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자 아침신문은 일제히 새 정부의 미세먼지 대책을 1면에 대서특필했다. 어느 조간신문의 1면 제목 "노후 火電 셧다운. 미세먼지 잡는다-문재인 대통령, 환경대책 첫 지시 석탄 발전 8곳 6월 한 달 문 닫아…"30년 넘은 10기 임기 내 폐쇄할 것""에서 보듯이 대다수 언론은 기대 섞인 내용과 함께 호의적인 반응을 드러냈다. 사설이나 해설 기사 등에서는 물론 보완한 점이나 조언도 잊지 않고 주문했다.
언론뿐만 아니라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들도 대체적으로 후한 점수를 주었다. 한 단체는 공공기관 차량 2부제 실시보다 더 효과가 있는 대책이라고까지 평가했다. 환경부와 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이 올해 초 합의한 고농도 미세먼지 시 공공차량 2부제 조치에 비해 5~10배 대기오염 저감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를 두고 한 환경전문지는 "화력발전소 8기 가동중단, 대기오염 저감 효과 크다"라고 보도했다. 물론 멀리 지방에 있는 노후 화력발전소 가동중단으로 인한 미세먼지 감소가 수도권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지에 대해서는 보다 더 엄밀한 분석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올 들어 미세먼지에 불쾌해 하고 불안한 날들을 자주 보낸 시민들로서는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환경보건 전문가로서 이러한 보도를 접하고 마냥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다. 낡은 화력발전소를 일정 기간 잠시 가동 중단하는 것이 곧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 대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노후 화력발전소 8기는 전체 화력발전소 가운데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데다 화력발전소 전체를 가동중단해도 지금의 심각한 미세먼지 오염을 해결하는 데는 많이 모자란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낡은 화력발전소 가동중단, 언 발에 오줌 누기
전문가들과 정부는 우리나라 화력발전소가 발생시키는 미세먼지가 국내 전체 미세먼지의 14%가량을 차지한다고 보고 있다. 노후 발전소 8기를 가동 중단하면 지금보다 미세먼지가 1∼2%는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분석을 냉철하게 받아들인다면 문 대통령의 조치는 미세먼지를 해결하는 데는 '언 발에 오줌 누기' 또는 '새 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일부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미세먼지 재난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은 환경 적폐 때문이다. 어느 한 순간 또는 최근 몇 년 사이 갑자기 미세먼지 오염이 심각해진 것은 아니다. 미세먼지가 꾸준히 나빠지고 있는데도 이를 외면한 정부 탓이 크다. 경제·산업 발전 논리에 밀려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한 환경부의 무능도 큰 몫을 했다. 환경보다는 개발이 우선인 사회, 그것이 바로 환경 적폐이다.
이제 와서 환경부 탓만 하고 있을 만큼 미세먼지 문제는 한가하지 않다. 적폐는 한마디로 오랫동안 쌓여 온 폐단을 말한다. 오랫동안 쌓여 왔으니 이를 해결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환경은 한번 파괴되면 영원히 원상태로 되돌리기 어렵거나 되돌릴 수 있다 해도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미세먼지 문제는 이 가운데 후자에 속한다.
환경보다는 개발이 우선인 환경 적폐 청산해야 미세먼지 해결
오늘의 미세먼지 문제는 환경 적폐 때문에 생긴 것이기에 환경 적폐를 청산해야 해결할 수 있다. 미세먼지를 단칼에 해결할 수 있는 솔로몬은 대한민국에 없다. 문 대통령은 임기 내 미세먼지를 30% 감축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이 공약이 5년 뒤 이루어진다면 국내 미세먼지 수준은 지금보다 15% 줄어들게 된다. 국내 미세먼지 오염에 기여하는 중국 발 미세먼지가 50%를 차지한다는 분석이 맞을 것이라고 전제하면 말이다.
하지만 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조차 결코 쉽지 않다. 미세먼지 문제 해결로 가는 길목 곳곳에 지뢰가 있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이제 시민들에게도 상식처럼 됐다.
경유차 축소 폐지, 도심 차량 운행 제한, 자동차 2부제 또는 5부제 실시, 질소산화물이나 황산화물 등을 다량 배출하는 공장 규제와 관리,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을 방출하는 주유소 관리, 각종 생선·고기구이 음식점 관리, LNG 발전 확대 등 에너지 전환, 신재생에너지 기술 개발과 확대, 친환경자동차 개발·보급 등. 물론 이와 함께 외교적 노력으로 중국 발 미세먼지 유입도 줄여야 한다. 아마 이것이 가장 어렵고 당장은 별로 소득이 없을 것이다.
