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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최장집 "남북문제 풀려면 보수를 설득하라"

[프레시안-정치발전소 공동기획] ③ 때늦은 데탕트 (2)

정치발전소,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프레시안의 공동주관으로 신정부 출범을 맞아 "새 정부, '무엇을', '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기획시리즈를 시작한다. 이 기획은 정권인수, 신정부 출범의 조건, 외교안보, 행정, 협치, 복지, 노동, 개헌문제 및 선거제도 등 신정부가 직면해야 될 다양한 과제와 조건에 대해 분야별로 총 10회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편집자

기획 전편 보기

이번 기획의 3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발전소 이사장)의 글 <때늦은 데탕트 :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외교정책의 지평을 더 늦기 전에 열어야 하는 이유>(원제)를 2회로 나누어 게재합니다. 최 교수는 이 글에서 북한을 현실의 눈으로 직시할 것을 조언하며 문재인 대통령과 새 정부가 외교 정책의 전환을 위해 반드시 견지해야 할 관점을 제시합니다.

▲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프레시안(최형락)

IV.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사이에서 가능의 공간을 찾아 넓혀야 한다

1. 독자적인 외교 주체가 되어야 하는 이유

전후 냉전시기에서나 현재의 탈냉전 이후 시기에서나 동북아시아 국제정치 질서에 있어 한국은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고 이 틀 내에서 일정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독립적인 한 플레이어는 아니다. 분단국가가 수립된 이후 그런 적도 없다. 한국전쟁 종결을 위해 휴전협정을 체결하는데 있어서도, 법적 측면에서 전쟁당사자는 유엔군이었다. 그 결과 한국은 북한과는 달리 휴전협정 체결에서도 조인 당사국이 아니다.

한반도에서 남북 분단이 사실상 확정되어 두 개의 별개의 주권국가가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들 각각은 실체적으로 뿐 아니라, 법적으로도 주권국가이고, 또 주권국가이기 때문에 독립적인 플레이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예컨대 동서독 분단은 미국과 소련, 영국, 프랑스, 승전 4개국이 포츠담회담에서 독일의 영토를 분할하고 오데르-나이제선을 폴란드와 접경하는 동쪽 독일의 국경선으로 정했을 때 그 결정이 완전히 유효하기 위해서는 그 뒤 동서독으로 분단된 독일이 각각 그 선을 국경선으로 승인하는 조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동서독기본조약은 1972년 브란트정부 하의 서독 의회 (Bundestag)에서 체결된 것이다.

같은 논리로 만약 한국이 국제법적으로 전쟁을 종결하는 평화조약 같은 것을 체결한다면 그때 한국은 그 체결의 당사자가 돼 마땅하다. 그런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법적, 절차적인 문제이기도하다. 한 나라가 주권국가라고 한다면, 실제로, 또 실체적으로 그 국가는 자신의 안보와 관련된 국제정치적 결정을 할 때 또는 그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서 독자적인 플레이어로서 일정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현재의 북핵 위기에 대응하는 문제도 그렇고, 앞으로 남북한이 그 어떤 형태의 평화적인 관계를 발전시키는 노력을 기울인다고 가정한다면, 이들이 각각 독립적인 플레이어가 되지 않고서는 냉전이 만들어낸 체제를 벗어나 냉전 후기의 어떤 새로운 체제 하에서도 우리의 안보를 지키는 데서도 그렇고, 평화를 지향하는 어떤 것을 시도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미국의 트럼프 신정부가 등장과 함께 “미국 우선주의를 통한 방어적 국민주의 (nationalism)”를 내세우는 동안, 국제적 자유주의가 전제했던 규범들을 존중하지 않는 정책을 들고 나오면서 동맹국들을 당황하게 하는 등 커다란 혼란을 불러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 문제는 더욱 중요하다.

최근 “국제적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미국 프린스톤 대학의 국제정치학 교수 존 아이켄베리는 초기 트럼피즘을 “전후 미국의 지구촌적 프로젝트의 핵심적인 신뢰들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현재 트럼프 정부는 우리나라를 포함하는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로 하여금 군사방위에 대한 부담을 지불해야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사드 배치에 대한 비용이 문제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외교안보 전략에 관한 한 완벽하게 미국에 의존하고 있었던 한국으로서 충격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크다.

