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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은 입법다워야 하고, 의원은 의원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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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은 입법다워야 하고, 의원은 의원다워야 한다

국회 개혁을 위해④ 유신과 국보위의 '입법권 왜곡', 이제 정상화돼야

정치개혁과 국회개혁은 지금만이 아니라 언제나, 항상 국민들이 가장 큰 목소리로 요구해 온 개혁 과제였다. 그런데도 왜 여태껏 전혀 실천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인가? 혹시 국회개혁을 둘러싼 그간의 논의와 문제제기가 지나치게 추상으로 흘러 구체와 핵심을 올바르게 잡아내지 못하고 본질과 지엽을 혼동하지나 않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해볼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국회개혁이라는 문제의 논의를 위해 이 시리즈는 몇 차례에 걸쳐 시론적 제안을 싣고자 한다.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국회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외부자들에게 국회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앞의 기고문에서 언급한 바처럼, 국회의원이 아닌 의회 공무원이 법률안에 대한 검토를 담당하고 상임위원회의 법안 검토보고 발언과 진행을 수행하는 국가는 우리나라 외에 존재하지 않는다. (관련기사 : 입법의 '비선 실세'를 아시나요?)

그렇다면 우리 국회 상임위원회 '입법 현장'의 실제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자.

국회 상임위원회의 '입법 현장'


다음은 우리 국회의 한 상임위원회 회의록에서 인용한 '입법 현장'의 두 장면이다.

장면 1.

소위원장 ○○○: …에 관한 법률안 1건을 상정하겠습니다. ○○○ 전문위원(여기의 전문위원이란 국회의원이 아니고 국회에 근무하는 공무원이다- 필자 주)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문위원 ○○○: …에 관한 법률안, 개정안입니다. 다음 2쪽 주요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3쪽입니다. 주요 심사 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소위원장 ○○○: 이것 다 □□부랑 협의가 끝난 거예요?

전문위원 ○○○: 예, 협의가 다 끝난 겁니다.

소위원장 ○○○: 그러면 그대로 하면 되겠네. (중략)

전문위원 ○○○: 이게 제정안이기 때문에 사실 축조심사를 해야 되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할까요?

소위원장 ○○○: 꼭 해야 돼요?

○○○ 위원: 축조심사를 한 것으로 하면 되지요.

소위원장 ○○○: 축조 심사한 거라고 하지 뭐. 그렇게 해서 의결합니다.

장면 2.

소위원장 ○○○: …이 두 건을 일괄해서 상정합니다. 전문위원 보고하시지요.

전문위원 ○○○: 주요 심사사항으로는 (…) 신설 여부를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신설할 경우에 (…)을 검토하셔야 될 것입니다. (중략) 이 개정안은 타당한 것으로 검토를 했습니다.

소위원장 ○○○: 정부안이 타당하다?

전문위원 ○○○: 예, 그렇습니다.

위의 상임위원회 모습에서 국회의원과 국회 전문위원 중 도대체 누가 주(主)이고 누가 부(副)인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우리 상임위원회 모습이 의원들의 정책 토론장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부족하며 의원 입법권이 정상적으로 수행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의원 입법권의 정상화를 위해

그렇다면 왜 이러한 '기형적인' 제도가 고쳐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

한 마디로 이미 수십 년 동안 관행화돼 있고 또 편하기 때문이다. 힘든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는 법안 검토라는 업무를 스스로 수행하지 않아도 되는 현재의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라는 '공생(共生) 시스템'이 어느덧 너무 편하게 된 셈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편한 것만 추구하게 되면 도리어 몸을 상하게 되는 법이다. 기본이 흔들리게 되면, 모든 구조가 동요하게 되고 불안정해진다. 좀 심하게 말하면 대리 시험을 치르는 격으로서, 본업인 입법업무에 대한 이러한 일종의 '직무유기'는 오늘 우리 국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연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독일 의원의 사례에서 보이는 "힘들고 고된" 입법 업무에서 벗어나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국민들이 가장 혐오하는 바의 "날마다 정치 싸움"이 가능한 국회가 있게 된 것은 아닐지.
상생(相生)해야 할 것은 국회의원과 입법관료가 결코 아니다. 진정으로 상생해야 할 것은 국회의원과 국민이고 이 나라다.

