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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칫덩이' 경총, '사총'으로 이름을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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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칫덩이' 경총, '사총'으로 이름을 바꿔야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정식 명칭이 한국경영자총협회인 '경총'의 영어 이름은 무엇일까. 경영자라 그랬으니, 'manager'가 들어갈 것 같은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 경총의 영어명은 'Korean Employers Federation(KEF)'다. 우리말로 한국사용자(총)연맹, 즉 '사총'이다. 사용자는 법률상의 명칭으로 임금을 지급하고 다른 사람을 고용하는 사람을 말한다. 일상생활이나 학문 세계에서는 고용주라고도 불린다.

경영자와 사용자는 다르다

경영자와 사용자는 같은가? 엄밀히 말해 다르다. 왜냐하면 노동자도 경영자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일반적인 '노동자 이사(worker director)'가 대표적이다.

독일의 '감독회(supervisory board)'는 기업의 감독 기능을 맡고 있다. 특히 CEO를 포함한 이사회(board of directors) 이사들에 대한 임면권을 갖는다. 종업원 2000명 이상의 대기업에서는 감독회를 구성하는 이사진의 절반은 주주들이, 나머지 절반은 해당 기업의 종업원, 즉 노동자들이 선출한다.

노동자를 대표하는 감독이사에는 해당 기업에 속한 종업원(employee)뿐만 아니라 외부인, 즉 산업별 노동조합의 임원이 선출되는 경우도 많다. 스웨덴은 기업의 경영책임 구조가 감독회-이사회로 이원화된 독일과 달리, 이사회로 일원화되어 있다. 노동자이사는 이사회에 바로 참여하는데, 그 수는 전체 이사진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종업원이나 노동자 대표가 이사 자격으로 기업 경영에 참가하는 것을 '노동자 경영 참가(workers' participation in management)'라 한다. 이 개념을 분석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찾을 수 있다. 노동자의 지위가 경영의 영역 밖에 대립·대척하여 존재하는 게 아니라, 경영 안에 들어와 공생·공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용자와 대등하게 기업 경영의 한 주체로 활동하는 것이다.

▲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경환 경제부총리, 김영배 경총 직무대행(왼쪽에서 두 번째), 김동만 한국노총 회장 모습. ⓒ연합뉴스

노동자는 기업 아닌 사용자와 대립

이상의 논의를 요약하면, 노동자는 기업이나 경영자에 대척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사회적 관계에서 노동자에 대척하는 존재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사용자다. 이는 노사관계라는 말에서 잘 드러난다. 여기서 말하는 '사'는 회사(社)가 아니라 사용자(使)다.

노사관계에서 대척점에 서는 주체는 노동자와 기업이 아니라, 노동자와 사용자다. 회사는 노사관계를 형성하고 실행하는 마당(장, 場)으로 기능할 뿐이다. 기업이라는 경기장에서 노동자 팀과 사용자 팀이 경기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업하기 좋다'는 말과 '사용자하기 좋다'는 말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노동조합은 사용자가 기업의 발전에 기여할 때 협력할 수 있지만, 그것에 역행할 땐 협력할 수 없다.

인사경영권이 사용자의 절대적 권리라는 전근대적 논리는 노사관계가 노동자와 회사 간에 맺어진다는 물신적(物神的)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살아있는 인간 주체들끼리의 관계를 인간(사용자)이 객체(기업) 뒤에 숨어버린 물활론적(物活論的) 관계로 대체시켜 버린 것이다.

'지지고 볶음'이 노사관계의 본질

노사관계의 본질은 욕망과 이기심, 감정과 에고(ego)를 가진 인간들끼리의 각축이다. 기업이라는 공간에서 창출되는 복잡다기한 이익을 둘러싼 노동자와 사용자, 즉 인간들끼리의 '지지고 볶음'이 노사관계의 핵심인 것이다.

노사가 서로 지지고 볶는 대상에는 임금 같은 이익(interests)만이 아니라, 인사경영권 같은 권리(rights)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익의 향유는 권리의 보장에 정비례하기 때문이다.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을 때 이익을 제대로 누릴 순 없다.

노동자의 권리를 억제할수록 노동자가 누릴 수 있는 이익은 작아진다. 비례하여 사용자가 누리는 이익은 커진다. 따라서 이익 분쟁은 본질상 권리 분쟁과 동떨어질 수 없고,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국가와 자본이 합작하여 노동자 권리를 억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용자를 '사용자'로 불러야


노사관계에서 경총의 상대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국제 상급 단체에 가입해 있다. 국제노동조합총연맹(International Trade Union Confederation, ITUC)이 그것이다. 중앙 노사관계의 한 축인 경총도 국제 상급 단체에 가입해 있다. IOE가 그것으로, 영어를 풀면 'International Organisation of Employers'다.

재미난 것은 자기 이름에 붙은 'employer'는 '경영자'로 의도적 오역을 하는 경총이 IOE에 대해서는 '국제사용자기구'라고 정확하게 번역해 홍보자료에 소개하고 있는 점이다.

경총에서 오랫동안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영배 씨가 그 특유의 포퓰리즘적 '선동술'로 신정부의 일자리 정책을 비난하다 청와대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청와대 지적이 없더라도 경총은 '이명박근혜' 극우정권과 코드를 같이 하며 노동자에 적대적인 노동시장과 노사관계를 구축해온 전투적 사용자들의 '전위' 부대다.

경총은 오늘날의 '헬조선'을 만든 장본인 중 하나로 많은 잘못을 반성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 우선 자기 정체성 발견 차원에서 경총에서 '사총'으로 개명부터 하라 권하고 싶다. 영어 이름 그대로 '한국사용자총연맹', 깔끔하지 않은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시대도 아닌데, 이제 사용자(employer)를 사용자라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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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

택시노련 기획교선 간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천영세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근로기준법을 일터에 실현하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과 정치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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