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일짜리 압축 대선. 상황은 시시각각 변했다. 선거 막판엔 극우색을 드러낸 후보에게 보수 표심이 쏠리고 있다는 소식이 심상치 않았다. '촛불이 만든 대선이 이렇게 촛불과 멀어지는 건가' 하는 위기감이 등장했다.
하지만 결과는 76%(문재인+안철수+유승민+심상정) 대 24%(홍준표). 지난 3월 10일 박근혜 파면 당시의 탄핵 찬반 여론과 거의 일치했다. 선거의 표면은 요란했지만, 5.9 대선의 본질은 결국 촛불 대선이었다. '76% 촛불 연합'이 세운 문재인 대통령과 새 정부의 운명 역시 촛불 혁명이라는 궤도 위에서 결정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가 그렇게 진단했다. 이들에게 19대 대선의 의미와 새 정부의 과제를 들어봤다.
이철희 의원은 "우리가 순수하게, 자력으로 선거를 이긴 게 아니다. 탄핵, 촛불이 없었다면 이번 선거는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면서 "문제는 지금부터다. 집권당으로서 개혁 프로그램을 어떻게 견인해서 갈 거냐, 이 숙제가 아직 공백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김윤철 교수는 "보수가 분화되면서 개혁 보수의 등장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진보 정당의 경우는 전처럼 사표 방지를 이유로 중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했다"며 "다당제 구조 속에서 정치의 공간이 생겼을 뿐 아니라, 정당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아갈 기회가 생겼다"고 평가했다.
서복경 교수는 "냉전 반공주의와 박정희식 개발경제 시스템의 균열"에 주목하며 "지난 30년의 정당 시스템은 흘러갔다고 본다. 이제 과도기를 거쳐 새로운 시스템이 시작될 것이고, 그 과도기를 시작하는 각 세력의 종자돈을 확인한 게 이번 대선"이라고 했다.
새 정부에게는 대통령의 권력 독주를 입 모아 경계했다. 이철희 의원은 "만일 대통령 권력으로만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면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정치를 통해 사회를 바꾸려고 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제도적 권력으로 밀어붙이려 하면 필히 실패할 뿐만 아니라 되레 역풍이 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의원은 "대중을 믿고, 그들에게 간절하게 호소하되 결국엔 의회 안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윤철 교수 역시 "청와대나 대통령이 의회를 문제 해결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더불어 "시민들과 소통하는 장치, 채널이 필요하다"며 "제도 정치가 형해화된 부분을 보완하는 시민 통치 채널을 만드는 게 촛불 혁명 이후 들어선 정부와 정치의 과제"라고 제안했다.
서복경 교수는 "소수당 정부인 경우, 원내 정치를 위해서도 대(對) 시민 정치를 위해서도 제도를 잘 활용해야 한다"면서 전원위원회 제도를 예로 들며 "대통령에게 '당신이 의회를 존중해야 한다'라고 말로 해서 되는 게 아니고, 실질적으로 의회가 주도적인 제도적 파워를 보일 기획들이 끊임없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76% 연합'의 정치적 구조인 다당 체제의 지속가능성이 관건이다.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각종 정계개편론과 합당설이 등장했다.
이 의원은 "민주당은 (다른 당을) 흡수를 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하고, 또 정당들이 독자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핵심은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이라고 했다. 그는 "1년 동안 이 과정을 잘 해내면 의회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정치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힘으로 기능할 수 있게 된다"고 전망했다.
서복경 교수는 "이번 대선에서 유의미한 점은 유권자들에게 다당 체제도 괜찮다는 신호를 줬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현재의 5당 체제가 과거 새누리당 대 비새누리당 체제로 돌아가지 않도록 만드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집권 민주당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명"이라고도 했다.
김윤철 교수는 "이제 다당제 안착을 우리 정치의 핵심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라며 "이제 76대 24를 잘 유지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정당체제도 굳이 말하면 자유한국당을 뺀 4당 공조 체제여야 맞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 측이 당적이 다른 인사들도 국정 참여가 가능하다고 밝힌 '통합정부' 구상은 가능할까? 문 대통령은 연정에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좌담 참석자들은 '통합정부'라는 용어가 뜻도 내용도 명료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당적이 다른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섣부른 자리 나눠주기식 제안은 금물이라고 경계했다.
서복경 교수는 "통합이 뭔지 내용이 안 들어있다"며 "정보를 구체화시키지 않은 언어를 쓰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이를 테면 '정의당과는 내각을, 국민의당과는 원내에서 사전 정책 협의하겠다' 이런 식으로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만 보상 또는 처벌을 할 수 있다"며 "정책이나 정치 노선에 쓰는 언어는 명료해야 한다"고 했다.
