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강북구 북한산 자락에 자리 잡은 근현대사기념관 개관 1년을 기념해 6월 1일 덕성여대에서 '기록으로 보는 3·1혁명' 심포지엄이 열린다. 기념관 위탁운영을 맡은 민족문제연구소와 지역에 위치한 덕성여대의 인문과학연구소가 공동주최하는 이번 심포지엄에는, 개관 1주년을 기념하는 외에, 2019년 3·1혁명 100주년을 준비하는 의미도 담겨있다.
강북구는 3·1혁명의 발원지인 봉황각과 순국선열·애국지사 묘역 그리고 국립4·19민주묘지가 자리 잡고 있는 독립정신과 민주주의의 성지로, 박원순 서울시장과 박겸수 강북구청장이 이 같은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고자 근현대사기념관 건립을 추진해 지난 해 5월 17일 문을 열었다. 근현대사기념관은 다양한 기획전시·시민강좌와 학술행사를 개최해, 짧은 기간에 작지만 알찬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확고하게 입지를 다지면서, 연인원 2만여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이번 심포지엄은 특히 기존의 연구와 달리 일제 식민통치 사법기관과 일본정부의 고위관료 등 지배계층 그리고 일제에 부역한 친일파들의 인식을 분석한다는 측면에서, 3·1혁명의 역사상을 한층 풍부하게 하는 새로운 접근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그간 알려져 있지 않았던 다수의 독립유공자와 항일공적이 새로이 발굴되었다는 사실도 특기할 만하다.
먼저 최우석 성균관대박물관 학예사는 '함흥지방법원 검사의 기소자료에 나타난 지방의 3·1항쟁 양상' 발표에서, 2010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일본에서 발굴한 함흥지방법원 이시카와 노부시게 검사의 3·1항쟁 관련 기소자료를 최초로 본격 분석했다. 이 자료는 지방의 만세시위 동향을 담고 있다는 희소성과 접근이 불가능한 북한 지역 자료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최우석은 이시카와 기소자료가 총 115개 사건과 550명에 달하는 관련자 등 방대한 정보를 담고 있으며, 사건별로 사건번호 피고 위반법률 시위내용 형량 등으로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또 함흥지방법원 검사국이 관할하던 수사범위를 확인하고 기존 자료와의 관계도 추적했다. 특히 서술 내용이 풍부한 3월 10일 성진군 만세시위와 4월 8일 명천군 만세시위를 중점적으로 분석했는데, 그간 단순한 사실관계만 알려져 있던 지역의 만세운동 양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적지 않다.
노기 카오리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일본 지배층의 3·1항쟁 인식'이란 주제의 발표에서, 일본정부와 총독부 수뇌부들이 생산한 여러 자료를 통해 3·1항쟁이 일어난 뒤 일본 지배층의 사태 인식과 대응 방향을 정밀하게 분석했다. 노기 카오리는 일본정부와 총독부 수뇌부가 3·1항쟁의 원인을 기본적으로 '오해'와 '선동'에 기인한 것으로 여겼고, 이러한 인식에 근거해 '문화정치'로 상징된 억압과 회유로 통치방침을 전환했다고 진단했다. 또 무단통치로 인한 식민정책의 실패에서 원인을 찾는 견해에 대해서는 찬반론이 충돌하였다고 보았다. 근본적인 원인을 외면한 이 같은 한계 속에, 일본 조야는 자신들의 동요를 은폐하기 위해 3·1항쟁을 왜소화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기만책으로 일관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른바 ‘문화정치’는 임기응변의 미봉책이었으며 식민정책의 근본적인 변화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박경목 서대문형무소역사관장은 '서대문형무소 수형기록카드로 본 3·1운동 수감자 현황과 특징'이란 주제의 발표에서 수형기록카드를 중심으로 3·1운동에 참여한 관련자 1,013명을 추출하여 이를 유형화했다. 이를 분석해 10대부터 60대까지 전 연령대에서 고르게 항쟁에 참여하였고, 약 70여 종에 이르는 다양한 직업군이 발견될 정도로 전 계층이 가담하였음을 밝혀냈다. 또 수감자 사이의 상호 관계를 추적하여 수감자들이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러한 관계망을 통해 운동을 확산시켜 나갔음을 입증했다. 수감자에 국한했기 때문에 분석 대상이 협소하기는 하지만 3·1운동이 전민족적 전계층적 전지역적이라는 그간의 통설을 계량적으로 재확인하였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 관장은 결론적으로 3·1운동은 단순한 '운동' 차원을 넘어 일제 식민체제를 변혁하려는 전민족의 정치적 변혁운동 즉 '혁명'의 단계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이준식 근현대사기념관 관장은 '3.1혁명과 친일파의 대응 양태'에서, 먼저 3·1항쟁이 3·1혁명으로 재규정되어야함을 역설했다. 그는 3·1항쟁이 ‘제국에서 민국으로’의 전환 즉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민주공화국 성립의 토대가 되었으며, 새로운 계층과 계급이 민족운동을 주도하는 전기가 되었고, 민족·민주혁명을 추구하는 민족운동세력과 반민족·반민주의 길을 걸은 친일세력이 분화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았다. 나아가 이 관장은, 3·1혁명이 역설적으로 친일파들에게는 강제병합 이래 억눌려온 정치적 욕구를 실현할 절호의 기회가 되었음에 주목하고 이 시기 친일파들의 행태를 추적했다. 그는 3·1혁명기 친일파들이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항일운동의 무모함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한편, 자제단 자위단 등을 결성해 조직적인 저지운동을 펼쳐나갔다고 밝혔다. 이후 친일파들은 3·1혁명 이후 일제가 추진한 친일파 육성이라는 정책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면서 참정권청원운동과 자치청원운동으로 이행하였다고 분석했다. 역설적으로 3·1혁명이 반혁명세력인 친일파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강북구는 3·1운동의 발원지인 봉황각과 순국선열들의 묘역 그리고 국립 4·19 민주묘지가 자리잡고 있는 독립정신과 민주주의의 성지다. 그 높은 뜻을 제대로 기억하고 전파하기 위해, 지난 2016년 5월 동학농민운동에서부터 4·19혁명까지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오롯이 담은 근현대사기념관이 문을 열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열리는 이번 포럼은 자유, 평등, 민주의 이념이 선열들이 피땀 흘려 체득하고 축적해 온 소중한 가치임을 감동이 있는 서사로 전달함으로써, 독립운동가들이 꿈꾼 나라', '사월혁명의 투사들이 소원했던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의 미래상임을 알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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