중앙정부와 자치단체 손잡아야 해결 가능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너무나 멀고 험하다. 이 점을 정치권과 언론, 전문가, 시민, 환경시민단체, 기업들이 함께 깊이 깨달아야 한다. 때론 고통을 감내해야 하고 인내해야 한다. 전기료와 같은 비용 부담의 짐을 져야 한다. 미세먼지 없는 파란 하늘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기업들은 미세먼지 저감 장치와 시설에 돈을 들여야 한다. 경유 가격을 올려 경유차를 사서 몰려는 사람을 줄여야 한다. 자동차 부제 실시와 도심 진입 억제 조치에 따른 불편을 시민들은 감수해야 한다.
미세먼지 저감 대책에 대해 가장 먼저 반발할 가능성이 높은 곳은 기업들이다. 여윳돈이 많은 대기업들이 앞장서 미세먼지 저감 시설을 자신들의 공장에 갖추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중소기업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시설비 등을 일부 지원해 미세먼지 저감 대책을 잘 따르도록 해야 한다.
미세먼지 없는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먼 산이 잘 보이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대통령뿐만 아니라 장관, 지자체단체장들도 한 마음, 한 뜻으로 나서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박원순 서울시장이 기획해 오는 27일 광화문 광장에서 서울시민 3000명이 모여 열기로 한 미세먼지 시민 대토론회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이 행사에 대해 일각에서는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집단지성을 모으기 위한 기획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보다는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시민들이 깨닫게 해 앞으로 관련 정책과 행정을 서울시와 같은 지자체가 펼 때 적극 동참해달라고 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싶다.
대통령의 지시와 서울시장의 대토론 기획은 상징적 몸부림
문 대통령의 노후 화력발전소 일시 가동 중단 조처나 박 시장의 광화문 대토론회 모두 눈에 확 띄는 실질적인 미세먼지 감소나 집단지성 모으기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보다는 미세먼지가 지금 대한민국의 화두임을 국민 모두에게 각인하는 신호탄이자 일종의 상징적 몸부림이라고 볼 수 있다.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는 이미 모범답안이 나와 있다.
전국 모든 학교에 미세먼지 측정기 설치하는 것과 국가 대기 측정기 확충 등은 미세먼지 감축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정책들이다. 국민의 알권리를 더 강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미세먼지 측정기가 미세먼지 감소를 가져오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린이와 저소득층,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마스크 보급 등도 미세먼지 감축과는 관련이 없는 임시방편들이다. 물론 이런 알권리 강화와 미세먼지 노출 줄이기, 그리고 소통 노력 등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우리 속담에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미세먼지 감소 정책과 관련해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문 대통령이 지시한 노후 화력발전소 가동중단이 바로 첫술이다. 다시 말해 미세먼지의 획기적 감소라는 우리 몸과 마음의 배부름을 결코 가져오지 않는다.
그래도 시민들은 대통령의 조처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것 같다. 이명박근혜 정부는 이런 조처를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민의 고통보다는 기업의 고통을 먼저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미세먼지 대란을 불러왔다. 이제는 기업의 고통보다는 시민의 고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어떻게 하는 것이 국민을 위하는 정치인지 맛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미세먼지 조처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미세먼지 문제는 생명과 안전의 문제이자 인권이다
새 정부는 이제 맛보기에 그치지 않고 진짜 맛깔난 미세먼지 저감 한 상을 국민에게 차려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세먼지 감축을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로드맵)을 잘 마련해 제시해야 한다. 연도별 감축 목표와 그 목표를 어디서 어떻게 얼마만한 비용을 들여 달성할지를 소상하게 내놓아야 한다. 기업과 국민이 나눠 짊어져야 할 고통이 어떤 것이며 비용은 얼마인지를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대충 말하거나 숨기는 것이 있다면 상다리는 부러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세먼지 公約(공약)은 空約(공약)이 되어버리고 만다.
미세먼지 문제는 생활의 불편이나 미관의 문제가 아니다. 미세먼지 문제는 생명과 안전의 문제이다. 곧 인권이다. 이는 한마디로 다른 문제에 앞서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임을 뜻한다. 대통령 선거 때 문재인 1번가 공약 상품 가운데 유권자한테서 가장 인기를 끈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세먼지 해결에는 소통 또한 매우 중요하다. 미세먼지 오염 실태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야 한다. 초미세먼지를 초미세먼지로 부르지 못하고 미세먼지로 불렀던 과거 정부의 적폐와 부도덕을 청산해야 한다. 노후 화력발전소 가동중단이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일깨우고 새 정부의 해결 의지를 명확하게 드러낸 회심의 한방이라면 미세먼지가 어디서 어떤 것이 얼마큼 나오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미세먼지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하려는 기초이다. 기초가 튼튼해야 오래 가는 법이다. 정확한 실태 파악을 해야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10년 정책, 20년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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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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