이철희 의원은 "연정도 정부의 전략 중 하나로 열어 놓고 좀 더 풍부하게 고민해보자"면서 "만일 연정을 한다면 기재부 장관. 경제부총리에 유승민 카드를 던져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심상정 대표도 노동부 장관이나 복지부 장관에 어울리는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이 의원은 "당사자들을 기분 나쁘게 상의 없이 언론에 툭 던지는 얄팍수는 금물"이라고 덧붙였다.
김윤쳘 교수는 "독일에서 연정에 성공한 경우를 보면 분명한 역할 분담 체제였다"면서 "만일 대통령이 간섭하고 관여하면 연정이 깨지는 거다. 권한이 보장되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연정이 성립되기가 어렵다. 만일 연정을 하겠다면 그렇게밖에 안 된다"고 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내건 개혁과 통합이란 두 가지 국정 목표 모두 '76% 연합'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성패가 달렸다는 것이다. 다음은 지난 10일 프레시안 회의실에서 진행된 좌담 전문이다.
"한국 정당정치의 가능성을 봤다"
프레시안 : 촛불 민심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비롯된 대선이다. 정치적 격변기에 치러진 중대선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 대선의 의미와 결과에 대한 해석부터 해보자.
김윤철 : 이번 선거는 직전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촛불 혁명을 거쳐 치러진 대선이었다. 촛불 민심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선거였고, 그래서 선거 과정에서도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새로운 대한민국, 특히 부와 권력의 독점 체제, 기득권층 사익 추구 체제와 절연하고 새로운 체제 건설로 갈 수 있는지, 실험대로서 의미가 있는 선거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몇 가지 현상들이 있었다. 우선 보수가 분화되면서 개혁 보수의 등장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진보 정당의 경우는 전처럼 사표 방지를 이유로 중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했다. 기대보다는 아쉽다고는 하지만,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역대 진보 후보들 가운데 최다득표의 성과를 거뒀다. 적어도 이런 점들을 보면, 이번 선거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자양분을 만든 선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서복경 : 87년 체제라고 하는, 지난 30년간 기존 정당체제는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과 새누리당 아닌 정당들의 체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번 선거는 새누리당이 없는 대선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새누리당을 뒷받침했던 것들이 있다.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냉전 반공주의이고, 거시 경제 패러다임 측면으로 보면 박정희식 개발 경제 시스템이다. 이 두 가지에 새누리당의 정체성이 있고, 이에 동의하는 보수 유권자들이 지탱하는 정당 시스템으로 30년을 살았다. 이 균열이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서 깨졌다. 40대 60의 구도가 되었다. 그리고 탄핵을 거치면서 25대 75가 됐다.
그런 점에서는 지난 30년의 정당 시스템은 흘러갔다고 본다. 이제 과도기를 거쳐 새로운 시스템이 시작될 것이고, 그 과도기를 시작하는 각 세력의 종자돈을 확인한 게 이번 대선이다. 그 종자돈을 가지고 내년 지방선거, 그리고 다음 총선까지 갈 텐데,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의 결과치가 나쁘지 않다고 본다. 자유한국당이 얻은 24%는 사실상 최대치라고 본다. 그리고 안철수 후보가 21%로 3위를 한 것도 의미가 크다고 본다.
이철희 : 과거를 돌아보면, 야당의 위치였던 민주화 세력이 아주 평온한 상태에서 정권 교체를 이룬 적은 거의 없었다. 이번 선거에서 야당이 결과적으로 557만 표 차이로 이겼으니까, 또는 홍준표 후보의 득표율이 24%에 불과했으니까 일견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내용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순수하게, 자력으로 선거를 이긴 게 아니다. 탄핵, 촛불이 없었다면 이번 선거는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따라서 이번 선거가 중대선거(critical election)가 될지 아닐지는 문재인 정부 하기에 달렸다.
저는 이번 선거가 당을 중심으로 치러졌다고 본다.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지역위원장이나 유세 현장에 나가는 사람들을 만나 보니, 우리 당이 이렇게 다 같이 열심히 죽기살기로 뛴 게 사상 처음이라고 하더라. 왜 그랬을까? 여론조사에 의하면 우리가 이기는 싸움이었다. 굳이 열심히 안 해도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후보부터 당 중심으로 선거를 치르자고 했고, 당도 더 이상 존재감이 없어지면 한국 사회에 우리의 위치가 있겠느냐는 위기감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 당으로서는 승리 이외의 성과도 적지 않았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집권당으로서 개혁 프로그램을 어떻게 견인해서 갈 거냐, 이 숙제가 아직 공백으로 남아있다. 이걸 성공한다면 이번 선거가 중대선거로 자리매김 될 것이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만일 대통령 권력으로만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면 절대 바뀌지 않을 거란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정권은 진보적 정당이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방법을 스스로 체득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될 것 같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정치를 통해 사회를 바꾸려고 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제도적 권력으로 밀어붙이려 하면 필히 실패할 뿐만 아니라 되레 역풍이 불 것이다.