오늘의 상황은 한국이 스스로 외교 안보의 정책을 강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북한과의 평화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일대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전환점에서 우리는 냉전 이후 동아시아 국제정치 변화를 이해하고, 지난날의 문제를 재점검한 위에 한반도의 평화질서의 비전을 탐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미중 정상회담이 열린 플로리다 주 마라리고 리조트에서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2. 독수리와 용 사이에서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햇볕정책은 2000년대 초 미국 부시 정부의 출범과 네오콘이 주도한 대외정책으로 인해 사실상 조기에 중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독자적인 플레이어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햇볕정책은 김대중 대통령의 비전과 그것을 실행할 대북정책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한반도를 포함하는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체에 대한 정책 틀 안에서 그리고 그것과 궤를 같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분명한 범위 내지 한계를 가졌다.

햇볕정책은 클린턴 정부 시기인 1990년대 말 ‘페리프로세스’의 중심 내용을 구성하는 것으로, 그 틀 안에서 구체화된 것이다. 그 결과 분단 이후 처음으로 2000년 6월 한국 대통령으로서 북한을 공식 방문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미국의 정책이 바뀔 때, 한국의 대북정책은 좌초될 수밖에 없었던 난관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이 아무리 우리의 맹방이고, 미군과 핵우산을 통해 북한의 위협을 방어해준다 하더라도 미국이 우리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줄 수는 없다. 한국의 대외정책과 목표는 미국의 범위 안에서 움직인다 하더라도 미국의 이해관계와 완전하게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햇볕정책은 그러한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동북아 국제정치 질서에서 한국이 독자적인 플레이어로서 행위를 하려한다면, 더욱이 우리가 남북한 간 군사적 적대관계와 북한의 핵무장화를 극복하면서 어떤 새로운 질서, 즉 한반도에서 어떤 형태의 평화질서를 만들어나가기를 희구한다면, 먼저 냉전 이후 현재의 동북아 국제정치 질서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서는 이를 위해 우리의 관심을 위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두 문헌을 살펴보려한다.

하나는 지난해 출간된 아이켄베리의 논문, “독수리와 용 사이에서_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 그리고 중간국가의 전략”이다. (G. John Ikenberry, “Between the Eagle and the Dragon: America, China, and Middle State Strategies in East Asia”, Political Science Quarterly. Vol.131, No.1, 2016). 다른 하나는 최근 출간된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지 국제정치담당 부장이며 칼럼니스트인 기디온 라크만의 저서 “아시아화 - 아시아의 흥기와 미국의 쇠락, 오바마로부터 트럼프와 그 넘어”(Easternization_ Asia’s Rise and America’s Decline from Obama to Trump and Beyond (Other Press LLC, New York, 2016))이다.

먼저 아이켄베리의 “독수리와 용 사이에서”를 본다. 그의 견해를 따르면, 동아시아 지역질서는 냉전 시기를 지배했던 미국 주도의 헤게모니 질서로부터 보다 더 복합적인 질서로 이해될 수 있는 “이중 위계질서”(the dual hierarchy)로 이행 중에 있다. 새로운 동아시아 국제정치 질서는 미국 헤게모니에서 중국 헤게모니로 단순하게 전환하는 것은 아니다. 이 새로운 질서에서는 어떤 패권적 국가도 이 지역을 독점적으로 지배할 수가 없다. 이 지역에서 중국이 지배적인 군사강국이 되기 위해 힘으로 밀어붙이려한다면 약한 중간국가들은 미국을 지역으로 더 끌어들이려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지역은 헤게모니와 세력 균형의 특징을 동시에 갖게 된다. 미국과 중국은 각기 이 지역국가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경쟁하게 된다. 모든 국가들이 한편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다른 한편으로 이를 방어하는 혼합된 전략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지역이 전면적인 세력균형 경쟁으로 치닫게 될 수 없는 세 가지 요소를 지적한다.

첫째, 이 지역의 중간국가들은 미국과 중국 둘 다에 연대하게 된다. 그들은 안보를 위해서는 미국에 의존하고, 중국에 대해 일반적으로 견제력을 가지려하지만 무역과 투자를 위해서는 점점 더 중국과 연대하게 된다. 그들은 둘 다의 관계로부터 이득을 얻는다. 이 점은 미국에 대해 상당한 제약적 요소가 된다.

