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대통령과 취향이 겹치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기자도 그렇다.
문 대통령은 1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약간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라고 운을 떼며 "가야사 연구 복원을 국정기획위가 정리 중인 국정과제로 포함시켜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야 역사에 관심이 있는 입장에서,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 반갑다. 언론은 문 대통령의 발언을 크게 세 가지로 해석한다.
첫째, 가야 유적이 분포한 영남·호남·충청권 일대를 '가야 문화권'으로 엮어 개발하면 지역통합의 의미가 있다. 둘째,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김해, 함안, 창녕 등 가야 유적 분포지를 역사 문화 관광 도시로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했었다. 노무현 정부 4년차인 2006년 예산 부족으로 잠정 중단됐는데, 그걸 다시 이어가겠다는 뜻이다. 셋째, 문 대통령 개인이 역사에 관심이 많다.
이런 해석을 염두에 두고, 문 대통령의 발언을 곱씹으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문 대통령의 가야사 발언, '토건 사업 외피' 되면 위험
기대가 더 크니, 우려부터 짚자.
첫째, 역사 연구를 정부가 설정한 목적에 맞춰 유도하는 건 잘못이다. 주변 국가들의 역사 왜곡도 그들 나름대로는 선한 목적으로 시도한 거였다. 권력은 늘 역사 해석을 정치에 활용하려는 유혹을 느낀다. 그건 무조건 경계해야 한다. 지역통합이라는 목적이 옳다고 해서,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다. 정부의 역할은 역사 연구 지원 자체에 그치는 게 바람직하다.
둘째, 새로운 토건 사업이 벌이는 건 위험하다. 이미 온갖 지방자치단체가 역사를 테마로 삼은 개발 사업을 하고 있다. 이 가운데는 역사적 근거가 없거나 희박한 것들도 있다.
또 역사적 근거는 있지만, 토건 사업의 외피일 뿐인 경우도 많다. 대부분 실속이 없다. 일부 토건 업체가 잠깐 돈을 챙겼을 뿐이다. 지역 경제 및 생태계에는 오히려 해롭기도 하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역사 문화 관광 도시' 조성 사업을 그냥 이어받는 것이라면, 무리한 토건 경제의 부작용을 걱정하게 된다.
언제까지 '강자 숭배' 역사관에 머물러야 하나
이번엔 기대다.
경주 중심으로 진행돼 온 문화재 연구의 물길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건, 일단 반갑다는 목소리가 있다.
그리고 가야 역사 자체가 지닌 독특한 성격이 있다. 한반도 남부 곳곳에 소규모 정치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고대 국가의 문턱에서 무너졌다. 넓은 영토와 패권을 확보했던 고구려, 대동강 이남을 통일한 신라 등과는 다른 성격이다.
'힘의 논리'를 쫓는 입장에선, 그래서 가야 역사가 매력이 없다. 통일도 하지 못했고, 패권 국가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반대 입장에서 보면, 다르다. 작고 약했으므로 애정이 생긴다. '대륙을 호령한 동이족의 기상' 따위에 집착하는 역사 콘텐츠 소비 행태는 변태적이다. 왜 우리 공동체가 지녀야 할 자부심의 근거를 '과거의 영광'에서 찾는가. 그저 '강자 숭배'일 뿐이다. 가짜 역사책인 <환단고기> 추종으로 대표되는 유사역사학 유행이 위험한 이유도 이 대목이다. '작고 약한 정치 공동체, 가야'에 대한 관심은, '힘의 논리'를 설파하는 역사 콘텐츠가 지닌 부작용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의 가야 역사에 대한 관심이 반가운 이유다.
역사 왜곡의 역사
아울러 가야 역사엔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금 우리가 공감할 대목이 있다. 지금도 한반도 주변 열강의 역사 전쟁이 한창이다. 힘이 센 나라는 약한 나라의 역사를 왜곡한다.
가야는 신라 시대에 이미 '역사 왜곡'의 대상이 됐다. 신라 중대에 종교적, 정치적 목적으로 가야 역사를 윤색했다. 한편으론 불교 색채를 입혔다. 다른 편에선 미추왕 대 이후 김유신 계 후손의 몰락에 따른 반작용이 있었다. 가문의 몰락을 가야 역사를 신비롭게 과장해서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6두품으로 떨어진 김유신 가문에서 작동했다. 김유신 가문이 금관가야 왕가의 후손이다. 수로왕과 결혼한 허왕후 신화가 이렇게 첨가됐다는 주장이 있다.
일본 역시 꾸준히 역사 왜곡 시도를 했다. 8세기 초에 <일본서기>를 통해 가야 역사를 재편해버렸다. 그 영향이 오래 남아서 조선 후기 일부 실학자들도 한반도 남부가 한때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고 설명했었다. 19세기엔 '임나일본부설'이 나왔다.
강자와 약자가 각자 나름의 이유로 왜곡한 역사, 그걸 제대로 살피면 지금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있다.
세계화 노선의 가능성과 한계
가야는 철의 산지이기도 했다. 쇠를 다루는 기술이 뛰어났다. 그리고 낙랑과 왜(일본)를 잇는 중계 무역의 거점이었다. 금관가야가 있던 자리인 지금의 김해는, 철의 바다(金海)라는 뜻이다. 간척사업 때문에 내륙으로 들어왔지만, 원래는 바닷가였다. 무역과 외교는 가야 역사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다. 가야는 망하기 직전까지도 외교에 몰두했다. 지금의 함안 지역인 아라가야가 추진한 '고당회의'가 이런 사례다.
가야 역사를 살피는 일은, 제조업 국가 한국이 택한 세계화 전략이 지닌 가능성과 한계를 곱씹는 작업이다.
아울러 다양한 주변 민족과 어울렸던 가야 사람들의 삶에 대한 관심은 '다문화 사회, 한국'에도 시사점이 있다.
'국가 이전'에 대한 상상력, '국가의 역할'을 묻다
끝으로 한 가지 더. 문 대통령의 말대로 가야 역사에 대한 연구는 부족한 상태다. 그래서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대목이 많다. 그래도 대략 분명한 건, 강력한 왕이 있는 고대율령국가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왕이 초월적인 권한을 갖고 있어 대왕으로 불리기도 하고, 왕의 통치권 안으로 기존 소국의 왕은 귀족으로 편제되며 읍락의 거수 등은 중간계층으로 편입되는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 (<가야인의 삶과 문화>(권주현 지음, 혜안 펴냄), 113쪽)
따라서 가야 역사에 대한 관심은, 강력한 중앙권력이 없던 시절에 대한 상상력을 열어준다. 이는 다시 '권력이 대체 왜 생겨났나', '우리는 왜 국가를 이루고 살아가는가',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촛불집회 당시 시민들이 외쳤던 말이 "이게 나라냐"였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구호 가운데 하나가 '나라다운 나라'다. '나라다운 나라'란, 제 역할을 하는 나라일 게다. 가야 역사에 대한 관심은 '국가의 역할'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것만으로도 문 대통령의 가야 역사에 대한 관심은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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