현재 우리나라와 같이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를 그 법안을 제출한 국회의원이나 해당 상임위원장이 직접 수행하지 않고 국회 공무원인 전문위원에게 그 검토보고의 '발언권'을 부여하는 제도는 다른 나라 의회에서 결코 찾아볼 수 없다. 전문위원은 국회의원처럼 대표성을 위임받은 일반 시민의 정치적 대리인이 아니라는 점에서 국회의원과 전문위원을 위원회의 등질적(等質的) 구성요소로 삼는다는 것은 전혀 타당하지 못하다.

특히 '한국에만 있는' 이 검토보고 시스템이 유신과 국보위에 의해 국회 무력화와 순치라는 목표 하에 강제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원상회복과 정상화가 시급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웅변해주고 있다.

"정책 정당, 일하는 국회"로의 길

의회의 상임위원회란 정당 간 정책경쟁의 장(場)으로서 상임위를 지원하는 입법조직 역시 정당의 개입은 자연스럽고 필연적이며, 당연히 정당이 그 중심축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리해 상임위원회를 지원하는 전문가 조직은 미국처럼 정당에 소속되는 스태프(Staff) 시스템이나 독일처럼 교섭단체 정책 연구위원 시스템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 의회에서 상임위원회 입법지원 조직으로서의 전문 인력은 정당에 소속되는 18명의 스태프를 포함해 위원회당 평균 68명이다. 다수당과 소수당이 소속 의원 수에 비례해 인원을 배정받고 소수당은 최소 1/3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위원회에 상정된 안건은 산하 소위원회에 회부되는데, 이때 위원회 스태프들은 의원들을 보좌해 자기가 소속된 정당의 입장에서 연구, 조사 및 분석 업무를 수행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구두 또는 서면으로 위원장 및 간사 그리고 자기 당 소속 의원들에게 보고한다.

한편 독일 의회의 경우, 상임위원회 입법지원 조직은 주로 교섭단체 정책위원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2004년 현재 837명이다. 이 837명 중에는 행정인력, 기술인력 등이 포함돼 있는데, 정책전문가와 비정책전문가 비율은 4 : 6 정도이다. 이들 독일 정책위원들은 각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엘리트로 평가받고 있다. 각 정당은 정당 간 협상 전에 각 상임위원회별로 특정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과 연구의 진행을 통해 전문성을 높이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위해 독일 의회는 각 정당 내 상임위원회마다 소그룹이 운영되는데, 의원들은 각 정당의 정책 연구위원들과 매주 화요일마다 소그룹 회의를 진행해 짧게는 6주에서 길게는 6개월에 걸쳐 상임위 의제를 사전에 토론하고 조율한다. 따라서 의원 개개인의 전문성도 향상되고 각 정당의 전문성도 당연히 증대되며, 이는 의회의 전문성 제고로 이어진다. 소그룹에서 채택된 사항은 대부분 그대로 해당 정당의 정책으로 채택된다.

국회의원 일이 너무 힘들어 서로 의원을 하지 않으려는 날을 보고 싶다

우리도 이처럼 각 정당에 수십 명 내지 100 명 정도의 전문 정책인력이 배치돼 의원들의 입법 업무를 지원하고 함께 수행한다면, 우리 사회가 열망하는 "정책 정당"으로의 발전도 가능하고 또 온 국민들이 학수고대하는 바의 "국회의 정책 역량"도 비약적으로 제고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국회가 행정부와 경쟁할 수 있고 또 충분히 견제할 수 있게 된다. 이 길이야말로 "정책 역량을 갖춘 정책 정당" 그리고 국민들의 신뢰를 받는 "일하는 국회"가 실현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다.

우리나라에도 국회의원의 업무가 너무 많고 힘들어 국회의원을 서로 하지 않으려는 그러한 날이 올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입법은 입법다워야 하고, 의원은 의원다워야 하며, 국회는 국회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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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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