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3일차인 12일 인천공항공사를 찾았다. 정일영 공항공사 사장은 이 자리에서 "공항 가족 1만 명 모두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통령 방문 행사에 참석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환호를 보냈다. 지난 몇 년간 지적된 문제가 예상 외로 쉽게 풀리자 기쁘지만 허탈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일부 노동자들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文 "임기 중에 비정규직 문제 반드시 해결"
문 대통령은 이날 인천공항을 찾아 "오늘이 대통령 취임하고 첫 외부 행사"라며 "인천공항공사에 아주 기쁜 소식이 있다고 해서 그 기쁜 소식 함께 나누려고 왔다"고 분위기를 돋웠다. 행사장에는 정일영 사장뿐 아니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 등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고위공직자 및 공공기관장들이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연을 먼저 들은 후 "우리나라 노동자들 상당수가 비정규직으로 아주 고용이 불안하고, 또 열악한 노동 환경에 처해 있다. 정부 공식 통계로도 현재 노동자의 3분의 1 정도이고, 간접고용까지 합치면 거의 절반 정도는 비정규직"이라며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이 정규직의 절반"이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 아주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가 우리 사회의 통합을 방해하고 있고, 경제 성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새 정부는 일자리를 통해서 국민들 삶을 개선하고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고 있는데, 비정규직 문제부터 제대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사에서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이날 재차 "저는 임기 중에 비정규직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약속한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 문제 해법과 관련해 "우선 정부와 공공부문부터 모범적 사용자가 되겠다"며 "공공부터 비정규직 문제 해결할 수 있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선 공공부문부터 임기 내에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드린다"며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공약에는 새롭게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도 포함되지만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전환하는 것도 포함된다. 특히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안전·생명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분야는 반드시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원칙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직원들이 출산이나 휴직, 결혼, 이런 납득할 만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만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전부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하겠다"며 "빠른 시일 내에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실태를 전면적으로 조사해 달라. 적어도 하반기 중에는 그 부분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문제 해결을 위한 로드맵, 구체적 방안까지 마련해 달라"고 공직자들에게 지시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우선 기획재정부가 평가 지침을 바꿔야 할 것 같다"며 "그전까지는 인원을 늘리지 않는 것을 평가 지표로 삼았는데, 이제는 그게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고용을 늘려 나가고 정규직 전환해 나가는 것이 좋은 평가를 받도록 대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오늘 (정일영) 사장님께서 1만 명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대담한 계획을 세우고 인천공항 확장을 통해 3만, 5만 명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말씀해 주신 데 대해 대단히 고맙다"고 치하하기도 했다. 그는 "공항공사의 포부를 들어 보니, 제가 임기 중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를 만들겠다는 약속이 훨씬 초과 달성될 것 같다"고 말하며 웃기도 했다.
정 사장은 문 대통령의 발언에 앞서 정규직 전환과 인천공항 제2터미널 개통에 따른 일자리 창출 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그간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던 데 대해 "비정규직, 협력사 직원이 많다 보니 수화물 사고도 있고 전문성도 떨어지고 운영 역량도 축적이 안 되고, 고용이 불안하다 보니 사기도 떨어지고 그런 점이 있었다"며 "나름대로 개선해 보려고 했는데 기재부 지침이 그렇게 안 돼 있었다. 작년에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에서도 오고 해서 지적사항 다 개선하고 노력했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해서 사장으로서 늘 미안하고 안타까운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행사에서 이뤄진 실제 발언 순서는 기사에 언급된 순서와는 정반대였다.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발언하고, 다음이 정 사장, 마지막으로 문 대통령이 발언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행사 앞부분에서 "2004년부터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3년마다 업체가 바뀌어 그때마다 고용 불안에 시달렸다", "최저 시급에 육박하는 급여를 받았다", "환경미화원들이 제대로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 "(파견업체는) 노동 조건이나 복지 등 고충을 얘기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고, 원청(공항공사)은 '우리 책임이 아니다'라고 전가한다", "저는 2차 하청인데 1차 하청과 비슷한 일을 하는데도 적게는 50만 원, 많게는 80만 원 받는다. 이런 설움을 없애 주셨으면 좋겠다"는 등 고충을 토로하고 건의 사항을 쏟아냈다.
한 노조 간부는 행사 말미에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며 "정 사장의 '정규직 전환' 발표에 감사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정규직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변경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해고되는 일이 없도록) 약속을 받고 싶다. 정부와 사장, 노동자가 같이 정규직 전환을 논의할 테이블을 만들어 달라"고 즉석에서 건의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 노조 간부의 발언에 대해 "말씀하신 대로, 앞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나가고, 노동시간 단축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방안이 쉬운 것은 아니다. 기업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고, 노동자들 경우도 기존 임금 구조를 그대로 가져간 채 노동시간만 단축되면 초과수당으로 유지해 왔던 임금이 줄어들 수 있다"며 "이런 부분에서 노사정이 함께 고통 분담을 하면서 합리적 방안을 찾아내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을 죽 해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인천공항공사에서는 노사 간 협의뿐 아니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도 참여해 "충분히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다만 노동자들께서도 한꺼번에 다 이렇게 받아내려고 하지는 마시고,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해 나가자. 제 임기 중에 정말로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전체적인 노동 시장의 2중 구조를 확실하게 바로잡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전체댓글 0