이러한 특성과 관련하여 한국 땅에 사드 배치에 관한 정부결정(결정의 완전한 절차는 아직 미결상태이고, 문재인 신정부는 이 문제를 다시 협의할 예정이다) 이전 상황에서 말한다면,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위치하면서 안보는 미국에, 경제교역과 문화상품교류는 중국과의 관계가 더 가까웠던 한국의 위상과 같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합의로 안보를 미국에 배타적으로 의존하는 대가로 중국과의 경제와 문화교류는 거의 단절되다시피 됐다.

둘째, 중국의 전략적 딜레마다. 만약 이 지역에서의 중국의 외교정책이 너무 공격적이고, 호전적이라면 반작용을 불러올 것이다. 이 현상은 새로 부상하는 강대국이 갖는 일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 중국은 경제성장과 군사적 현대화를 통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중국의 전략적 딜레마는 이러한 상황이 이 지역국가들을 점점 예민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남지나해에서 중국과 베트남/필리핀 간의 분쟁, 센카쿠/댜오위 열도(일본에서는 센카쿠(尖閣)로, 중국에서는 댜오위(釣魚)로 각각 다르게 부름)를 둘러싼 일본과의 영토분쟁,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는 정책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위기는 결과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발생하는 국가들과 미국 간의 동맹을 강화하거나 재확인하는 결과를 가져 온다. 한국은 북한과의 군사전략적 적대관계로 인해 냉전시기 미국에 대해 일방적 의존관계에 있었고, 현재 북핵 위기가 현실화되면서 그 의존관계는 더 강화되기에 이르렀다.

셋째, 미국과 중국은 넓은 정책과 문제 영역들에 있어 상호의존적이고, 상호 취약하다. 국제금융, 세계무역, 지구온난화, 에너지 안보, 핵 테러 등. 미국과 중국은 단순한 지역 내 경쟁 국가들이 아니다. 그들은 공히 지구적 차원에서의 강대국으로 넓은 영역에서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큰 정책 이슈들에 대해 공동 협력자이다. 경제와 안보의 상호의존적 조건하에서 두 나라는 그들 사이에 서로 중첩되는 전략적 환경을 안정화하고, 운영하는데 점점 더 큰 인센티브를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아이켄베리가 요약하는 동아시아의 국제정치 질서는, 분명 냉전시기 세계적 수준에서 실현된 양극체제(bipolar) 내지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unipolar)에서 실현된 경직적이고, 패권적인 위계질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국전쟁과 남북분단 그리고 북한의 극한적인 생존투쟁은 이러한 냉전적 구조의 산물이다. 그가 ‘이중의 위계질서’라고 특징짓는 동아시아의 국제정치 질서는 이들 지역에 존재하는 중간적 국가들이 독자적으로 행위 할 수 있는 유동적이면서도 넓은 가능의 공간을 열어놓는다. 그것은 극한대립으로 분쟁의 원천이 되고 있는 북한을 평화의 질서로 끌어들일 수 있는 큰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만약 한국이 남북한의 상호공존을 통해 평화의 질서를 향해 진력한다고 할 때 큰 가능의 공간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한국이 할 수 있는 한 역사적 선택은 이런 것일 수 있다. 핵무장화의 중단과 북한의 체제존립을 인정하는 것을 교환하는 것이다. 북한은 체제존립의 우려에서 벗어나는 정도에 따라 체제를 외부에 개방할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여기에서 경제적 개방, 경제교류에 대한 범위가 정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에서 북한의 존재, 북한체제를 인정하는 문제는 통일에 이르는 동서독관계를 비교해볼 때, 동서독 통일과정에서 서독이 오데르-나이제선 동쪽의 영토를 포기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일지 모른다.