김윤철 : 희망을 보려 한다. 의지적 낙관을 발휘할 기회다. 민주당에 '노무현 정권 당시의 실패로부터 배우자' 하는 태도가 있는 것 같다. 민주당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정의당도 그렇다. 구 시대에 대한 반성이 있지 않나. 이런 게 다 촛불의 영향이라고 본다. 촛불혁명으로부터 과거를 되돌아볼 여유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쪼들리면 과거를 되돌아볼 여유가 없다. 그런데 이제는 새로운 정치를 만들 수 있겠다는 여유를 가지게 됐다. 저는 그 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다들 열심히 할 수 있었고 선거 과정에서 당이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민주당이 정당이 중심이 되는 선거를 했다는 건 긍정적인 현상이다. 한국 정당정치의 가능성이 보인다. 정의당도, 바른정당도 결국 선거에서 완주하면서 당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국민의당도 지금 깨지냐 마느냐 이야기가 나오고는 있지만 결코 당을 없앨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이런 다당제 구조 속에서 정치의 공간이 생겼을 뿐 아니라, 정당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아갈 기회가 생겼다. 그런 점에서 저는 향후 한국 정치 발전을 낙관적으로 평가한다.
이철희 : 제가 걱정하는 건 문재인 정부다. '캠프 정부'와 '민주당 정부'는 대립되는 개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늘(10일) 포석을 놓은 인사를 보면, 확실히 캠프 정부는 아닌 것 같다. 민주당 정부라고 할 수 있지만 또 100% 온전하게 민주당 정부도 아니다. 과거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여느 정부처럼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사인화, 캠프 정부화되어버릴 수 있다. 대통령이 가진 공식적, 비공식적 권력이 모든 걸 다 빨아들이는, 일종의 수렴 현상 같은 게 생기기 때문이다. 캠프 정부를 떠받치는 게 행정부다. 관료 시스템은 민주당 정부보단 캠프 정부가 자신들에게 훨씬 편하고 유리하기 때문에 그 길로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 이 유혹을 어떻게 버티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대통령제 하에서 정당정부라는 게 얼마나 온전하게 구현될 것인가는 어려운 문제다. 쉽지 않은 실험인데, 성공하지 않으면 후과가 크게 다가올 것이다. 처음에는 내각을 어떻게 구성하느냐로 나타날 것이다. 당은 당대로, 행정은 행정대로 정비되면 채널이 투 트랙이 되는데, 당 사람들을 각료로 빼버리기 시작하면 당은 공동화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노무현 정부가 부족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정당정부에 대해 그 누구도 매뉴얼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도 그렇지만 외국을 보더라도 대통령제 권력구조 하에서 정당정부의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참고할만한 매뉴얼이 없다. 학자들이 잘 연구해서 가이드라인을 잘 만들어주면 좋겠다.
김윤철 : 박근혜 게이트 이후 대통령을 정치에서 떼어놓으려는 경향이 생겼다. 대통령을 정치에서 분리했을 때 생기는 문제가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이미 당정분리 실패의 경험 있었다. 관념적 접근은 안 했으면 좋겠다. 개헌, 권력구조 개편 전까지 대통령이 혼자 독주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정당과 국회와 협의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늘 각 당을 찾아간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서복경 : 우리 30년의 경험으로 봤을 때 반면교사로 삼을 예는 노무현 정부 시절이다. 당시는 '우리는 다른 집이다'는 식이었다. 그게 벌써 15년 전 이야기다. 그 사이에 한국 정치인이나 정당들도 학습능력이 생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대표로 있었을 당시의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관계가 지난 30년 역사에서 유일하게 청와대와 집권당이 균형을 맞췄던 시기인 것 같다. 일상의 정치 상황에서 정책 아젠다를 누가 세팅했는가, 누구에게 아젠다 파워가 있었는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집권당이 가질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은 결국 법률안을 제출하고 재정을 통제하는 것이다. 힘의 균형이 대통령으로 쏠리는 시그널이 있다.
우선, 대통령이 집권당과 협의하지 않고 법안을 막 던질 때다. 대통령이 법안을 내놓으면 집권당 안에서 찬반으로 나뉘어 싸우다가 난리가 난다. 그 다음이 예산 넘어올 때다. 집권당 입장에서 급하게 해야 하는 정책 아젠다도 분명 있는데 아무런 협의 없이 대통령은 예산안을 들이밀고, 집권당 의원들한테는 '쪽지 예산' 같은 부스러기를 줘서 막아버린다.
