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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업적을 스스로 냉정하게 평가해보면…'

예종석의 'CEO에게 보내는 편지' <15>

K사장님!

한 해가 또 저물어 갑니다. 매년 이맘 때가 되면 한 해를 마무리 짓는 기분으로 지나가는 해를 되돌아보고 그 해의 행적을 평가해 보고는 합니다. 그러한 습관은 새해의 계획을 세우는 데도 여러 모로 도움이 되지요. 한 해를 돌이켜 보면 꼭 성취하려고 했으나 이루지 못한 일도 있겠고, 잘하려고 노력은 했으나 결과가 신통치 않았던 일도 있을 것입니다. 계획은 잘 세웠으나 열심히 노력 하지 않아 실패한 일도 있고, 돌발적인 상황에 의사결정을 잘못해서 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아쉬운 경우도 있지요. 한 해를 회고하고 반성하는 것은 자기 성찰의 기회도 되고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성찰하는 습성은 이익 극대화라는 대단히 목표 지향적인 일에 매달리고 있는 기업이나 기업인에게는 더욱 중요한 것이겠지요. 기업의 실적에 대한 평가는 한 회계년도를 마무리 짓는 재무제표에 의해 자동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만 경영자에 대한 평가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경영자의 업적에 대한 평가는 재무제표에 나타나는 단기실적도 물론 중요하지만 숫자로 나타나지 않는 여러 가지 공헌, 즉 기업의 중장기적인 실적에 반영될 노력과 성취에 대해서도 조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경영자의 실력은 이익이라는 최종 결과물에 나타나는 것이지만 장기적으로 결과가 나타나는 업적에 대해서도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단기적인 업적은 그 기업의 장기적 이익을 희생양으로 삼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입니다. 한때 유행했던 미국식 단기업적주의가 기업의 장기적 성장에 걸림돌이 된 사례는 경영 현장에서 항다반사로 관찰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일본에서 경영자에 대한 총체적 평가를 시도한 서적이 출간되었더군요. 얼마 전 동경의 한 서점에서 우연히 "경영자의 평점"이라는 재미있는 책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책은 일본의 내로라하는 경영자 45인을 다각도로 평가하고 점수를 매긴 뒤 그 순위까지 적나라하게 발표하고 있었습니다. 평가 기준은 상황판단력, 목표설정력, 결단력, 수행력, 후계자 육성력 등 다섯 개의 영역입니다. 점수는 각 영역에 20점씩 100점 만점으로 되어있더군요.

총점의 편차가 상당히 크게 벌어질 정도로 채점이 엄격하게 이루어져서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시도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다 들더군요. 필자인 아리모리 다카시(有森降)가 30년 경력의 경제저널리스트라고는 하나, 한 개인의 작업이라 평가의 객관성이나 공정성에 의구심이 들기는 했지만 대단히 흥미로운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고, 공감이 가는 부분도 적지 않았습니다.

평가결과를 부분적으로 소개하면 1위는 캐논의 미타라이 후지오(御手洗富士夫) 사장으로 총점 91점, 2위는 도요타 자동차의 죠우 후지오(張富士夫) 부회장으로 90점, 3위는 나가모리 시게노부(永守重信) 일본전산 사장으로 89점 등입니다. 불명예스러운 꼴찌인 45위는 겨우 30점을 얻은 후지츠의 아키쿠사 나오유키(秋草直之) 회장이 차지했고, 44위에는 47점의 히에다 히사시(日枝久) 후지TV 회장이 랭크되었습니다. 닛산을 도산의 수렁에서 구해냈고 지금은 위기에 처해 있는 GM과 포드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있는 카를로스 곤 사장이 78점으로 17위에, 인터넷 시대의 영웅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이 68점으로 30위에 올라있는 것을 보면 채점이 상당히 박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채점의 기준이 된 다섯 개의 영역은 경영자의 역량을 평가하는 잣대로는 크게 손색이 없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첫 번째 영역인 상황판단력은 신규 사업으로의 진출이나 기존 사업의 철수 같은 사업상의 중요한 판단능력을 말합니다. 빌 게이츠의 DOS 저작권 인수라든가 잭 웰치가 주도한 GE의 가전사업 철수 같은 의사결정이 뛰어난 상황 판단의 전형이라 할 수 있겠지요. 우리나라에서도 고 이병철 회장의 반도체 사업 진출이나 고 정주영 회장의 자동차 사업 진출 같은 걸출한 의사결정이 같은 범주에 속하는 능력일 것입니다. 죠우 후지오 토요타 부회장은 사장에 취임한 1999년에 이미 세계 자동차업계가 대대적인 합병으로 재편되고 경쟁이 심화될 것을 예견해 생산원가 삭감에 주력하는 발군의 판단력으로 이 부문에서 만점을 획득했습니다.