한국의 보수파들에게는 특히 그러하다. 그들은 북한의 존재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평화공존의 전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 없이는 한반도에서 평화공존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 또한 이 교환 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서서히 터득할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 미국이 결단코 사드 배치를 강하게 요구한다면, 그것을 수용하되 한국은 미국에게 북한의 존재를 교환으로 푸시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핵무장화가 체제의 인정을 위한 필사적인 조건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면, 더 더욱이 중국이 여기에 반대해야할 이유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핵무장화의 동결, 그리고 나아가 한반도의 비핵화를 향한 핵의 폐기와 체제존립의 인정을 교환하는 문제는 동북아지역의 모든 이해당사자들을 위해 플러스가 된다고 믿는다. 나의 관점에서는 이 과정에서 한일관계는 극히 중요하다. 따지고 보면 이 지역에서 한국과 일본은, 우리의 민족감정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위안부-정신대 문제를 제외한다면 안보이해가 불러오는 충돌이 가장 적은 나라일 수 있다. 북한의 핵무장화에 가장 위협을 받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이다.

그리고 한반도, 센카쿠/댜오위 열도, 남지나해를 포함하는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군사전략적 팽창에 대응코자하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는 미국-일본 동맹관계에서 플레이어로서 한국의 역할은 결코 적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미국에 의존해야하는 한국으로서는 일본은 핵심적인 우군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3.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독점적 헤게모니는 실현될 수 없다

라크만의 ‘아시아화’는 냉전 해체 이후 세계질서를 지배해왔던 미국의 헤게모니적 권력이 최근에 이르러 뚜렷하게 쇠락하고 있는 동안 중국이 빠른 속도로 그에 균형을 이루고, 나아가서는 이를 대체하는 국제정치적 변화를 중심 주제로 다룬다. 세계사적 수준에서 볼 때 그것은 서구가 선도했던 근대화와 제국주의를 통한 서구에 의한 세계지배가 끝나고, 중국과 그 뒤를 이어 인도가 중심이 되는 아시아로 헤게모니가 이동하는 세계사적 맥락을 통해 설명된다.

라크만은 부와 권력을 기반으로 한 세계전역의 지배적 힘의 등장과 쇠락, 그 다이내믹스를 포괄해 다루고 있지만, 역시 동아시아에서 쇠락해가는 미국과 새로운 강대국으로 등장하고 있는 중국과의 힘들이 부딪치는 지점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이켄베리는 “국제적 자유주의”의 관점을 대표하는 이론가답게, ‘이중의 위계질서’로 특징짓는 동아시아 국제정치 질서가 상당한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 그와 함께 이 질서의 공동 운영자인 미국과 중국 간의 역할분업이 순기능적으로 잘 이루어질 수 있다는 낙관적 비전을 보여준다. 라크만은 다르다.

라크만이 묘사하는 동아시아 질서는, 안정적이고 쉽게 평화가 구현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미국, 중국 간의 무력충돌의 위험성이 분명히 도사리고 있다. 그는 그 징후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진핑이 외국 청중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말한 “투키디데스 함정”을 제시한다. 그것은 쿠바 미사일 위기에 관한 저서로 유명한 하바드대 정치학자 그라함 앨리슨이, 스파르타와 아테네 간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부터 끌어낸 말이다. 이 말은 새롭게 출현하는 힘과 기존의 힘 간의 파괴적 긴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시진핑은 그것을 인용하면서 의도적으로 중국과 미국 간의 충돌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다. 라크만은 한반도에서, 동지나해의 센카쿠/댜오위열도, 남지나해에서 또는 대만에서 미국이 공공연하게 군사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때, 중국이 그에 대처할 것이라는 결의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으로 본다.

우리는 지금 트럼프 정부의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를 둘러싸고, 무역보복을 포함하는 외교적 압력을 통해 중국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를 직접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북한 문제와 관련하여 그동안 미국은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정책으로 일관해왔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에 대해 자신들이 영향력을 갖는다는 점을 부정해왔다. 그러나 진실로 그들은 북한이 위기를 불러올까봐 제일 걱정한다. 항상 문젯거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맹국가로 남아있어야 하는 것이 또한 북한인 것이다.

북한 문제에 대한 라크만의 관점은, 나의 관점과도 다를 것이 없다. 앞에서 언급했던 여러 다른 외국인 옵서버들의 관점과도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의 책에서 말하는 중요한 대목은, 세계와 국제관계를 경제적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면서 외교안보문제를 경제이익과 결부시키는 트럼프 외교의 기조는 이미 쇠락하고 있는 미국의 헤게모니적 힘을 더 확실하게 약화시킬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동안 미국 헤게모니와 서구중심 세계의 지배질서는, 무엇보다 미국과 서유럽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제일주의를 앞세우는 트럼프식 외교는 유럽을 적대시함으로써 서구동맹을 해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한반도에서 무력 충돌을 제어하고 평화와 공존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 한국의 외교정책이 발휘할 수 있는 가능의 공간은 전보다 더 넓어져 있고, 어떻게 해서든 한국은 독자적인 외교의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전쟁을 막고 평화를 얻을 수 있다.