박근혜 정부를 보면서 느낀 게 있다. 야구 연습장을 생각해보라. 타자가 치든 안 치든 공은 계속 날아온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그렇게 했다. 마구 법안을 날리고, 다음해 예산 편성 짜는 과정에서 집권당을 배제했다. 이 두 가지만 잘 조정해도 양자 간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거다.
이철희 : 저는 차라리 노태우 정부 때를 떠올려보기를 권하고 싶다. 물론 그 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노태우 정부 때 정치가 살아났던 건 4당 체제였고, 워낙 시대적 과제가 분명했기에 어젠더 세팅이 쉬웠다. 5공 청산, 광주 민중항쟁 문제와 같은 이슈가 워낙 막중해서 4당 대표, 원내총무들이 논의·합의해서 정부를 끌고 가버리는 모양새였다. 여당과 행정부가 역할 분담을 해서 국정이 잘 굴러갔다. 물론 나중엔 그게 불편해서 3당 합당을 하긴 했지만. 지금도 원내 4당, 정의당까지 5당 체제다. 정치가 살아나서 원내대표와 당 대표들이 개혁 아젠다를 갖고 밀고 나가고, 행정부는 이를 백업하는 분업을 잘하면 국정이 수월하게 풀릴 거다.
서복경 : 당이 국민들과 스킨십을 키워야 한다. 당 차원에서 시민들과 정보 공유를 위한 별도의 계획이 필요하다. 이번 정부와 민주당이 굉장히 호조건에 있다고 진단한다. 지난 30년을 경과하면서 시민들이 민주주의는 제도라는 것을 학습을 하게 됐다. 노무현 정부 때 사람들이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런데 민주주의 하에서 뭔가를 바꾼다는 건 무척 더디게 되는 것인데, 당시엔 사람들이 그 시간을 기다려주질 못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고, 특히 지난 탄핵 국면을 거치면서 제도가 작동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건 아주 큰 경험이다. 개혁 아젠다가 나오면 대통령이 한 달 만에 해치울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거다. 그런 점에서 원내에서 누가 개혁을 비토하고 있다든지, 왜 법안 처리 진척이 안 되는지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정보 공유를 해야 한다고 본다.
"유승민 장관, 심상정 장관? 얄팍수는 금물"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를 존중하겠다고 선언하고 야당을 일일이 방문한 것도 지금 정치체제에 기반 해서 협치를 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좋은 시그널로 볼 수 있을 듯하다.
김윤철 : 제안을 하자면, 국회와 대통령과 청와대가 함께하는 테이블을 만들었으면 한다. 내각에 타당 인사를 배치하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대통령과 국회가 상호 파트너십을 갖고 이끌어갈 수 있는 틀이 있으면 한다. 이를 테면 '협치 위원회'와 같은 이름을 걸고, 위원장을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맡든지 하는 식이다.
통합을 이야기할 때 정당 간 통합, 국회와 중앙정부의 통합만 이야기하는데, 시민들과의 통합도 중요한 지점이라고 본다. 지금 이야기한 '협치 위원회'의 틀 외곽에 시민적인 참여를 보장하는 채널을 열어두고 시민의 국정 참여를 확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철희 : 비슷하면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해선 안 되는 게 두 가지 있다. 첫째, 야당이 거는 싸움에 말려들면 안 된다. 야당은 대개 싸움으로 생존을 도모한다. 싸움에서 진 정당은 바깥의 적과 싸우면서 그걸 핑계로 내부의 갈등을 봉합하려고 한다. 이건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과거 새누리당이 야당일 때 선명야당을 명분으로 소위 반대질을 아주 잘했다. 자유한국당이 앞으로도 익숙한 수법 그대로 진영 논리, 색깔 논쟁으로 집요하게 파고들 텐데 그 덫에 안 빠지는 게 중요하다.
둘째, '탈의회' 하면 안 된다. 의회를 우회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망한다. 군사정권은 날치기를 하든 뭘 하든 어쨌든 의회를 통해서 문제를 풀었다. 민주 정부는 의회에서 막히면 시민사회에 직접 호소하려 했다. 이른바 '고잉 퍼블릭'(going public) 전략, 여론을 동원해서 정치인들을 압박하는 방식이다. 이게 될 것 같지만 현실에선 환상이다. 절대 안 풀린다. 시민 여론이라는 게 객관적으로 형성되는 게 아니다. 지역주의, 진영 논리, 이념 대결 등등이 끼어들어 왜곡하기 때문에 민심이라는 건 상황별로 바뀔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중을 믿고, 그들에게 간절하게 호소하되 결국엔 의회 안에서 문제를 풀어아 한다.
