 합니다. 운전자 없이 시속 십만 킬로미터로 달리지만 오차는 없어야 하죠. 그곳에 생명이 있으니깐요. 미래와의 조우 준비되셨나요? 현대모비스."
현대모비스 텔레비전 광고. 아빠와 딸이 운전석에 누워 수다를 떨며 여행을 갑니다. 커브 길에 갑자기 이티(ET) 가족이 나타나자, 자동차가 이티를 피해 주행합니다. 현대모비스의 자율주행시스템을 소재로 만든 광고입니다.
현대모비스 화성공장(이화공장)이 있습니다. 현대모비스는 "섀시 및 운전석 모듈을 생산하여 기아차 화성공장에 공급하고 있으며, 가장 진보된 형태인 컴플리트 섀시모듈을 생산하는 등 모듈화가 가장 많이 적용된 첨단 공장"이라고 홈페이지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5월27일 현대모비스 화성공장에 다니는 노동자 100여명이 경기도 수원에 있는 금속노조 경기지부 회의실에 모여 노조 창립총회를 가졌습니다. 기아차 화성공장 담장 바로 옆에 있는 회사로, 500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이티(ET)를 피해가는 최첨단 자동차
최첨단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용구조를 살펴봅니다.
최첨단 모듈을 만드는 노동자들은 현대모비스 직원이 아닙니다. 이 공장에는 모비스 직원이 한 명도 없습니다. 이 공장을 관리하는 회사는 이화모듈과 하나모듈이라는 하청관리회사입니다. 이화모듈은 운전석과 샤시모듈을 생산하고, 하나모듈은 엔진플랫폼모듈을 제작합니다. 이화모듈이 산하에 5개의 하청업체를 관리하고, 하나모듈이 하청업체 2개를 관리합니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대부분의 회사는 공장 안에 정규직 노동자가 있고, 하청업체 소속인 사내하청 노동자가 일합니다. 정규직과 사내하청 노동자가 뒤섞여 일하기도 하고(혼재작업), 정규직은 조립, 하청은 서브(지원) 업무를 하는 식으로 업무를 분리해 일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회사 안에서 정규직은 지휘·감독 업무만 하고,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이 생산 업무를 도맡아 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기아차 모닝공장(동희오토),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같은 회사입니다. 정규직 제로(0명) 공장, 가장 나쁜 고용구조입니다.
현대모비스 화성공장은 정규직이 하청(파견)노동자들을 지휘·감독 하는 게 아니라 이화모듈과 하나모듈이라는 하청회사가 관리합니다. 원청 직원들이 하는 인사, 관리, 노무, 보전, 품질, 자재업무를 하청관리회사에 준 것이고, 하청관리회사가 그 밑에 2차 하청업체를 둬서 생산 업무를 시킵니다.
현대모비스 공장인데, 관리 감독은 1차 하청이, 조립생산은 2차 하청이 하는 구조입니다. 이 공장에는 세 명의 사장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일을 시키는 2차 하청 사장, 생산을 관리 감독하는 모듈회사 사장, 현대모비스 사장입니다.
한 회사 안에 사장님이 3명
왜 이렇게 했을까요?
현대자동차가 공장 안에 하청업체(파견업체)를 두고 자동차 생산조립 업무를 지휘․감독하다가 대법원으로부터 도급이 아니라 파견이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정규직은 관리 업무만 하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조립 생산업무를 하는 현대위아 평택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지난해 12월21일 같은 판결을 받았습니다.
현대모비스는 원청의 지휘·감독 책임을 피하기 위해 모비스 직원을 모두 철수시키고, 감독 업무마저 하청업체에 떠넘긴 것입니다. 호텔 나이트클럽 사장이 클럽 운영의 모든 책임을 지배인에게 맡겨 직원들을 관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그렇다면 최첨단 회사에 다니는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은 어떨까요?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일에 밀려 늘 쫓깁니다."
"청소하러 여기 왔나 싶죠. 청소 좀 그만하고 쉴 땐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마려울 때는 싸고 싶어요. 눈치 안 보고 화장실 좀 갔으면 좋겠어요."
"차 닦고 개집 만들고, 나이 들었다고 모욕 주고, 괴롭히고 욕설과 막말 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반강제로 경조사비 걷고, 내 돈 내고 회식하는 회사입니다."