V. 보수와 진보의 컨센서스가 중요하다 : 독일 통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

1. 국내적 정치 기반 없이 외교정책의 전환은 어렵다

남북한 간의 민족문제를 접근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국내에서 보수/진보 간 또는 좌/우간 컨센서스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것 없이는 민족문제를 다루는 방향에 있어 큰 전환은 불가능하다. 요컨대 한반도에서 남북한 간 적대관계를 평화공존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국내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완화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평화공존을 향한 변화를 위해서는 국내에서의 강력한 정치적 기반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실제로 경험한 바 있다. 햇볕정책이 실패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를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북한과의 평화공존, 화해 협력을 추구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 국내적 지지기반을 갖지 못했다. 민주화 이후 다소 정치적으로 약해진 보수 세력이 진보적인 정부의 연이은 등장으로 위축돼 있었던 시기, 미국 부시 정부의 등장은 그들을 고무하기에 충분한 국제환경적 변화였다. 그것은 시민사회에서 보수세력의 정치화를 불러왔다. 김대중 정부를 뒤이은 노무현 정부는 햇볕정책을 6자회담이라는 동북아 이해당사국들을 멤버로 한 포맷으로 발전시키면서 남북한 간 데탕트 정책을 추진했다. 이 점은 노무현 정부의 큰 기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외적으로 미국의 부시정부라는 제약과 내적으로는 더 강화된 국내 보수세력의 비판으로 엄청난 제약에 직면하게 되었다. 한국사회는 다시 이데올로기적으로 양극화되었다. 남북한 간의 갈등이 한국 사회 내부로 옮겨와 재현된다는 의미를 갖는 “남남갈등”은 더 강해졌다. 분단된 한국 상황에서 안보 이슈만큼 갈등적이고, 분열적인 것은 없다.

한국 사회에서 민족문제를 다루는 방법에 관한 한 냉전 시기 같은 분단국가로서 통일을 성취한 독일만큼 좋은 비교의 모델 사례를 찾아보기란 어렵다. 동서 냉전의 최전방에 위치한 이들 국가의 분단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역사적, 정치적 배경에 있어 다르다하더라도 그러하다. 1990년대 말 김대중 전대통령이 남북한 간의 평화공존, 화해협력을 중심으로 하여 대북정책에 대한 획기적 전환을 추구한 “햇볕정책”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고, 그것은 브란트의 “동방정책”(Ostpolitik)으로부터 영향 받은 바 컸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분명히 볼 수 있듯이 두 나라에서 각각 민족문제/통일문제를 다루었던 방식과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독일은 통일을 성취했고, 그것과 병행해서 세계적 수준에서 냉전 체제는 완전히 붕괴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통일은 고사하고 남북한의 냉전적 대립은 냉전 해체 이후 더 고조되기에 이르렀고, 미국의 정권교체기 북한의 핵문제는 급진전하는 가운데 전쟁 위험은 고조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햇볕정책은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나? 그것은 한국은 왜 독일이 아닌가라는 것과 같은 질문이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햇볕정책’의 반전은 분명해졌다. 보수정부에서 대북정책은 북한의 체제붕괴를 전망하면서 흡수통일을 추구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냉전시기 대북정책의 근본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대북 강경정책으로의 전환을 위해 보수정부는 앞선 두 정부의 남북한 간 평화공존, 화해협력 대북정책의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한계를 지적하고 그 정책의 무용함을 밝히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햇볕정책의 실패를 말하는 그들의 논거는 이런 것이다. 햇볕정책이 추진되었던 시기 남북한 간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화해무드와 긴장완화가 고조되고 있었던 시점이었지만, 서해상 ‘북방한계선’ (NLL/ Northern Limit Line의 약자)을 침범한 북한함정과 교전이 있었고, 핵무기는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때 “퍼주기”비판에 이어, 작년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북에 대화를 위해 준 돈, 시간이 지금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이런 비판들만큼 평화공존 정책의 취약성이 분명해 보이는 것은 없을 것 같다.