김윤철 교수와 생각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지점은, 어떤 기구를 새로 만들지 여부다. 의회 내 상임위원회나 교섭단체 간의 협상을 통해야지, 새로운 기구를 만드는 것이 되레 우리 정치를 무능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특정 의제의 경우, 예컨대 노사정 위원회 같은 방식도 있을 순 있지만 이것이 의회를 대체하는 채널로 인식이 되는 순간 망하게 될 것이다.
김윤철 : 제 제안도 결국 의회가 중심이다. 청와대나 대통령이 의회를 문제 해결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시민들과 소통하는 장치, 채널이 필요하다. 이미 지금은 콜린 크라우치가 말한 '포스트 민주주의' 상태다. 제도 정치가 형해화된 부분이 있다. 이걸 보완하는 시민 통치 채널을 만드는 게 촛불 혁명 이후 들어선 정부와 정치의 과제다.
지난 탄핵 국면을 경과하면서, 정보효과가 어마어마했다. 마치 한반도 남쪽에 사는 모든 사람들 머리에 연기가 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엄청난 양의 정보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유통됐다. 통상적으론 사건이 하나 발생하면 전국적으로 전파되어서 사람들이 판단을 하기까지 기본 보름이 걸렸는데 지금은 3~4일이면 충분하다. 대선이 끝나서 이제 차차 속도가 더뎌지겠지만, 정당들이 이런 현상을 의회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김윤철 : 민주주의 운영에서 시간이라는 요소가 중요하다. 제가 말한 '협치 위원회'가 꾸려지면 일단 공간은 국회 내로 하고, 각 아젠다에 대한 시간 배열을 정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 때에는 중요 의제를 한꺼번에 다 처리하려고 하다가 폭발했다. 그래서 '그것도 못 하냐', '무능한 정부다' 라는 소리를 들었다. 의회에서 어떤 의제를 언제 논의하겠다는 시간의 배열과 우선순위 선정을 의회 중심으로 정해야 한다. 시민들도 그걸 참고 기다릴 수도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서복경 : 제도를 잘 활용해야 한다. 특히 지금처럼 소수당 정부인 경우, 원내 정치를 위해서도 대(對) 시민 정치를 위해서도. 예컨대 전원위원회는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뜻 맞는 정당끼리 안건을 던지고 논쟁을 하고, 그 장면을 중계를 하는 거다. 지금 각 당 의총 방식이 그렇지만 이것만으론 안 된다. 전원위에서 자꾸 붙으면 시민의 눈이 의회로 모이게 된다. 단순히 대통령에게 '당신이 의회를 존중해야 한다'라고 말로 해서 되는 게 아니고, 실질적으로 의회가 주도적인 제도적 파워를 보일 기획들이 끊임없이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대체로 청와대와 의회의 관계가 정상화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한다. 의회가 청와대를 견인하고 시민들에게 효능감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는 뜻일 텐데, 그러려면 의회 지형과 정당이 안정된 상태여야 한다. 현 상태를 그렇게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선 직후라는 시점상의 특별함이 있겠지만, 패한 당 모두가 쑥대밭이다. 4당 체제, 5당 체제가 지속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이철희 : 우리 당은 승자의 입장에서, 이 체제를 어떻게 가져갈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원내 4~5당 체제를 유지하는 쪽으로 우리가 전략적 선택을 할 거냐, 아니면 우리가 국민의당과 합치고, 자유한국당도 바른정당과 합쳐서 다시 양당으로 돌아갈 거냐. 나는 전자 쪽이다. 다당 체제를 계속 의도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두 가지가 필요하다. 우리가 흡수를 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하고, 또 정당들이 독자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핵심은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이다. 이 두 개는 이미 예고돼있는 아젠다다. 내년 지방선거까지는 결론이 나야 한다. 1년동안 이 과정을 잘 해내면 의회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정치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힘으로 기능할 수 있게 된다.
서복경 : 이번 대선에서 유의미한 점을 또 하나 꼽자면, 유권자들에게 다당 체제도 괜찮다는 신호를 줬다는 점이다. 과거 우리 유권자들은 양당체제만 좋다는 식으로 들어왔다. 마치 양당체제가 아닌 다른 체제는 잠정적 체제이고 곧 양당체제로 가야만 할 것 같은 인식을 만들어낸 게 독재정부였다. 역대 1, 2당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대선에서 신선했던 장면은 개인적으로 이렇다. TV토론에서 '설거지는 여자 몫'이라고 하는 사람부터 성소수자 입장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한 테이블에 있는 것이었다. 이런 다양한 후보군을 같이 볼 수 있는 판이 만들어진 것 자체가 시민들에게 유의미한 시그널을 보냈다고 본다.
