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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어디 갈까? 뭐 하고 놀까?

[격월간 민들레] '노는아이 노는엄마' 모여라

우리도 숲으로 가자!

4년 전, 톱과 망치 같은 연장을 들고 산에서 즐겁게 뚝딱이며 노는 아이들 사진이 온라인 카페에 떡하니 올라왔다. 한 엄마가 동네 친구를 꼬셔서 다녀왔단다. 도서관에서 어린이용 책 공부를 하며 한 달에 한 번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숲에서 나무를 타며 노는 영국의 서머힐 학교와 폐자재로 놀이터를 꾸미며 연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일본의 키노쿠니 어린이 마을 영상을 보고, 그다음 날 도저히 몸이 근질거려 안 되겠더란다. 전부터 같이 책 모임을 하던 엄마들에게 계속 '숲놀이 가자', '바깥놀이 하자' 제안했지만 '학원 때문에 안 된다', '매주는 좀 부담된다'며 다들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 기운 빠지던 참이었는데 자연에서 노는 외국 아이들 모습을 보고 제대로 필(feel) 받아서(아니 열 받아서!) 숲으로 달려갔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노는아이 노는엄마(이하 노아)'라는 모임이 운명처럼 만들어졌다.

그날을 시작으로 매주 수요일, 자연과 아이들만으로도 예술이 되는 멋진 사진들이 카페에 올라왔다. 산에서 보물찾기도 하고, 나무타기, 솔방울 던지기, 과자 따 먹기도 하며 아이들과 즐거운 오후를 보냈다. 처음엔 도서관 책 모임과 민들레 읽기 모임 엄마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두 달 정도 지나서 "재밌다더라" "애들이 너무 좋아한대" 하는 입소문이 나자 새로운 멤버들이 늘기 시작했다. 친구를 따라오기도 하고, 부모교육 강의를 같이 들은 엄마에게서 불쑥 참여하고 싶다는 연락이 오기도 했다. 어느 날은 열 가족이 넘기도 하고, 새로 온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같이 놀다 헤어지기도 하던 중 급기야 모임에 과부하가 걸렸다!

많은 가족들이 뒤섞여 정신없이 보낸 다음 날, 모임지기 엄마가 내게 전화를 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정신이 하나도 없고, 아이들은 싸우고 울고 너무 제멋대로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이럴 바에야 모임을 그만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혼자만 끙끙대지 말고 함께 고민해보자고 했다. 사람이 많아지니 좋은 마음만으로는 안되고, 이제 조금이라도 규칙이 필요한 시점이 된 걸까 싶었다. 바로 그날 도서관 홈페이지에는 장문의 편지가 올라왔다.

"사람이 많아진 관계로 더 이상 새로운 가족과는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산에선 서로 밀면 안 된다거나 모래놀이 할 때는 다른 아이들 눈에 들어가지 않게 하라거나 서로 조심해야 할 건 집에서 미리 당부해주세요. 내 아이 소중하듯 모든 아이가 소중합니다. 함께 놀려고 와서 기분 상하면 서로 좋지 않으니 배려하도록 해요."

그리고 며칠 후, 댓글이 달렸다.

"그날 친구를 따라갔던 두 아이 엄마예요. 글을 읽으니, 그냥 좋은 맘에 무작정 따라간 제 실수가 있는 것 같아요. 가기 전 미리 연락을 드렸어야 했는데, 불쑥 가서 다른 분들이 당황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날 저희 큰애는 너무 행복했다며 일찍 잠이 드는데, 그 모습을 보니 저 또한 행복했답니다."

다음 모임에서 우리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니 누구에게나 열린 모임으로 하고, 모임지기에게만 역할을 맡기지 말고 다 같이 의논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자고 얘기했다. 그렇게 우리는 문제들을 꺼내고 얘기하고 소통하는 법을 배워 나가며 어려운 시기를 잘 지나왔다. 우리에게 노아 모임은 무한한 에너지를 주고 놀이의 즐거움을 맛보게 했기에 다들 그것을 지켜가고 싶었을 것이다.

▲ 대왕암 가는 길. 산, 들, 바다 천혜를 누리는 아이들. ⓒ노미정

'치맥' 모임 후 잠수를 타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곱 가족, 스물한 명의 엄마와 아이들로 이루어진 노아 모임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한 살부터 초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과 30대 중후반의 엄마들이 곳곳을 누비며 산과 바다, 들로 쉼 없이 놀러 다녔다.

