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알파고가 커제 9단을 상대로 '불계승'을 거뒀다. 커제 9단이 대국 도중 항복했다는 뜻이다. 25일 중국 저장성 우전에서 열린 '바둑의 미래 서밋(Future of Go Summit)' 3번기 제2국에서 알파고는 초반부터 확실한 주도권을 잡았다. 세 차례 치러지는 대국에서, 지난 23일 1국과 25일 2국을 모두 알파고가 이겼으므로 승부는 정해진 셈이다.
"손바닥에 커제 9단을 두고 내려다보는 듯"
올해 스무 살 인 커제 9단은 '이세돌보다 더 이세돌 같다'는 평가를 듣는 바둑 신동 출신이다. 세계 랭킹 1위로 꼽힌다. 이세돌 9단처럼 개성이 강하고, 창의적인 바둑을 둔다. 이런 커제 9단이 25일 대국에선 자존심을 꺾고, 알파고의 기풍(棋風, 바둑의 개성)을 모방했다. 하지만 알파고는 초반부터 손쉽게 제압했다. 이어 알파고는 커제 9단이 지난 23일 뒀던 수를 그대로 재연하면서 커제 9단을 압박했다. 요컨대 알파고는 커제 9단이 자기 흉내를 내며 공격하자 바로 꺾어버린 뒤, 커제 9단의 흉내를 내서 커제 9단을 눌러버린 것이다. 이에 대해 오정아 3단은 "알파고가 응징을 너무 잘한다"며 "손바닥에 커제 9단을 두고 내려다보는 듯했다"고 말했다.
이세돌 9단은 "커제 9단의 방식은 인간에겐 통해도 인공지능에겐 통하지 않는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남은 3국에선 커제 9단이 자신의 바둑을 뒀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4대 1로 패했던 이세돌 9단은 이날 보여준 알파고의 기량에 대해 "패러다임을 바꾸는 새로운 수법까지는 나오진 않았지만 알파고는 정말 안정적이었다"고 분석했다.
다른 해설자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대부분의 바둑 해설자들이 알파고의 승리를 예상했으므로, 관심사는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이기느냐'였다. 알파고가 인간의 통념을 완전히 뛰어넘는 창의적인 바둑을 보여주느냐에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알파고가 바둑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수준의 파격은 아직 보여주지 않았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세계 1위와 집단지성, 어느 쪽이 강할까
바둑계의 관심은 오는 26일 대국에 쏠린다. 이날 오전에는 구리 9단과 알파고A가 이룬 팀과 롄샤오 8단과 알파고B가 짠 팀이 대국을 한다. 이른바 페어대국이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협업하는 대결인 셈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완전히 대체하기란 어려우리라는 전망이 일반적이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협업하는 형태가 흔하리라는 게다. 26일 오전 페어대국은 이 같은 협업 모델에 대해 시사점을 준다.
이날 오후에는 오후에는 스웨, 천야오예, 미위팅, 탕웨이싱, 저우루이양 5명의 9단 기사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알파고와 대국을 한다. 인간의 집단지성과 인공지능이 대결을 벌이는 시도다. 만약 이 대국에서 인간이 이긴다면, 시사점이 크다. 세계 랭킹 1위 한 명보다, 그보다 낮은 순위의 기사 여러 명이 머리를 맞대는 경우가 더 강력하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집단지성의 힘에 대한 논의를 자극할 수 있다.
"범용 인공지능 가능성 입증했다"
한편 알파고를 만든 구글 자회사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책임자(CEO)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인간 데이터에 의존하지 않고도 예전 버전의 알파고와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실력이 좋아져 범용 인공지능(AI)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범용 인공지능이란, 마치 인간처럼 새로운 분야에 적응할 수 있는 지능이다. 알파고는 바둑 이외의 영역에선 학습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런 한계를 넘어선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게 '딥마인드'의 목표다.
학습능력을 갖춘 인공지능이 윤리의식까지 배울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허사비스 CEO는 "언젠가 논의해야 할 흥미로운 사안"이라면서도 "아직은 기술적으로 초기 단계라 당장 검토하기 이르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상상이나 개념 잡기 등은 인공지능이 아직 학습하지 못하는 난제"라며 "이런 분야에 대해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딥마인드는 현재 인공지능을 의료 진단과 에너지 최적화 등의 분야에 활용하는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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