김윤철 : 저는 한발 더 나갔다고 본다. '다당제도 괜찮다'는 식의 용인이 아니고 더 낫다고 보는 여론이 형성됐다고 본다. 이건 촛불이 만든 구도다. 이제 다당제 안착을 우리 정치의 핵심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철희 : 개헌, 선거제도 개혁 과제가 이미 예고돼있으니 이 두 과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계기로 가능할 것 같다. 87년 헌법을 바꿀 필요성은 있다. 군부 독재 잔재 등 털어낼 것도 적지 않다. 의원 다수도 개헌을 원하니 이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고 본다. 문 대통령도 받아들이고 일정을 제시하지 않았나. 이 두 개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우리당의 큰 과제다.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한 차기 원내 지도부가 얼마나 단단하고 실력 있는 지도부가 들어설지에 따라 과정과 결과가 많이 달라질 것이다.
프레시안 : 개헌과 선거제도 개정 등 다당제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되기까지는 불가피하게 시간이 걸린다. 이미 현실에서 연정 같은 협치 모델이 거론된다. 현재의 다당 체제는 불안정하고 제도적 뒷받침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상태다.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이철희 : 우선 질문이 있다. 협치가 뭔가. 현재 쓰이는 협치라는 말의 연원이 무엇인가? 제가 보기엔 오남용이 심하다.
서복경 : 협치라는 말은 원래 '거버넌스(governance)'에서 출발했는데, 이 개념이 일본에서 국내에 흘러오는 과정에서 '협치'라는 번역어가 사용됐다. 거버넌스의 개념으로 보면 민관 협치 같은 말은 성립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사실상 협치의 의미가 남용되는 상황이다. 용어에 대한 협의가 안 돼 있으니, 정치인들이 협치라는 같은 단어를 말해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게되는 것이다.
김윤철 : 정치적 협력을 협치라고 잘못 부르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려면 연정이라는 단어를 써야하는데 연정한다고 하면 장관 자리라도 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고, 그래서 등장한 개념이 '통합정부'인 것 같다.
이철희 : 통합정부 개념이 정당정치와 충돌할 수도 있다. 통합정부의 최고는 '비례정부'라고 하던데, 총선에서 얻은 의석 수에 비례해 자리를 주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권 교체란 개념은 사라져야 하지 않나.
서복경 : 통합정부라는 말을 누가 썼는지 모르지만 시민들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줄 우려가 있다. 무슨 말인지를 모르게 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내내 소통 안 되어서 문제라고 했다. 여론조사에서도 박근혜 정부의 문제가 뭐냐고 물어보면 소통이 안 돼서 문제라고 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소통이 무엇인가. 제대로 정보 공개가 안됐다든지 그런 구체적 언어로 이야기해야지 시민들이 문제를 인지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걸 뒤섞어서 소통이 안 된다고 하면 문제가 분명해지지 않는다.
통합도 마찬가지다. 다들 통합을 위해 힘 써달라고 하는데 통합이 뭔지 내용이 안 들어있다. 아마 나중에 문재인 정부 국정지지도 조사를 하면 부정적 평가자들의 이유로 '통합이 안 돼서'라는 답변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정보를 구체화시키지 않은 언어를 쓰면 안 된다. 그러면 책임을 묻지 못한다. 이를 테면 정의당과는 내각을, 국민의당과는 원내에서 사전 정책 협의하겠다, 이런 식으로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만 보상 또는 처벌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그래서 정책이나 정치 노선에 쓰는 언어는 명료해야 한다.
김윤철 : 취임사를 보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그래도 비교적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언어를 사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만간 통합이라는 개념을 구체화시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물론 연정이냐 아니냐로 내부에서 분란을 일으키면 안 된다. 뭘 해야 통합이 될까를 생각해보면, 우선 실제로 만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일단 만나서 통합이든 연정이든 내용을 협의하는 게 지금의 다자구도 내에서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철희 : 선거 캠페인 때 사용한 용어라 약간 모호한 부분이 있다. 표를 모아야 하는 과제가 있기 때문에 너무 명료하게 선을 그으면 안 된다. 통합정부 개념도 그렇게 이해해야 할 측면이 있다. 그런데 이제 집권했으니 당연히 구체적인 플랜으로 풀어주어야 한다. 더 이상 회피가 불가능하다.
프레시안 : 새 정부의 통합정부 구상부터 명료하게 해보자. 이 구상이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이 될지 사실 감이 잘 안 온다.