수요일엔 온종일 밖에서 놀기 바쁘니 엄마들끼리 이야기도 나누고 공부도 같이할 겸 밤 모임 하나를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다. 오랜만에 엄마들끼리 치킨과 맥주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밤 모임이 너무 좋았던지, 들뜬 분위기 속에 앞으로 모임을 위해 서로 아쉬운 점이나 불편했던 점을 얘기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그게 발목을 잡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특히 다른 엄마의 육아 방식에 대해 가타부타 얘기를 꺼내면서 슬슬 감정이 상하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의 이런 점은 좀 거슬린다, 이런 점은 고치면 좋겠다, 애들이 너무 위험하게 논다, 다른 이모들에게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다 등. 그러다가 본의 아니게 아들 둘을 둔 나와 한 엄마에게 집중적으로 화살이 쏟아졌다. 술맛, 닭맛이 확 달아나며 그 자리가 가시방석 같아 빨리 나가고만 싶었다.

그 후로 나는 수요일이 되면 집에 일이 있다, 애들이 가기 싫어한다(사실 애들은 너무 가고 싶어 했다) 핑계를 대며 잠수를 탔다(잠적을 했다). 입방아에 올랐던 다른 엄마도 약속이나 한 듯 그날 이후 계속 모임에 안 나오고 있었다.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의 성향이 다를진대 그것을 이해 못 해주고, 다들 아이 키우면서 남의 아이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말하는지 다른 엄마들이 야속하기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쓴소리 듣기 싫어하는 나의 이기적인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요즘 세상에 싫으면 그만이지 싶은 생각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임인데도 나의 불편함 때문에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계속 잠수를 타는 내가 신경 쓰였는지 모임지기 엄마가 전화를 했다.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면서 얘기하니, 처음엔 이러쿵저러쿵 변명을 늘어놓다가 결국 속내를 털어놓았다. 모임지기 엄마는 다른 엄마들도 좋은 의도로 시작한 얘기지만 서로 친해지기도 전인데 너무 앞서간 것 같고, 함부로 말한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다며 그들의 마음을 전해주었다.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라, 형제끼리 싸우지 마라, 심지어 아이들은 싸우며 친해진다는 말을 하면서도 충돌과 다툼을 지켜보기 힘든 것이 어른들이다. 사실 어른들도 서로 친하게 지내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오히려 아이들보다 더 어렵다!) 노아 모임도 처음엔 그랬다. 다들 같이 놀아야 하고 모두가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모임이 이어지면서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차츰 알게 되었다.

동네 곳곳에 우리들의 이야기가 있다

노아에서는 매주 '어디 갈까? 뭐 하고 놀까?'가 큰 고민이었다. 모임의 큰 방향에 대해 얘기하면서 동시에 아이들과 놀 스케줄까지 짜야 하니, 엄마들은 점점 부담스럽고 숙제를 떠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계획된 놀이를 진행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자연에서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의 동선과 흐름을 생각하지 않고 프로그램을 소화하려고만 애를 썼다. '이건 자연놀이가 아니라 그저 자연체험인데?'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 아이들과 엄마들이 같이 즐겁게 놀기 위한 모임인데 엄마들이 놀이의 주체가 되고 아이들은 따라가기만 하는 이상한 모양새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뭐 하고 놀면 좋을지 우선 아이들 생각을 들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주입식 공교육의 문제점에 공감하며 사교육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즐겁게 놀자고 만든 모임이고 나름 부모교육도 받고 책 모임도 해본 엄마들이라 자만했던 탓일까. 정작 주인공인 아이들의 입장을 배려하지 못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큰 마을 저수지 놀이터에 가고 싶어요! 일산 바닷가에서 모래놀이 하고 싶어요! 아이스링크에서 스케이트 타고, 명덕 수변공원 산책하고, 대왕암 용놀이터에도 가고, 도서관에서 만들기나 책 읽기도 하고, 요리도 하고 싶어요! 학교 운동장에서 달리기도 하고."

이렇게 쉬운 걸, 이렇게 좋은 걸 왜 이제야 알았는지. 엄마들은 큰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아이들의 요구에 어디를 먼저 갈지 난감하기도 했다. 의견이 가장 많이 나온 곳을 시작으로, 뭐 하고 놀지는 그날그날 아이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아이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해주고 싶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라 했는데 그동안 잊고 있었음을 반성하며.