그들은 국제정치체제 수준에서 북한이 국가로서 인정되지 못하는 것이 불러오는 공격성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북한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이러한 국제관계의 차원에서의 근본적인 문제가 유지되고 있는 조건에서는 남북한 간 쌍방적 수준에서의 화해무드라든가, 평화공존은 국제관계의 하위 차원인 한반도 내에서의 남북한 간 관계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미국으로부터의 체제인정과 보장이 걸려있는 국제정치 체제 수준에서의 문제와는 다른 차원이다. 북한측으로서는 한두 번의 정상회담과 남북한 간의 화해무드, 남한의 평화공존정책, 또는 민간단체의 대북지원을 통한 우호적 정책이 그들의 체제안정을 보장해 준다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만이 그들의 행태는 이해 가능해 진다.

▲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포옹하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국가기록원

2. 독일은 무엇이 달랐나

분단국가에서 민족문제를 풀어나는데 있어 한국과 독일은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그것은 이 문제에 대한 컨센서스가 있느냐 없느냐하는 것이다. 컨센서스가 없는 사회에서 민족문제를 둘러싼 이슈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갈등의 원천이 되면서 사회를 분열시킨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정당체제 자체가 순기능적으로 발전하기 어렵고, 오히려 민주주의 자체를 제약하는 조건이 된다. 한국은 그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독일이 컨센서스 형성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가?

나의 관점에서는 독일이 민족문제를 다루는 방법과 그것을 통한 통일의 성취에 있어 브란트의 “동방정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실제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데나워 수상이 이 문제를 접근했던 방식, 즉 그의 리더십이 아닐까 생각한다. 두루 알다시피 1960년대 초이래 빌리 브란트가 발전시킨 그의 “동방정책”의 아이디어와 정책프로그램은 1969년 총선을 통해 성립된 사민-자민당 소연정에 의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고, 그것은 1972년 동서독기본조약의 체결로 실현되었다. 동방정책의 성공을 위한 결정적인 계기는 동방정책을 승인하느냐 않느냐하는 단일 이슈를 중심으로 했던 1972년 총선에서의 승리였다. 이 총선에서 승리하지 못했다면, 동방정책은 그러한 내용으로 성공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동방정책이 왜 어려운 문제이고, 역사적 중요성을 갖는가하는 것은, 독일-소련, 독일-폴란드 간의 조약을 위해 종전이후 승전연합국에 의해 그어진 오데르-나이제선을 독일-폴란드의 새 국경선으로 영구적으로 수용하느냐 하지 않느냐하는 결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전 독일영토의 1/4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프러시아 이래 독일이 추구해왔던 목표, 말하자면 독일이 중부유럽에서의 패권을 확립하려는 거대한 민족주의적 여망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특히 폴란드령이 된 광범한 과거 독일 땅과 동유럽 지역에서 종전과 더불어 삶의 터전을 잃고 추방되거나 보복을 피해 고향을 떠나 서독으로 이주해온 1200-1400만 명에 이르는 피난민 문제가 컸다. 그것은 현대사에 있어 최대의 인구이동의 하나이다. 이들이 전후 독일에서 실지회복을 바라는 민족주의적인 극우세력이 되는 것은 충분히 이유가 있다. 거대한 비토그룹으로서 이들을 어떻게 소련, 폴란드, 그리고 동독과의 기본조약에 동의할 수 있도록 하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동방정책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아데나워 정부는 1950년대를 통하여 나치우파들과 영토회복 정당들의 나머지 부분을 흡수하기 위해 의도적인 정책을 폈고, 이들 그룹의 많은 부분을 기민-기사당의 지지기반으로 만들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극우세력들은 1960년대 말 주 선거에서는 10%에 달하는 지지를 얻었고, 1969년 총선에서는 연방의회에 진출할 수 있는 문턱에 육박할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그들에 대한 지지는 1960년대 말이 정점이었다. 결국 극우파정당들의 도전은 실패로 끝났고 아데나워의 노력이 승리를 거두었다. 그 결과 1972를 기점으로 프랑스에서는 극우파정당이 나타났던 것과는 달리 독일에서는 완전히 사라지다시피 했다.