'장관 자리 몇 개 주겠다', 그런 식은 아니다. 그건 연정이다. 만약에 바른정당이나 정의당에 장관 자리를 배분했는데, 그 정당이 국회에서 법안표결 때 자기마음대로 한다고 한다면 장관 자리를 줄 이유가 없다. 연정은 이처럼 의사 결정에서의 구속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장관 자리 얻는 대신 다른 입법 활동에도 발목이 잡힌다면 야당 입장에선 내각 참여에 상당한 제약이 된다. 그렇다고 선거 전에 연정에 관해 숙의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철희 : 무조건 거수기하라는 게 아니다. 어떤 입법과제를 내놓을지도 같이 의논하자는 것이다. 작은 정당으로선 내각 참여 경험이 성장 발판을 마련하는 절대적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사실 작은 정당으로선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김윤철 : 독일에서 연정에 성공한 경우를 보면 분명한 역할 분담 체제였다. 만일 시대적 과제가 노동 개혁이라고 본다면, 노동 개혁의 역량 가진 정당에 권한을 주고 맡기는 거다. 만일 대통령이 간섭하고 관여하면 연정이 깨지는 거다. 그런 교훈을 봐도 그렇고 제안 받은 입장에서도 그렇고, 권한이 보장되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연정이 성립되기가 어렵다. 만일 연정을 하겠다면 그렇게밖에 안 된다.
이철희 : 사람들은 파격적 발상을 좋아한다. 만일 연정을 한다고 하면 기재부 장관. 경제부총리에 유승민 카드를 던져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심상정 대표도 노동부 장관이나 복지부 장관에 어울리는 것 같다. 당사자들을 기분 나쁘게 상의 없이 언론에 툭 던지는 얄팍수는 금물이다. 앞으로 구체화해야 하겠지만 너무 처음부터 정리하고 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연정도 정부의 전략 중 하나로 열어 놓고 좀 더 풍부하게 고민해보자는 거다.
"'76% 연합' 무너지면…"
프레시안 : 바른정당까지는 그렇더라도 자유한국당은 적대적 관계가 불가피할 듯하다. 문제는 자유한국당이 제1야당이라는 점이다. 또한 당초 후보조차 내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 압박을 받았던 선거에서 홍준표 후보가 24%를 얻었다.
이철희 : 자유한국당은 당대당 차원에선 국정 파트너가 아니다. 그러나 적대적 관계를 우리가 먼저 만들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저쪽에선 적대하기를 원할 텐데 그런 빌미를 안 줘야 한다.
홍 후보가 얻은 24%를 순수하게 따져보면, 의석이나 여론으로 보나 비토권을 행사하기 어렵다. 탄핵도 20대 80이었다. 이 정도로 자유한국당을 묶을 수 있다면 사실 그냥 적대해도 된다. 나머지와 손잡고 우리 편 만든 뒤 울타리를 쳐버리면 되니까. 그런데 정치가 꼭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다. 색깔론, 지역주의 혹은 동성애 문제와 같은 문화적 이슈를 다층적으로 집어넣기 시작하면 그들이 24%에 갇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누가 빌미를 줬느냐가 중요해진다. 마치 우리가 편협하게 가는 것처럼 해서 자유한국당에서 '우리가 도와주려고 했는데 문재인 정부가 쳐냈다'는 얘기를 할 텐데, 이게 먹히면 우리가 힘들어질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인사청문회도 있다. 과거 청문회에서 나온 잡음들이 이번에도 또 나오면 답답한 건 우리다.
이철희 : 저도 76% 연대의 개념이 중요하다고 본다. 선거운동 중반 이후부터 보수는 패배를 받아들이는 대신 합쳐야 한다는 것을 과제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런 주장을 방치하면 우리에게도 영향이 있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얻은 6.8%가 자유한국당 쪽으로 가면 안 된다. 그런데 우리가 자유한국당에는 적대적이고 바른정당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 자유한국당이 바른정당에 '본색이 저렇다'며 몰아세울 수 있다. 그럼 바른정당도 마냥 협조할 수는 없는 환경이 될 것이다. 76% 연대를 유지하기 위해선 엄청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만 한다. 이 고민은 전적으로 우리 몫이다.
서복경 : 내년 지방선거까지는 5당 체제로 가야 한다. 지방선거를 거쳐야 각 정당의 지역조직이 정비될 수 있다. 예컨대 바른정당은 대선 직전 만들어졌기 때문에 현재는 중앙 조직밖에 없는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전국조직망을 갖추게 될 것이다.
프레시안 : 희망하기로는 그렇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이번에 바른정당 의원들이 집단 탈당한 것도 내막은 지역 조직이 흔들렸기 때문 아닌가.