"기아차가 파업을 하면 연차를 깝니다."
현대모비스 화성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들이 전하는 사연들입니다. 1980년대도 아니고, 최첨단 자동차부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하청 바지사장의 승용차를 닦고, 개집을 만들고 있다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지난 5월27일 현대모비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금속노조 현대모비스화성지회)를 만들고, 5월30일 출근해서 노조 가입원서를 돌렸더니 500명 중 350명 이상이 노조에 가입했습니다. 안재연 지회장은 촛불의 힘으로 정권을 바꾼 것처럼 노조의 힘으로 공장을 바꾸겠다고 말합니다.
개집 만들고 제 돈 내고 회식하는 회사
또 다른 회사가 있습니다. 만도와 독일 헬라사가 합작해 설립한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입니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감지센서와 전자제어장치를 만듭니다. 2016년 매출액은 5702억 원으로 한라그룹의 알짜배기 회사입니다.
만도헬라의 정규직은 만도에서 온 관리자 30명뿐이고, 생산직 345명은 모두 파견사원으로 생산라인 '정규직 제로 회사'입니다. 주야 맞교대로 하루 12시간 일하고, 1년 365일 중 350일 이상을 일합니다. 일요일만이라도 쉬게 해 달라는 게 30대 젊은 노동자들의 소원일 지경입니다.
지난 2월12일 2개 사내하청업체 비정규직 350여 명 중 297명이 모여 만도헬라비정규직지회를 설립했습니다. 그러자 만도헬라는 5월30일부로 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해지했습니다. 새 도급업체는 일방적으로 인사발령을 내고 근무조건을 변경했습니다. 이에 맞서 만도헬라비정규직지회는 서울일렉트로닉스 소속 조합원 70명이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정규직 제로 회사'의 원조는 기아차 모닝과 레이를 만드는 기아차 서산공장입니다. 기아차와 동희산업이 합작해 설립한 동희오토라는 회사입니다. 정규직은 관리자 180명이고 16개 사내하청업체 130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동차를 생산합니다. 기아차 정규직도, 기아차 비정규직도, 동희오토 정규직도 아닌 노동자들이 기아자동차 모닝과 레이를 만듭니다.
<주요 비정규직 공장>
구분 | 정규직 | 기간제 | 간접고용 | 비정규직비율 | 비고 |
현대모비스 | 8,576 | 261 | 5,992 | 42.17 | 12개 공장 중 8개 비정규직 공장 |
현대위아 | 3,524 | 19 | 2,262 | 39.29 | 6개 공장 중 4개 비정규직 공장 |
동희오토 | 180 | 0 | 1,300 | 87.84 | 비정규직 공장 |
만도헬라 | 323 | 4 | 350 | 52.29 | 비정규직 공장 |
기아차 모닝공장과 함께 현대모비스는 '정규직 제로 회사'라는 악마의 일터를 확산시킨 주범입니다. 현대모비스 전국 12개 공장 중에서 8개 공장이 생산현장이 모두 비정규직으로 채워진 '정규직 0명 공장'입니다.
현대위아도 전국 6개 공장 중에서 평택, 안산, 서산, 광주공장이 정규직은 품질, 자재 , 보전업무만 하고, 자동차부품 생산은 모두 비정규직이 합니다. 기아차 모닝공장과 현대모비스가 시작한 ‘정규직 제로 회사’가 점점 확산되고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악마의 일터'에 민주노조가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014년에 현대위아 평택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위아평택비정규직지회를, 2015년 4월 현대위아 광주공장 노동자들이 광주자동차부품사비정규직지회를 설립했습니다.
불의한 권력을 끌어내린 촛불에 힘입어 올해 만도헬라와 현대모비스 화성공장에도 민주노조의 깃발이 올랐습니다. 현대모비스 비정규직 공장에 민주노조가 만들어진 것은 처음입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노동자대투쟁이 벌어진 것처럼, 2017년 촛불항쟁 이후 비정규직 노조결성이 폭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을까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첫 일정으로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민간부문에서는 나쁜 사용자들이 '정규직 제로시대'를 만들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이번에 노조가 새로 만들어진 현대모비스 화성공장을 방문해 '정규직 제로회사'에 다니는 노동자들과 대화를 나누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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