만약 1950년대 아데나워 정부에 의한 그러한 노력이 없었고, 그들이 주류정당으로 통합되지 않았더라면 동방정책은 성공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노동문제에 대한 컨센서스가 연방국가 건설 초기에 이루어졌던데 반해, 민족문제에 대한 합의는 주류정당 내로 통합되는 1960년대를 통한 긴 과정을 거쳐야했고, 결국은 기민당을 매개로 한 제도화된 민주주의 과정을 통해 해소될 수 있었다. 그리고 또한 역으로 그러한 컨센서스는 정당의 역할과 민주주의를 강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이 점에서 볼 때 햇볕정책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강한 반북, 반공주의의 이념과 가치를 지닌, 그럼으로써 북한을 힘으로 굴복시키기를 원하는 보수세력이 압도적인 우위를 갖는 조건하에서 그리고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정당을 가지고 배타적 혹은 갈등적으로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국내정치적 조건이 그러할수록 정책추진자들은 보수정당의 지도자들, 보수적인 인사들과 관련 당사자들을 정책추진 과정에 참여시키고, 정책의 진행방향을 알려주고, 협의하면서 동의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브란트를 보좌했던 동방정책의 기획자 에곤 바의 회고록에 따르면, 독일 동방정책의 추진자들은 사민당과 기민당 같은 정당 수준에서만이 아니라, 정당라인을 가로질러 기민당 내 관련 당사자들과의 협의와 대화의 채널을 발전시켰다. 대북정책을 평화공존적 정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선출된 정부가 진정으로 그러한 전환을 추구하기로 생각한다면, 안보관련 인사들은 아예 보수적 인사들에게 맡기는 것도 고려대상이 될 수 있다.

혹자는 독일이 동방정책을 통해 통일을 성취했던 것은, 독일의 정부형태가 의회중심제로서 연립정부를 통해 정부가 구성될 수 있고, 그로인해 장기간에 걸친 여러 정권교체들에도 불구하고 정책의 높은 일관성과 연속성이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그것은 제도의 효과를 말하는 것이다. 동방정책의 놀라운 연속성은 1960년대 말부터 1990년대 통일이 성취될 때까지 키싱거, 브란트, 슈미트, 콜 정부를 통해 지속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동방정책은 브란트-겐셔로 이어지면서 정책적 연속성이 가능했던 것이 성공요인이라고 말한다.

물론 제도가 정책의 연속성을 뒷받침해준다면 더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제도의 효과만으로는 그것은 불가능하다. 연립정부였기 때문에 그러한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외교정책을 담당하는 지위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은 단임제정부로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책임자들이 바뀌기 때문에 정책연속성이 가능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보다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은, 한 국가가 정치를 통해 풀어나가야 하는 중심적인 갈등, 예컨대 경제적 분배를 둘러싼 계급, 계층 간 갈등이라든가, 민족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다루는 중대 이슈에 대해, 어떻게 이를 제도화하고, 어떻게 정당을 통해 내부화할 수 있는가 하는데 대해 컨센서스를 형성하는 문제에 있다. 자민당의 당수인 한스 디트리히 겐셔(Hans-Dichtrich Genscher)가 헬무트 슈미트 사민-자민연정으로부터 헬무트 콜 기민-기사-자민 연정에 이르기까지 장장 18년 동안(1974-92) 동안 외상을 역임하면서 통일을 주재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형태가 합의추구적 의회중심제라는 제도의 산물이 아니다. 그 이전에 민족문제에 대한 정당 간 컨센서스를 만드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제도의 효과도 이를 어쩔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민족문제라고 하는 핵심적인 갈등을 제도화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독일의 정당체제가 작동하고 경쟁하는 파라미터는 다르다. 즉 갈등의 폭이 매우 좁고, 정당들 사이의 타협을 이루기가 쉬워 정책의 연속성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한국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갈등의 폭은 넓고 경쟁하는 정당들은 거의 적대관계로서 중대 사안에 대해 차이를 좁히기보다는 상대를 부정한다.

