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사람들
날이 풀렸다는 예보에도 겹겹으로 외출하는 습관
겨울이 끝났으나 다음 계절이 없었다
봄은 장롱 안에서 소진돼 가라고 그냥 두었다
보고 싶다는 말
아름답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면
눈물이 나,
나는 기도했지
당신이 잃었으면 (눈을)
당신이 알았으면 (피를)
당신이 앓았으면 (비로소 사월을)
한때는 세상의 모든 병원을 무너뜨릴 꽃이,
꽃이 피고 있다고 믿었지
지금 이곳은 면도날로 저민 꽃잎 같은
모욕만이 무성하나니
울기 싫은데 매일 울기만 하는 사람처럼
죽기 싫은데 완전히 살아 있지는 못하는 환자처럼
고백에 서툴고
생활에 서툴고
셈에 서툰 사람으로 늙어가는 일
상복 입은 목련 나무 아래서
거무죽죽한 부표(浮標)를 줍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엄마 엄마 엄마…
빈 소라 껍데기 같은 허공에서 들려오는 먼먼 목소리
고양이처럼 잔뜩 몸을 웅크린 이가
비로소 파종하는 한 떨기
봄
시작 노트
꿈을 꿉니다. 키 큰 나무들이 자그마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숲속입니다. 젖이 흐르듯, 뿌연 안개로 뒤덮인 숲에서 누군가 나를 부릅니다.
"아가, 아가, 아가……."
가위 눌린 듯 굳은 몸으로, 차마 터져 나오지 못하는 목소리로 나는 '엄마, 엄마, 엄마!' 속으로만 외치다 잠에서 깨어납니다.
나에게는 꿈일 뿐이지만 아이를 잃은 어미들은 얼마나 많은 나날, 악몽에 시달리며 피를 말렸을까요. 현실인지 악몽인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서, 얼마나 몸부림을 치며, 얼마나 필사적인 저항을 하며 우린 여기까지 왔던가요.
엄혹한 겨울을 보내고 끝내 '봄'을 파종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진실이 우리 곁에 오기까지는 아직 더 많은 투쟁과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진실은 언제나 시간이라는 발에 의지하여 절룩거리며 느릿느릿 걸어가는 것'이라고 철학자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말합니다. 그리하여 2017년 봄은, 무겁디무거운 진실을 인양하기 위한 사투(死鬪)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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