두 번째의 목표설정력은 그 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능력으로 경영자가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위에 랭크된 경영자들은 대부분 이 부문에서 만점인 20점을 얻고 있습니다. 우수한 경영자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종합점수 1위에 랭크된 미타라이 캐논 사장의 경영목표는 명쾌하고 간단한 "이익우선주의"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이익으로 첫째, 주주에게로의 환원 둘째, 종업원의 생활보장 셋째, 사회공헌을 하겠다는 명료한 세부목표를 세워 놓고 있습니다. 그 외에 항상 "나의 목표는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이다", "300년 후에도 살아남는 회사를 만들겠다"라고 부르짖는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사장이 이 부문에서 만점인 20점을 받은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겠지요.

세 번째 영역인 결단력은 인수합병(M&A)이나 구조조정 또는 임원인사 시에 단안을 내릴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뜻합니다. "고쳐라, 매각하라, 아니면 폐쇄하라"는 경영전략으로 1,2위를 못하는 사업은 매각하거나 철수하고 1700여 건의 인수합병을 성사시켰으며, 10만 명 이상을 해고하면서 기업 가치를 재임 20년 동안에 40배 이상으로 키워놓은 잭 웰치는 결단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에서도 기존의 사업부제 조직을 해체하고 대규모 인원삭감을 감행하면서 종신고용의 신화를 깨버린 나카무라 구니오(中村邦夫) 마쓰시다전기 사장이 결단력 부문에서 20점을 얻었더군요.

네 번째 평가영역인 수행력은 사업을 계획대로 추진하는 능력으로 경영자에게는 가장 실질적인 역량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부문에서는 20점 만점에 22점이라는 특별점수를 받은 나가모리 시게노부 일본전산 사장이 돋보입니다. 그는 '有言實行, 率先垂範'(말을 하면 행동에 옮기고, 솔선수범한다)이라는 좌우명과 함께 항상 오전 6시 50분 출근, 밤11시 이후 신깐센 막차퇴근으로 유명하며 주말이나 휴일을 가리지 않고 임원회의를 소집하는 것으로도 악명이 높은 경영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맹렬경영의 성과가 탁월해 그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반대로 한국계인 손정의 사장은 목표설정이나 결단력 부문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4기 연속적자로 인해 수행력 부문의 점수가 낮아 종합순위에서 뒤로 처지고 있습니다.

마지막 영역은 후계자 육성력 입니다. 일본 경영자들은 이 부문에서는 전반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후계자 육성이 쉽지 않음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대목이지요. 이 부문에서 최고점인 17점을 받은 신일본제철의 미무라 아키오(三村明夫) 사장은 차기 사장으로 여섯 명의 부사장 중 가장 서열이 낮은 사람을 발탁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은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평가를 해 본다면 어떤 반응이 있을까요? 일본보다는 훨씬 다양한 반응이 예상됩니다. 우리나라의 독선적인 경영자 중에는 평가자체를 인정 하지 않으려는 분들도 있겠지요. 그러나 경영자가 자신의 업적을 냉정하게 평가해 보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경영능력 향상의 출발점이 될 테니까요. 평가는 자신이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할 수도 있습니다. 사장님께서도 올해가 다 가기 전에 틈을 내서 올해의 총체적 업적을 스스로 평가해 보시는 기회를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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