서복경 : 이제 자유한국당 안에서 당권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지방조직들의 판단이 이뤄질 수 있고, 그러면 바른정당에도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철희 : 바른정당은 명사 정당이다. 의원만 몇 명 있을 뿐 아직은 조직적 뿌리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김윤철 : 대구경북 지역에 대한 사색을 해야 한다. 76대 24 구도라고 해서 대구경북을 이해할 수 없는 지역으로 만들면 안 된다. 기본적으로 이 지역은 한국전쟁, 박정희 정권 당시 경제성장 등을 거치며 형성된 고유의 단단함이 있다. 새로 뚫고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다. 그걸 해체하는 유일한 방법은 문재인 정부가 잘 하고 바른정당이 성장해가는 것이다. 그러나 바른정당이 대구경북에서 성장할 수는 없다. 아예 다른 지역, 이를 테면 수도권 등을 중심으로 개혁보수 지지층을 결집시켜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프레시안 : 진보 정당은 어떤가. 이번 선거에서 심상정 후보가 6.2%를 얻었다. 역대 최고치라고는 하지만 아쉬움이 큰 수치인데, 성과가 무엇이었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서복경 : 이제 원내 모든 정당의 스케줄 표는 내년 지방선거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에서 깔아놓은 종자돈이 실제 얼마인지 확인이 되는 게 바로 내년 지방선거라고 본다. 정의당도 이번에 얻은 6%가 끝이 아니다. 6%라는 종자돈을 10%를 넘기게 할 수도 있고 절반으로 뚝 떨어뜨릴 수도 있다. 이제 지방선거를 준비해야 한다. 6%를 자산이라고 생각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김윤철 : 내년 지방선거는 이번 대선이 중대선거인지 아닌지 답을 보여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연정이든 통합이든 체제를 전환하려고 할 때, 중앙정부 중심으로 보지 말고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 이를 테면 노회찬이 경남지사를 하고 경북지사는 유승민이 하는 식으로 말이다.
서복경 : 민주당은 현재의 5당 체제가 과거 새누리당 대 비새누리당 체제로 돌아가지 않도록 만드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집권 민주당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명이라고 본다.
김윤철 : 76대 24 이야기 속에는 촛불 연합이 있다. 미국에 뉴딜 연합이 있다면 한국에는 촛불 연합이 있다.
이철희 : 뉴딜 연합은 사회경제적 연합이고, 촛불은 정치적 연합이다. 정치적 프레임에 의한 연합은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의 정치적 연합을 사회경제적 연합으로 진화 또는 전화시켜야 한다.
프레시안 : 76% 촛불 연합이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새 정부와 76% 연합이 추진해야 할 개혁과제는 무엇일까. 아울러 문 대통령이 3기 민주정부라고 표현한 바에 따라, 1, 2기 민주정부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이라고 보나.
김윤철 : 해방 이후 이어져 온 기득권 사익 추구 체계를 바꾸는 게 중요하다. 정치 구호로서 사익 추구 혁파는 촌스럽다. 그래도 중요하다. 검찰 개혁, 관료 개혁, 언론 개혁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그것의 결과가 무엇인가. 바로 기득권 사익 추구 체계를 바꾸는 것이다.
서복경 : 예컨대 고용노동부는 제발 법을 바꾸기 전에 있는 법이라도 제대로 집행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 문제는 꼭 해결했으면 한다. 사람들이 시장에서 숨은 쉴 수 있도록 하는 게 제일 우선순위 아닌가 한다.
미세먼지 공약도 지켰으면 한다. 과거에는 황사가 오면 어르신이거나 애들만 마스크를 썼다. 그런데 이젠 전 국민이 마스크를 쓴다. 전 계층의 삶의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돈을 쏟아 부으라는 게 아니다. 환경부가 제발 법 집행을 해달라는 거다. 규제만 제대로 되면 우리는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사회경제 문제에 대해선 최소한의 것을 풀지라도 시끄럽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정부가 안타까웠던 게 국보법 폐지나 과거사 청산 같은 문제는 시끄럽게 진행한 반면, 실질적인 변화가 있었던 복지 정책 개혁은 유권자들이 하는지도 몰랐다. 시끄럽게 할 것과 조용히 할 것은 구분했으면 한다.
이철희 : 사회경제적인 부분이 메인 프레임이 됐으면 한다. 지적이 나온 대로 최저임금이나 비정규직 문제가 풀려야 한다. 이걸 잘못하면 촛불 연합마저도 흩뜨릴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비전2030을 제시하며 사회경제 프레임을 작동시키려고 했는데 흐지부지됐다. 당이 잘 안 된다고 생각하고 손 털어버린 거다. 실패하더라도 밀어붙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아픈 경험도 있고 해서 그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김윤철 : 전략적 모호성, 전략적 인내가 개혁의 성과를 얻는 데 중요하다. 투입한대로 바로 산출이 안 나온다고 해서 문제 해결에 필요한 권위를 무너뜨리지 않아야 한다. 노무현 시대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 오늘 대통령이 취임사를 통해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하겠다'고 했다. 그런 태도가 좋다. 못 하는 것까지 다 하지는 않겠다고 하는 게 노무현 시대의 교훈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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