독일처럼 한국도 근본적인 갈등 이슈가 제도화 되었다면, 정책의 연속성은 정당과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한국의 경우, '햇볕정책'은 진보적인 정부로부터 보수적인 정부로 정권이 교체됐을 때 뒷 정부는 앞 정부의 정책을 지우는 일에 온힘을 다했고, 심지어 전임 대통령을 "종북주의자"로 채색하는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하여 한반도는 데탕트는 고사하고 다시 한 번 군사적 분쟁 위험이 높은 지역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타임지 표지 모델 ⓒ타임

3. 중대 갈등일수록 합의적 기반 형성이 중요하다
촛불시위에 힘입어 다시 한 번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우리는 우리사회가 해결해야할 중대 이슈들이 무엇인가를 심도 있게 생각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의 핵실험의 성공으로 더욱 증폭되고 있는 남북한 간의 군사안보적 대립을 어떻게 평화공존의 관계로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필자는 우리가 최소한 이성적인 사고를 얻을 수 있는 결론이 있다면, 이를 안정적으로 제도화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화공존이라는 목표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동안 한국 사람들의 다수가, 특히 보수적 인사들이 암묵적으로 전제했던 것,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는 한국 중심의 통일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보수와 진보는 무엇보다 이 목표에 대한 합의가 없다.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된 한국의 비상한 정치적 위기는, 미국의 트럼프 정부의 등장과 중첩됐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 때문에 남북한 관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수 있는 동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충동적이고, 예측불가해하고, 사려 깊지 않고, 정직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갖는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불가예측하고 벼랑 끝 외교를 일삼는 북한 김정은이 조우할 때, 그 위험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어떤 관점에서 보든 한국이 그동안 안주해왔던 한미동맹에 대한 기본 가정들과 신념들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이러한 조건들은 우리가 대북문제를 다루고, 평화공존을 추구하고, 변화하는 동아시아와 세계질서에서 최소한의 국익을 지키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사회 스스로부터 달라져야함을 말한다.

과거 우리는 다행히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다하더라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 평화공존정책을 추구했던 경험을 갖는다.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은 남북한 간 평화공존의 실현은 그 목표에 이성적으로 공감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에 도달하는 수단과 방법에 있어서의 사려 깊음과, 인내심, 포용성, 이념과 가치를 달리하는 사람들과의 협력과 공존이 필요하다는 데 있다. 즉 남북한 간 평화공존은, 국내의 진보, 보수 간의 협력과 컨센서스의 기반을 형성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돼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지난 촛불시위 때 필자를 포함한 공저자들은 <양손잡이 민주주의>를 펴낸 바 있다. 저자들은 민주주의의 보편적 규범을 실현코자하는 진보파와 전통적 가치와 삶의 습속과 과거의 유산을 중시하는 보수파 간에, 한손에는 촛불을 다른 손에는 정치를 드는 것이 민주주의발전의 요건임을 말하고자 했다. 이 점은 특히 평화공존을 다시 시도하는 과정에서도 절실히 요청되는 덕목이다.

필자가 논의를 시작할 때 첫 부분에서 다섯 가지의 명제를 제시했지만, 한 가지가 더 추가됐어야 했다. 그것은 남북한 분단이 한반도 내의 남북한 간 분단의 결과물이 아니듯이, 이들 사이에서 평화공존을 제도화하고 (먼 훗날 어떤 형태 또는 내용으로든) 통일에 이르게 될 때, 그것은 역시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당사국들, 즉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를 포함하는 최소한 6개국으로 구성된 초국적 기구, 내지 제도들의 틀 내에서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점 또한 우리는 독일의 통일사례로부터 하나의 모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동서독관계의 발전은 전체적으로 유럽 통합 과정과 병행하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유럽경제공동체는 동독을 전체 유럽 발전의 핵심으로 포함시켰다. 유럽안보협력회의는 전 유럽의 핵심조직으로 발전했고, 유럽분단과 독일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군비축소와 군비통제의 중심 기구로 발전했다.

아직 우리에게는 동아시아 지역 내 갈등과 분쟁을 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국제기구가 없지만,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 포맷은 유럽연합에 상응하는 어떤 초국적 국가의 틀을 위한 하나의 전초적 단계로 이해할 수 있겠다. 동아시아의 새로운 국제질서는 각 국가에 더 많은 외교와 협력을 요청하고 있으며, 국내적으로는 이 중대 이슈를 다룰 정치적 합의 기반 형성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단계에 와 있다. 새로 일을 시작한 민주당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을 통해 좋은 성취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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