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흘러내렸다. 거대한 물보라가 일었다. 장쾌한 소리에 놀란 물고기들은 물 위로 솟아올랐다. 사람들도 탄성을 질렀다.
호수처럼 잔잔하던 낙동강가에는 생명의 물길이 통하자 ‘쏴~ 쏴~’ 일렁이는 물결들이 연이어 밀려들었다. 수문 아래로 쏟아진 강물은 흰 포말로 부서져 멀리까지 물냄새를 실어날랐다. 비릿했지만 생명의 냄새였다.
1일 오후 2시 경남 창녕·함안보 수문이 부분 개방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4대강 보 수문 상시개방 지시에 따라 이날 6개 보 수문이 일제히 열렸고, 창녕·함안보는 그 중 한 군데이다.
생명의 강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
지난 2009년 4대강 사업이 본격 시작된 후 영남 주민의 젖줄인 낙동강은 포클레인에 난도질당하고 콘크리트와 쇳덩어리에 절단됐다.
4개월 만에 끝낸 환경영향평가는 졸속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는 이에 저항하며 초대받지 못한 정부 사업 설명회에서 꿋꿋하게 문제점을 지적했다.
흐르던 강물을 가두면서 지하수위가 상승하자 농지가 물에 잠겼다. 수박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농민들은 머리띠를 질끈 묶고 투쟁의 길로 나섰다.
낙동강 어민들은 물고기가 사라지고 있다며 수문개방 투쟁을 벌였다. 종교계는 뭇 생명들이 죽어가는 것이 안타까워 탁발순례, 미사, 수륙제 등으로 생명 사랑을 염원했다.
환경운동가 2명은 가족에게 유서까지 남기고 창녕·함안보 공사현장 타워크레인에 올라 온몸으로 4대강 사업 저지에 나서기도 했다.
국민세금은 먼저 빼먹는 게 임자라고 막말을 하던 장용식 수자원공사 경남본부장에 항의하며 30여일간 1인 시위도 벌어졌다.
낙동강환경유역청이 멸종위기종인 귀이빨대칭이 폐사 원인 규명을 위한 민관합동조사 요구를 거부하자 시민사회의 철야농성이 30여일간 벌어지기도 했다.
환경전문가들은 녹조 시뮬레이션과 보로 인한 지하수위 상승 시뮬레이션, 4대강 사업에 대한 문제점 지적을 끊임없이 해오며 국민들에게 알려내기도 했다.
하지만, 녹조를 창궐하게 한 보는 강물을 강물답게 흐르지 못하게 막아선 채 이명박 정권의 치적으로 포장됐다.
그러는 동안 강물은, 물고기는, 수많은 생명체들은, 자연생태계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고 지금도 시름하고 있다.
죽어가던 강에 새 생명의 물길이
“와! 물이 흐른다!”
2017년 6월 1일 오후 2시. 창녕·함안보 회전식 수문이 낮춰지며 강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보 상단 수위가 5m 안팎으로 유지되던 것을 4.8m로 낮추는 것이 1차 목표이다. 양수장 취수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결정된 조절수위이다.
갇혔던 물을 일시에 방류함에 따라 영향을 받을지도 모를 물생태계 안전도 고려됐다. 또 하류지역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침수 등 안전사고를 방지하려는 의도도 포함됐다.
이날 창녕·함안보 회전식 수문은 일제히 열리지 않았다. 3개 수문 중 가운데가 가장 먼저 열렸고, 나머지 수문들도 교차로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했다. 시간당 2~3㎝씩 낮춰가며 10시간 가까이 지난 후엔 목표치인 20㎝에 맞춰질 예정이다.
“완전개방과 보 철거 그날까지”
“미흡하지만 의미있는 날이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이날 창녕·함안보에서는 4대강 수문 개방 환영 행사가 열렸다. 4대강반대대책위와 낙동강네트워크, 농업인, 어업인, 기초·광역의원, 도민 등 40여명이 오후 1시부터 보 왼쪽 아래 주차장에 모여 “수문 완전 개방과 보 철거 그날까지 함께 하자”고 다짐했다.
이들은 일단 보를 부분적으로나마 개방했다는 데 의미를 뒀다. 그동안 녹조가 낄 때마다 방류와 차단을 반복해오던 것에서 상시개방이 된 것은 큰 진전이라고 받아들였다.
임희자 낙동강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수문을 개방하게 된 것은 녹조와 물생태계 파괴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갇혀 있던 낙동강 물줄기가 실질적으로 틔는 것이어서 미흡하지만 의미는 있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또 “하지만, 이 정도로는 현재 낙동강이 안고 있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며 “상시개방을 하되 수위를 더욱 낮춰가야 하며, 결국엔 완전개방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앞으로의 활동 방향에 대해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그는 “강을 보다 자유롭게, 4대강 사업 이전의 상태로 돌려놓는 과정에서 농업용수와 공업용수, 식수 문제를 비롯해 어업인 생존권까지 확보하는 낙동강을 만들어야 한다”며 “4대강에 대한 정부의 정책 방향이 그렇게 맞춰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환영행사 참가자들도 향후 정부 정책과 대책이 중요하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차윤재 낙동강네트워크 상임대표는 “수년간 유린당한 4대강에 새 숨결을 불어넣는 자리”라고 의미를 부여한 뒤 “온전히 재자연화될 때까지 함께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나대활 경북 구미YMCA 사무총장은 “낙동강 수문 개방이 점차 확대되고 완전개방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이 자리에 참석했다”며 “이제 출발이다. 미약하여 막지 못했지만, 낙동강을 원래의 생명이 넘치는 강으로 되돌리는 일은 지금부터 시작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어업인과 농업인도 목소리를 냈다. 박상수 경북 고령군 우곡면 토호2리 이장은 “지난 2011년 10월 26일 합천보가 담수를 시작하면서 6년간 수박단지를 상실했다”며 “앞으로 낙동강 복원 과정에서 농업 또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생명과 수계 중심의 농업체계를 만들기 바란다”고 바랐다.
한희섭 한국어촌사랑협회 사무국장은 “어업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4대강 사업은 재앙의 수준이었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아무런 대책조차 마련해주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4대강 모든 보가 사라지고 강물이 자유롭게 흘러가는 모습을 기어코 보기 위한 실천은 계속될 것”이라며 “지난 모든 투쟁의 과정을 든든히 지켜준 모든 분들과 언론에게도 감사하며, 앞으로도 함께 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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