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예종석 교수의 칼럼 'CEO에게 보내는 편지'를 신설합니다. 예종석 교수는 현재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소비자학회 회장, 한국마케팅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바 있습니다. 그는 경영 이론뿐 아니라 오랫동안 다양한 기업에의 자문활동을 통해 경영 현장을 잘 아는 학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예 교수는 이 칼럼을 통해 기업과 경영자들이 꼭 알고 있어야 하나 간과하기 쉬운 요점들을 예리하게 지적해 나갈 것입니다. 기업의 현실은 바로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예 교수의 칼럼은 최고경영자뿐만 아니라 최고경영자를 지망하는 사람들, 각계각층의 리더들에게 좋은 지침이 될 것입니다. 이 칼럼은 주 단위로 게재될 예정입니다. <편집자>
K사장님!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부터 사장님께 기업경영에 관한 이야기를 매주 편지로 띄우려고 합니다. 백면서생의 글이 사장님께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경영학을 공부하는 학도로서 그동안 경영 현장을 바라보면서 느낀 소회를 밝히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그 첫 번째 편지를 기업의 비전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할까 합니다.
아시다시피 기업에는 비전이란 게 있습니다. 한때 많은 기업들이 앞 다투어 비전 선포식 같은 걸 하던 때가 있었지요. 요즘도 가끔 신생기업들의 비전 선포를 언론에서 접할 때가 있습니다. 비전은 경영자의 경영철학이자 기업의 미래 청사진이므로 꼭 필요한 것이라 할 수 있겠죠.
희망적인 미래의 청사진은 기업의 역량을 한 군데로 집결하여 강력한 추진력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비전은 기업의 모든 구성원이 공감하는 것이라야 한다고들 하죠.
예를 들어 마쓰시타 전기의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자신의 경영 이념을 '수도 철학'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값싸고 질 좋은 가전제품을 수돗물처럼 많이 만들어 소비자에게 원활하게 공급하는 것으로 산업 보국을 하겠다는 것이지요. 마쓰시타의 이런 철학을 회사의 경영진은 물론 생산직 사원들까지 공감하고 동참할 뿐 아니라 열심히 고객에게 전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업의 비전은 내용이 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기업들의 비전은 대부분 경영자의 목표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많은 경우 비전이라는 게 200X년 까지 매출 XX조 원 달성, X대 그룹 진입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물론 기업이 성장 목표를 갖고 경영에 임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입니다만 과연 그 목표가 기업 구성원들의 심금을 울리고 동참하게 하는 역할을 하느냐가 문제이죠.
매출목표 얼마 달성, 업계 몇 위 기업 진입 등의 비전은 CEO에게는 절실한 목표일는지 몰라도 말단 영업사원에게는 피로만 가중케 하는 목표일 수도 있습니다. 말단 사원에게 비전이란 언제 승진이 되고 급여가 얼마나 오르며 보너스는 몇 퍼센트나 더 주는가 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자면 우리 기업의 비전은 상당부분 경영자의 욕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비전은 기업의 내부 고객인 직원은 물론 최종 고객인 소비자의 공감도 얻지 못할 수가 있는 것이죠. 당신네 회사의 매출 목표 달성과 업계 몇 위 진입이라는 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비전은 경영자의 의지도 담아야겠지만 회사의 구성원이나 고객의 공감대도 확보할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져야 할 것입니다. 경영자의 의지 표명도 중요하지만 그 의지의 실현을 위해 협력을 얻어야 하는 측의 이익도 생각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이러한 경영 목표를 달성하여 소비자에게는 어떤 이윤을 드리고 종업원들에게는 어떤 혜택이 돌아간다는 사실도 구체적으로 밝힌다면 공감과 참여를 쉽게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일찍이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고 그 목표를 달성한 혼다의 경영 이념은 오래전에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소비자나 종업원들에게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일면이 있습니다. 내용이 좀 길지만 참고하시라는 뜻에서 전문을 옮겨 보겠습니다.
회사 존립의 목적
우리 회사는 오토바이 및 엔진을 생산함으로써 사회에 봉사함을 목적으로 한다. 거기에는 만드는 사람의 기쁨과 파는 사람의 기쁨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회사의 제품을 사주는 고객에게 기쁨을 더 주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들어서 기뻐하고, 팔아서 기뻐하고, 사서 기뻐하는 삼점주의야말로 우리 회사 존립의 목적이며 사시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 가지 기쁨이 완전히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그야말로 생산의욕의 앙양과 기술의 향상이 보장되고 경영발전이 기대되는 것이며 거기에 생산을 통해서 봉사하려고 하는 우리 회사 존립의 목적이 존재한다.
우리 기업의 비전은 너무 양적인 것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앞으로의 비전은 질적인 측면도 좀 고려해서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매출 얼마, 업계 몇 위도 중요한 목표지만 종업원의 복지나 주주의 이익, 나아가서 소비자의 권익을 명시하는 것은 더욱 의의 있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아무튼 우리 기업의 비전도 시장이 공감하고 박수를 보낼 수 있는 내용들로 채워졌으면 하는 것이 저의 작은 바람입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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