울산 대왕암 공원을 산책하는 날, 아이들은 날아다녔다. 자연의 기운이란 그런 건가 보다. 숲에서 나무 작대기를 하나씩 주워 낚싯대도 만들고, 거기에 뭔가를 매달아서 흔들고 다니고. 장난감 없이도 이렇게 잘 노는 걸 보니 엄마들은 별로 해줄 게 없다. 산책을 하다 무대가 보이니 여기엔 음악이 있어야 한다며 아이들은 '강남스타일'에 맞춰 신나게 흔들었다.

울산 슬도 가는 길은 진흙탕이라 넘어지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에겐 즐거운 놀이지만, 그럴 때는 다칠까 걱정이 앞서고 진흙을 안 만지길 바라는 엄마의 이중성이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그런데 막상 진흙탕에 넘어지고 옷 버리고, 울기도 하고, 서로 도와주기도 하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들을 만나게 된다. 그 속에 배움과 교감이 있었다.

가을 하늘이 참 예쁜 날에는 살랑살랑 태화강 억새밭에서 신나게 뛰어다니고, 경기가 없는 축구장에 모여서 줄넘기, 공놀이, 훌라후프를 하며 놀았다. 산, 들, 바다, 공원, 도서관, 놀이터, 학교. 주변에 돈 들이지 않고 이렇게 놀 공간이 많다니, 너무 좋았다. 모임을 하면서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도 점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비 오는 날에는 우리들의 아지트 '더불어숲 작은도서관'에서 책 보고, 딱지치기하고, 과자로 성을 쌓고, 떡볶이와 어묵, 수제비도 만들어 먹으며 온종일 논다. 가끔은 청소년 문화의 집에도 간다.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도 부르고, 보드게임도 하고, 디브이디도 보고, 서툴지만 즐겁게 탁구도 친다.

매주 놀지만 더 놀고 싶어 사계절 방학 때마다 2박 3일 캠핑과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경주로 기차여행도 가고, 부산으로 나들이도 갔다. 작년 겨울방학엔 4박 5일 동안 울산에서 포항까지, 올해는 포항에서 울산까지 도보여행을 다녀왔다. 작년에는 동네 놀이터에서 좀 놀아보자며 놀이터 지도 만들기와 놀이터 손수건 제작도 했다. 올해 새 학기부터는 평일에서 주말로 모임 시간을 옮겨 하루종일 놀기 시작했다. 동네뿐 아니라 울산 곳곳에 숨어 있는 보석 같은 장소를 찾아다닐 계획이다. 즐거운 아이들 모습을 담아 우리만의 책도 만들어 보고픈 야무진 꿈도 있다.

▲ 산림수목원에서 노는 아이들. ⓒ노미정

좋은 엄마가 되고픈 마음을 내려놓고

4년 동안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꽤 멋진 일들도 많았다. 그동안 찍은 사진들이 아까워 겁 없이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한마음회관 미니갤러리에서 5일간 열린 나름 멋진 이벤트였다.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하고 나니 너무 좋았다. 사진을 뒤적여보니 정신없이 노는 동안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자라 있었다. 어느덧 큰아이가 6학년, 둘째가 4학년, 그 사이 막둥이 셋째도 태어났다. 이제 좀 놀아봤다 하는 노는 엄마 셋은 그동안 틈틈이 '놀이 강사' 과정도 수료하고 청소년센터와 노인복지관 봉사활동도 하며, 이제는 놀이가 필요한 더 많은 아이들을 찾아 방과후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이 경험들이 우리 삶을 더욱 여유롭고 풍성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제일 잘한 일은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 일이라 생각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아이들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지난해 7월 울산에는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지진이 일어났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엄마들은 제일 먼저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짐을 싸서 아이들 데리고 도서관에 모였다. 야간근무와 출장으로 부재중인 남편들의 빈자리를 서로 채웠다. 힘든 일이든 기쁜 일이든 누군가 부르면 어김없이 달려가는 사이가 된 것이다. 사람은 함께 어울려 살아야 사람다워진다. 또 아이는 함께 키워야 훨씬 덜 힘들고 즐겁다. 여럿이 어울리며 '내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으니, 비로소 엄마의 자리가 보인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그저 즐거운 우리는 '노는아이 노는엄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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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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